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라면을 끓이며> 중 '세월호'
"풍랑이 없는 바다에서 정규 항로를 순항하던 배가 갑지가 뒤집히고 침몰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 원인과 배경이 불분명한 사태는 망자의 죽음을 더욱 원통하게 만들 뿐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삶을 공허한 것으로 만든다. 망자들이 하필 불운하게도 그 배에 타서 죽음을 당한 것이라고 한다면,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의 삶은 아무런 정당성의 바탕이 없이 우연의 찌끄레기, 잉여물 개평이거나 혹은 이 세계의 거대한 구조 밑에 깔리는 티끌처럼 하찮고 덧없다. 이 사태는 망자와 미망자를 합쳐서 모든 생명을 모욕하고 있고, 이 공허감은 참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이 우발적이라는 공허감, 보호받을 수 없고 기댈 곳 없다는 불안감은 사람들의 마음을 허무주의로 몰아가고, 그 집단적 허무감은 다시 정치적 공략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구로구 '독서토론아카데미'에서 오늘 진행한 책이다. 김훈의 산문을 어려워하는 독자가 많았다.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글이라고 평가한 분도 계셨다.
<자전거여행>을 읽을때, 난 김훈이 대체 뭐하는 작자길래 글을 이렇게 어렵게 쓰나 싶었다. 그의 명성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글을 읽어보니 그저 허명이었구나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의 이런 평가는 <칼의 노래>이후 균열이 갔고, 단편소설집 <강산무진>을 읽으며 부끄러움으로 변했으며, <라면을 끓이며>를 읽으면서 닮고 싶은 작가로 꼽기에 이르렀다. 그의 글은 두 번, 세 번 읽으면 더 좋다. 단 한 문장도 뺄 수가 없다. 그의 글은 정교하다. 한 문장을 빼면 모두가 무너진다. 잘 지어진 집이다. 그럼에도 여백이 많다. 행간을 적절히 조절하면서 독자가 생각할 틈을 준다.
위의 글은 저자가 '세월호 참사 1주년'을 맞으며 이투데이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 글에서 김훈은 죽음이 우연이라면 삶도 우연이라면서, 어쩌다 사는 것이라면 산다는 게 얼마나 허무한지 말하고 있다. 우연히 주은 동전같은 것이 삶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