냄새에 반하고 향기에 취하다
[향기]
당신의 향기 없이는 당신을 알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개미가 더듬이를 페로몬 액에 담그고서 의사소통을 하듯이 당신을 통째로 음미하기 위해 나는 당신에게 나를 담근다. -마음사전, 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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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이 의사소통을 위해 뿜어내는 것이 있다. 바로 페로몬이다.
단독생활을 할 때는 자신의 채취를 남기면서,
집단생활을 할 때는 서로에게 전달되는 화학물질을 통해 의사소통을 한다.
페로몬은 동물들 집단활동에 반드시 필요한 통신체계다. 작디작은 박테리아부터 척추동물 끝판왕 인간까지도 우리는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게 페로몬을 뿜어내고 있다. 아주 멜랑콜리 미량일지라도..
요즘 애견인구가 많아졌다. 덩달아 반려견 산책 또한 늘었다. 반려견 산책의 핵심은 냄새다. 방구석 반려견의 활동량을 늘리는 목적도 있지만, 이곳저곳 냄새를 맡으며 자극받으며 쌓였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다. 이것이 반려견 산책의 진정한 목적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옆에 붙어 있는 짝꿍의 냄새로 스트레스도 받지만 스트레스를 해소(?) 하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싶기도 하다.
인간은 발달된 시각과 언어라는 의사소통 체계로 인해 페로몬을 감지하는 후각이 상대적으로 퇴화되었다. 하지만 아직 사라진 것이 아니다. 아직 우리에게도 그 흔적은 남아 있다. 그 흔적들을 찾아보자~
재미있는 사이언스지 연구결과가 있었다. 여자의 눈물 냄새가 남자의 테스토스테론의 혈중농도를 감소시켜 남자의 공격성과 성욕을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슨 왈왈 소리인가? 내 앞에서 울었던 여자들이 내 테스토스테론을 감소시켰던 것이었나?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본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때로는 상대의 은은한 향이 사랑의 옥시토신을 자극하여 콩깍지 호르몬을 화수분처럼 솟구치게 만들기도 한다. 이것은 조금 공감이 된다. 이처럼 우리는 이성적일 것 같지만 호르몬에 따라 우리의 감정과 행동이 달라지기도 한다.
다시 돌아가 페로몬이라는 의사소통 전달체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가 흘리는 땀 자체에도 페로몬이 들어 있다.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무취? 유취? 의 그 향이다. 인간의 성호르몬 농도에 따라 이성을 자극하는 냄새가 분비된다. 남성은 땀을 통해 테스토스테론의 분해물인 안드로스테놀을 분비한다.
간혹 땀 흘리는 남성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안드로스테놀 같은 페로몬의 영향이 크다. 이로 인해 운동하는 남자 또는 일에 열중하여 땀 흘리는 모습 등에 매력을 느끼고 호감을 갖는 것이다.
OOO 농구 감독은 선수시절 농구를 마치고 땀 흘린 모습을 아내가 가장 좋아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바로 이런 맥락이다. 도대체 이해가 안 가지만 말이다. 땀 흘리고 끈적이고 땀내 나는데 왜! 왜?? 왜냐고?
안드로스테놀은 사향과 같은 냄새를 나게 한다. 이 향긋 시큼한 냄새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증가시켜 일종의 각성 반응을 일으킨다. 이는 혈압을 높이고 호흡과 심장박동을 빠르게 하여 성적 각성 상태를 만든다. 쉽게 말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안드로스테놀은 소변 지린내가 나기 때문에 보통 악취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 냄새를 기분 좋은 향기로 느낀다. 일시적 착각이다. 마치 아주 향긋한 라일락의 향기를 맡은 직후처럼 몽롱함을 느끼는 것이다.
가끔 퇴근 후 양말을 벗고 그 양말의 향을 맡는 것처럼 우리는 상식적이지 않은 냄새로 우리의 뇌를 자극한다. 비단 이것은 양말만이 아니다~
여성도 여성의 신체 특정 부위를 통해 코퓰린을 분비한다. 코퓰린은 아로마 향 같은 말랑꼬롱한 향으로 남성들을 자극하며 성적으로 흥분을 시킨다고 한다.
파크리크 쥐스킨트의 [향수] 책에서 주인공 그루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특정 향을 만들어 채취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다. 그 향에 대한 소유욕으로 인해 벌어지는 이야기는 인간이 냄새를 향한 강한 애착과 소유에 대한 욕망을 표현하고 있다. 나의 인생책이다. 꼭 읽어 보길..
그런데 문득 장범준의 노래가 떠오른다.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 거야~~'
그렇다. 남자도 여자의 향기에 약하다.
그것이 샴푸향인지, 샤넬 no.5 향인지, 어벤투스 크리드 향인지, 비비 향인지, 코퓰린 향인지, 이발소 스킨 향인지, 노래방 땀내인지 알 수는 없다. 기억 어딘가에서 맡았던 추억의 향일지..
어느 날 좁은 코노(코인노래방)에서 미친 듯이 정열을 불태우고 흐르는 땀을 닦으며 다음 노래를 선곡하고 있을 때 벌컥 문이 열렸다.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말이 기억난다. "앗~ 땀내~!" 그래 우리는 그날 밤 좁은 코노에서 안드로스테놀을 마구 뿜어 냈다.
코노에서 나와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 풍겨오는 택배기사님의 왕래 흔적은 그들의 고충을 강렬히 보여준다. 강한 안드로스테놀이 내 코 끝을 자극한다. 좁은 엘베 안에서 덩달아 인상이 찌푸려지지만, 그들의 숨 막히는 하루가 느껴진다. 하지만 그들이 땀 흘린 만큼 수입이 많으니 너무 안쓰러워할 필요는 없다.
학창 시절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온 선생님의 말이 떠오른다.
"어떤 놈이 또 도시락 까먹었냐??? 나와!"
학교 급식 세대는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다.
나는 학창 시절을 도시락 반찬 냄새와 함께 보냈다.
그때 그 향이 머릿속 해마를 깨우니 공복감이 몰려온다.
오늘 저녁은 뭐 먹을까? 그래 오늘은 비누향 강렬한 마라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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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취]
우리가 지닌 오감 중에서 유일하게 채록되지 않는 냄새, 채록할 수는 더더욱 없고 표현할 소도 없는 당신의 체취, 채록하자마자 사라지고야 마는 체취,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채록하려 한자는 그 체취를 평생토록 감각할 수 있다.
엄마의 분 냄새와 아빠의 스킨 냄새를 어른이 되어서도 기억해 낼 수 있는 것처럼, 누군가와 뺨을 비비고 껴안고 잠들어 본 자만이, 누간가 몸을 빼내가 떠나간 후 빈 베개에 코를 비벼 본 자만이 체취의 사무침에 갇힌다. -마음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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