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골목길 자전거 레이서
난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유별나게 개구쟁이였다.
내 주 무대는 그늘 위세를 따라 이끼가 가득 찬 자동차 하나 겨우 다닐 정도의 작은 골목길이었다. 이 곳은 아이들과 술래잡기를 할 때는 커다란 놀이터였고 바람 빠진 공을 차며 축구 할 때는 작은 운동장이었다. 그리고 자전거를 끌고 대문 앞에 나타났을 때는 자전거 레이싱 장이 되었다. 나는 골목길에서 거친 녹과 삐그덕 찌그덕 소리로 무장한 자전거로 묻지 마 질주를 즐기는 외로운 로드러너였다. 아무도 나를 이기는 자가 없었다. 커다랗게 웨이브 진 핸들바를 잡고 싱글 기어를 장착한 자전거로 무한 페달로 질주하며 친구들과 레이싱을 밥 먹듯이 즐겼고 도전자와의 경기를 통해 나의 승점은 더욱더 견고해져 갔다. 차곡차곡 쌓인 승점 때문인지 함부로 내게 도전장을 내미는 이가 없었다. 내가 질 때는 가끔 실수로 커브길의 원심력을 이기지 못하고 담벼락에 돌진할 때뿐이었다. 어느 날 똑같은 곳, 같은 모양 벽돌이 보이는 담벼락을 다시 만나고 살짝 깨져 핏빛이 보이는 아픈 엄지발가락을 부여잡으며 곰곰이 생각했다. 이 고통을 느끼며 왕좌의 자리를 꼭 지켜야만 하는가? 왜? 지난 과오를 똑같이 되풀이하고 있는가?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 그렇게 또 다음날 승리의 욕망에 취해 나는 또 담벼락을 향해 돌진해 버렸다. 직선주로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고 커브 길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끔 챔피언도 실수하고 도전자에게 참패를 당할 때도 있었다. 왕좌를 지키기 위한 길은 늘 험난했다. 왜냐면 도전자의 도전을 받아줘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두 발 자전거를 타게 된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나는 보조 바퀴가 달린 번쩍번쩍 빛나는 새 자전거를 기대했지만, 아버지가 갖고 오신 자전거는 자체 발광(狂 ) 소음이 심한 보조바퀴 한 짝만 위태롭게 달린 낡은 자전거였다. 군데군데 벗겨진 페인트는 자전거의 클래식함을 더해주고 있었다. 아버지가 어디선가 영입해 오신 자전거와 함께 내 두발 인생은 시작되었다. 탄천 둑방길을 따라 아버지의 두발 자전거 타기 특훈이 시작되었다. 아버지가 뒤에서 안장을 잡아주고 친절함과 거리가 먼 목소리로 힘차게 외쳤다.
“아빠가 잡고 있으니 너는 그냥 페달만 굴리면 되는 거야. 알았지?”
“아빠 잠깐만요. 진짜 잡고 있는 거죠?”
아버지는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외치며 힘차게 나를 뒤에서 밀며 함께 달렸다.
두려움과 설렘이 만감을 교차하는 그 순간 나는 비틀비틀 핸들이 요리조리 흔들며 위태위태 앞으로 내달리다 넘어졌다. 아니 넘어졌어야 했는데 아버지가 안간힘으로 쫓아와 자전거를 잡아 내가 심하게 넘어질 뻔한 것을 날렵함으로 막아 주셨다.
이후 아버지의 폭풍 잔소리는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인가?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지고 몸은 제멋대로 말을 듣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게 폭풍 잔소리가 지나고 나는 땅 위에 발을 떼고 자전거에 몸을 맡기고 페달링 하고 있었다. 어느덧 아버지는 손을 놓고 저 멀리서 혹시나 넘어질까 노심초사 뒤 쫓아오고 있었다. 걱정스러운 미소를 한가득 지으며 말이다. 그렇게 나는 아스팔트 위를 넘어 찌그덕 두발 자전거와 한 몸이 되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거침없이 아스팔트 위를 누비기 시작했다. 세상에 균형을 찾으며 그렇게 두발 위를 달렸다. 자전거는 균형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게 나는 두 발 자전거 위에 올라설 수 있었다. 두 바퀴와 함께 지금까지 찐하게 인생을 살아올지 모른 채 말이다.
역시 왕좌를 지키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끊임없이 도전자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어느 날 강한 적수가 나타났다. 이웃 동네 이층 양옥집의 파마머리 소년이었다. 나랑 동갑에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꽤 깔끔하고 훤칠한 키의 도전자였다. 이층 양옥집 파마머리 소년의 가장 큰 무기는 자전거였다. 하얀색 매끈한 프레임에 커다란 바퀴를 가지고 길게 뻗은 핸들바는 나를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다. 운명처럼 우리는 언젠가 맞붙어야 할 그날이 다가왔다. 이 골목의 왕좌는 나라는 것을 아는 이층 양옥집 파마머리 소년은 나에게 도발 아닌 도발을 걸어왔다. 도전자답게 말이다.
“나랑 시합할래? 누가 더 빠른지 말이야”
예상은 했지만 도전자는 역시 생각보다 빨리 내게 도전장을 던졌다.
애써 평온하게 웃음 지으며 나는 말했다.
“그래 좋아! 저기 우리 동네 골목길을 가다 배명고등학교가 나오면 모퉁이를 돌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는 거야.”
“먼저 들어오는 사람이 이기는 거지!”
그렇게 크게 한 바퀴 도는 것이 우리 동네 국룰 코스였다.
동네 꼬맹이의 출발 소리와 함께 우리는 미친 듯이 튀어 나갔다. 강렬한 출발로 인해 푹 숙여진 고개를 겨우 들어 옆을 쳐다보았다. 이층 양옥집 파마머리 소년은 내 뒤가 아니라 나보다 한 발치 앞에 있는 것이 아닌가. 난 충격에 휩싸였다. 스타트가 장점이었던 내가 낯선 도전자에게 밀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커브 길에서는 내가 앞섰다. 돌담에 수차례 박은 경험을 살려 돌담에 부딪히지 않고 멋지게 코너링을 돌아 도전자를 따라잡았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한번 모퉁이를 돌아 마지막 피니쉬 라인을 향해 오로지 앞만 보고 거침없이 서로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미친 듯이 페달을 밟았다.
드디어 결승점을 통과한 그 순간 우리는 각각 동시에 소리쳤다.
“내가 1등이다” 우리는 동시에 외쳤다. 찌찌뽕을 외쳐야 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가 1등임을 만천하에 고했다. 이 가슴 떨리는 결전의 그 순간은 아직도 가슴속에 생생히 남아 있다.
30여 년 전 그날을 난 정확히 기억한다.
내가 이층 양옥집 파마머리 소년보다 한 발치 늦게 들어온 것을... 나는 사실 졌다.
그런데 왕좌를 높고 싶지 않았고 이층 양옥집 파마머리 소년에게는 더욱 더 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수차례 리벤지를 했다. 우리는 매번 서로가 1등이었다.
자전거라는 인연으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놀이터 너머에 있는 이층 양옥집 파마머리 소년의 집은 거대한 집이었다. 넓은 잔디 마당에는 텔레비전에서 광고하는 바퀴가 커지는 장난감 자동차가 실제로 돌아다녔고 온갖 야구 글러브, 축구공들이 푸른 잔디밭에 나뒹굴었다. 갈색의 긴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친구의 엄마는 긴 머리에 커다란 눈으로 나를 보며 반겼고 옆에 계신 아주머니에게 상냥하게 말했다.
“아줌마! 얘네들 간식 좀 챙겨 줘요.”
그렇게 커다란 식탁에 앉아 나는 무엇이 튀어나올지 마냥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귓불 옆으로 떨어지는 땀을 닦으며 기다렸다. 아주머니가 커다란 냉장고에서 꺼낸 것은 이름 모를 글자로(영어) 도배된 아이스크림과 캐러멜 박스였다. 투명한 크리스털 그릇에 담긴 아이스크림과 밀크 캐러멜의 향연은 아직도 내 미각 속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자전거로 맺어진 인연으로 나는 달콤한 세상을 맞보게 되었다. 나의 두 발 자전거 이야기는 이처럼 초등학교 시절 골목길을 누비며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말이다.
현우야! 너 지금은 어디에서 뭐 하고 지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