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읽을 사람을 너무 의식 했는지 모르겠다. 한동안 글을 쓴다는 게 조금 진부한 일처럼 느껴졌다. 글은 본질이 아닌 수단임으로, 나는 이 도구를 피해서도 내 생각과 느낌을 보관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생활은 이미 지겹도록 바쁘고 일은 정신이 온전하게 자리잡지 못하도록 많고 복잡했다. 지금도 여러 종류의 일을 여러 층위에서 다루느라 분투중이다. 난 여전히 글을 쓰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충분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난 다시 글을 쓴다. 대단한 삶이어서가 아닌,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상이어서가 아닌 그저 나를 지키기 위해서인 듯 하다. 쓰지 않는 동안 난 빠르게 지나가는 영상과 기사를 보았고, 그건 나를 스쳐지나가며 내 마음 어딘가를 낚아채듯 뜯어갔다. 난 더욱 빈곤해지고, 무좀걸린 발가락을 후벼파듯 영상과 시덥잖은 기사를 보며 허덕거렸다.
어쩌면 글은 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써야 하고, 쓸 때만이 나는 충전되는 듯 하다.
작은 까페를 열었다. 내가 자주 가던 단골 찻집이었다. 커피 원두 로스팅을 전문으로 하는 까페여서 매장에 좌석보다는 로스터기가 더 큰 면적을 차지했던 곳이다. 커피 맛이 좋다고, 나는 아직도 커피 맛을 잘 모르지만, 커피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그렇게 말했던 까페였다.
로스터기를 빼고, 로스터기가 올려져있던 넓고 긴 선반과 붙박이 의자를 뜯어 버렸다. 바를 뒤로 반발 정도 밀었다. 홀이 넓어졌다. 벽 페인트를 새로 칠하고, 바닥은 수평몰탈을 사와서 혼자서 시공을 했다. 바 뒷쪽에 상부장을 만들어서 주문한 플라스틱 컵과 홀더 등을 보관하기로 했다. 자작나무 합판으로 바 정면에 작은 책장을 만들었다. 홀이 넓은데 흡음하는 물건이 없어서인지 소리가 웅웅거린다. 그것 빼고 나머지는 아쉬운데로 쓸 만하다.
가게 이름을 '세 번째 오월'로 했다. 둘째 아이가 오월에 태어날 예정이었기에, 우리 가족이 맞는 세 번째 오월들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이는 4월 26일에 태어났다. 사업자등록은 이미 했기에 세 번재 사월로 할 수도 없었다. 그냥 오월을 쓰기로 했고, 오늘 드디어 간판까지 달았다.
왜 까페를 할까. 나는 내가 감각하는 흐름이 맞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과연 내가 공간기획을 잘 할 수 있을지, 작게나마 테스트해보고 싶었다. 또한 건축설계를 좀더 대중친화적인 장르로 만들고 싶어서, 쇼 룸을 기획하고 싶기도 했다. 그런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까페를 열게 되었다. 과연 안정적으로 돌아가긴 할런지. 나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