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윤영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 (궁리, 2015)
아파트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20층 중 18층인데 내부순환로가 내려다보이고 어지간한 건물은 다 손톱만하다.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이 정도 높이가 초현실적이었다. 지난번 아파트도 높이 올라가는 게 싫어 5층에 살았던 터라, 18층이면 거의 경악할 높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적응을 했는지, 창밖을 내다보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 않다. 높이는 적응했는데 문제는 평면이 여전히 싫다는 점이다. 이놈의 아파트는 정말 정이 안간다. 똥싸는데 바로 옆에 식탁이 있는, 이런 천한 공간에서 내가 살아야하다니. 매일, 난 이 공간을 힘겨워한다.
아파트는 어떻게 출현했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으면 좋다. 지나치게 분석적이거나 실증적이지 않아서 이해가 잘되고 착착 와닿는다. 한국 아파트는 세계 어느곳에도 없는 공동주택이다. 바닥에 온돌을 까는 것부터가 우리나라에만 있지 않나. 평면도 일제시대 개량한옥과 유사할 정도로 토착화된 타입니다.
아파트는 실용성이 좋긴하지만, 이 정도 위상을 얻기까지 밑에서 여러 집단이 작업을 했다. 가장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건 집단은 정부다. 지난 세대 사람들은 세방에서 전세로, 전세에서 아파트로, 아파트에서 넓은 아파트로 옮기는 과정을 성공의 계단을 오르는 것과 동일시 했다. 아파트는 중산층의 상징이었고, 소유하기 위한 분투는 아파트의 대량 건설을 유도했고, 정부는 (어느 정도 의도적으로) 아파트를 찍어냄으로써 사회 구조적인 문제들을 눈감게 했다. 다들 자기 집으로 기어들어가 인테리어가 어쩌내 저쩌내 하도록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즉, 순치의 도구로 아파트를 활용했다는 주장이다. 이 책을 통틀어 가장 인상깊은 대목이었다.
우리나라 주거유형은 대부분 아파트평면과 비슷하다. 다세대든 다가구이든 거의 같다. 여기서 주방의 구조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데, 쿡방이 뜨면서 너도나도 요리해보겠다가 덤비다가 부부싸움에 가정파탄이 빈번해지는 이유가 여기 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파트 주방은 한 사람을 위한 시스템으로 만들어졌다. 독일에서 개발된 시스템키친이 기원이다. 한사람이 주방앞에 서서 조리하는 순서에 따라 몸을 돌리고 움직이는 시스템이 싱크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곳에 두 사람이 들어가면 다 망한다. 이 대목도 밑줄 쫙 그었다.
책은 집을 조망하는 여러 지점을 알려준다. 역사와 문화는 물론이고 여성의 관점으로 집을 해석하기도 한다. 막연히 혹은 당연하게 여겼던 공간의 위계와 관계, 배치와 크기가 다른 차원의 '이유'로 설명되어서 읽는 재미가 컸다. 다른 정보들도 많으니 집을 종합적으로 이해해보고 싶다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
(오랜만에 서평을 쓰겠다고 달려들었더니, 이상한 글을 쓰고 말았다. 부지런히 써야겠고나. 에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