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숫자들 - 두 번째 숫자
47이 스스로의 상황을 인지한 것은
태어나고 그리 오래지 않아서였다.
47에게는 1과 자신 이외의 약수가 없었다.
1과 자신 이외의 어떤 약수도 갖지 않는 자연수를
세상은 소수라 불렀다.
약수가 없다는 것은 형제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47은 소수였다.
47에게는 형제도 자매도 없었다. 47은 혼자였다.
47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소수는 아니었다.
2와 3, 5, 7부터 시작하는 소수들의 행렬은
많은 이들의 시선을 받았다.
11, 13, 17, 19.
저 아이들에겐 1과 자신 말고는 약수가 없대요.
23, 29, 31.
그럴 수가. 정말 딱한 일이네요.
37, 41, 43 ….
숫자가 커질수록 시선은 옅어져 갔다.
세상의 감탄 어린 동정이 점점 흐려지는 것을
47은 가만히 지켜보았다.
47은 동정을 받기엔 너무 컸다.
스포트라이트는 작고 어린 숫자들에 집중됐다.
47이 스스로의 상황을 인지한 것은
태어나고 그리 오래지 않아서였지만,
세상이 47을 인지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니 어쩌면 그런 날은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47은 적당히만 불행한, 평범하게 고독한,
애매하게 이상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나갔다.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47이 자신을 부르는
낮고 묵직한 목소리를 들은 것은
아주 오랜 날들이 더 지난 뒤였다.
아니 그것은 목소리라기보다는 어떤 에너지였다.
먼 우주를 통과해 자신에게 도달한
파장이나 파동, 햇빛 같은 거였다.
그 시작점은 94였다.
47보다 정확히 2배가 큰 이 숫자를 만나기까지
47에게는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그곳에 94가 서 있었다.
47에게는 1과 자신 이외의 약수가 없었다.
47은 혼자였다. 그렇다고 믿었다.
하지만 47은 스스로가 약수가 되어
94를 나눠줄 수 있었다.
세상의 빛을 받지 못하더라도
스스로가 빛의 세상이 되어줄 수 있었다.
세상은 47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94의 세상이 47을 찾아냈다.
94의 우주에서만큼은 47만이 유일하게 빛났다.
이제 47은 혼자가 아니었다. 아닐 수 있었다.
47은 더 이상 자신의 삶을
어둠이라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까지 그늘이라 생각했던 47의 어둠은
94의 따뜻한 그림자였다.
빛날수록 길어지는 이 즐거운 그림자 속으로
47은 기꺼이 스스로를 던졌다.
프로젝트 《따뜻한 숫자들》은
언뜻 차가워 보이는 우리 주변의 숫자들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시도입니다.
그림 ⓒ백삼 작가(@wet_meonji)
글 ⓒ원우씨(@wonwoop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