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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과 라오스, 닮은 듯 다른 두 나라


태국 – 화려함과 자부심의 땅

나는 현재 태국에서 약 4년째 거주하고 있다. 방콕에서 주로 생활하고 있지만 여행으로 치앙마이, 푸껫, 후아힌, 이산 지역까지 두루 여행했다. 태국은 특별시인 방콕을 포함하여 77개의 짱왓(시)가 있는데 그 중 절반은 여행을 했다. 어렵게 보이는 태국어도 공부를 했고 현재는 능통하지는 않지만 적당히 일상적인 대화는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다양한 현지인들을 만나서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내가 관찰하고 살아본 결과 태국은 도시의 화려함과 이면의 빈곤, 전통과 현대, 자부심과 불안이 공존하는 입체적인 사회이다.


태국은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서구 열강의 식민 지배를 받지 않은 나라이다. 그 사실은 현재까지도 태국인들의 강한 자부심으로 남아 있으며, 특히 교육을 받은 중산층 이상에게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같이 일을 했던 직원도 한국과 비교하면서 이점을 나에게 어려번 설명을 했었다. 태국 사람들이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를 볼 때 일종의 우월감을 가지는 것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주변국인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의 마트와 시장에서 판매되는 상품의 절반은 태국산일 정도로 경제적 영향력도 높다. 라오스에 살았을 때에는 생필품은 물론 가전제품이나 의약품도 대부분 태국에서 수입한 제품이였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의 생산 기지 역할을 하면서 높은 경제 성장을 하였으며 덕분에 태국에서 '맏형' 역할을 자처해왔다. 다만 최근에는 베트남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그 위치를 넘보는 분위기이다. 특히 축구 경기에서의 경쟁은 마치 한국과 일본의 대결을 보는 듯한 치열함이 느껴질 정도이다.


화려한 태국의 왕궁
항상 여행자들로 붐비는 카오산 로드


라오스 – 순박함과 고요한 땅

라오스에서는 약 2년간 국제봉사단으로 지낸 경험이 있다. 라오스어를 익히고 같이 교류하며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면서 그야말로 외국인 입장이 아닌 현지인처럼 그들의 삶에 밀착해서 볼 수 있었다. 라오스 사람들은 대부분 온화하고 순박하다. 외지인에게 친절하고, 종교와 전통을 소중히 여기며, 가족 중심의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공산주의 사회로 오랫동안 폐쇄적으로 지낸 탓에 다소 사람들이 보수적인 면은 있다. 불과 25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시내의 독립문(빠뚜싸이)에 소달구지가 다니던 곳이였다. 개방적이고 영어를 잘 구사하며 세려된 태국과 다르다.


인구는 약 1천만 명의 작은 내륙국가이다. 대부분의 지역이 산악 지형이며, 산업 기반은 매우 미약하다. 경제는 태국과 중국에 의존하고 있고, 특히 최근 몇 년간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면서 고속철도와 도로 등 인프라가 빠르게 건설되고 있지만 그 대가로 외채가 급증하면서 국민 생활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내가 라오스에 있었던 2016~2018년에는, 100달러를 환전하면 약 850,000킵을 받을 수 있었는데 코로나가 끝난 2022년 직후에는 100달러가 무려 3배 가까운 2,4000,000킵까지 치솟았다. 국가 경제에 큰 파트를 차지하고 있던 관광산업이 코로나로 붕괴되면서 경제는 부도 직전까지 갔으며 주유소에는 기름이 동이 나서 주민들은 오토바이에 기름을 넣기 위해 1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환율 폭등으로 인해 수입 물가는 치솟았지만, 현지 임금은 제자리였기 때문에 국민들의 삶은 점점 팍팍해졌다. 불교 사회에서는 자살이 금기시되는데 이러한 어려움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많아졌다는 뉴스에 마음이 아팠다.


라오스를 다시 방문했던 2022년에는 코로나로 국경이 재개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시내에 보니 대부분 상점의 간판이 오랫동안 관리가 안 된 듯 누렇다. 시내 여행자 거리의 유명한 조마 베이커리 카페도 마찬가지이다. 의자는 낡았지만 수선이 안 되고 있었다. 라오스 최초 오성급 호텔인 라오 플라자 호텔의 간판도 멀리서 보니 청소한 지 1년은 넘은 듯 하다. 나는 당시 시내의 저렴한 호텔에 묵었는데 방에 있던 냉장고가 작동되지 않았다. 직원이 다른 곳에 있는 것으로 바꿔줬지만 그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냥 체념하고 미지근한 물을 마시기로 했다. 오성급 호텔의 간판도 누런데, 내가 여기서 냉장고가 안 된다고 불평을 할 건 아닌 듯 했다.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 속에 체념과 현실 감각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그럼에도 이곳 사람들은 조용히 견디고 있었다. 사원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할머니, 아침 시장에서 물건을 서로 파고 하는 여인들, 오토바이에 아이를 태우고 학교에 가는 아버지들의 풍경에서 아직 희망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라오스의 랜드마크인 독립문(빠뚜싸이)
라오스의 대표적인 사원인 분 탓루앙


두 나라의 공통점과 차이점

태국과 라오스는 언어적으로도 밀접한 관계에 있다. 둘 다 타이족 계통이며, 언어는 약 70~80% 유사하다. 라오스 사람들은 태국 방송을 거의 일상처럼 시청한다. 공산당 체제 하에서 제작되는 라오스 방송은 주제가 제한적이고 재미가 없어, 예능과 드라마, 유튜브 콘텐츠 등은 자연스레 태국 것이 대세가 되었다. 반면, 태국 사람들은 라오스어를 그다지 자주 접하지 않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이해도에 차이가 있다. 과거에는 한때 라오스 영토였던 이산(동북부) 지역 주민들은 라오스어와 거의 상호 소통이 가능하지만, 방콕이나 남부 지역 사람들은 라오스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만약 방콕에서 라오스어를 한다면 촌놈 취급을 받을 것이다. 외모 면에서도 두 나라 사람들은 유사하지만, 도시화와 경제 발전의 차이로 인해 스타일에서 차이를 보인다. 태국은 방콕을 중심으로 화장, 패션, 성형까지 활발하게 이뤄지며 ‘외모지상주의’ 경향이 점점 강해지고 있고, 라오스는 보다 자연스럽고 검소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남한과 북한이 같은 민족인데 분단 70년밖에 안 되었지만 평균 신장이나 외모에서 차이가 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두 나라의 관계 – 형제인가, 주종인가

라오스와 태국은 과거 한 뿌리를 둔 형제 민족이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뚜렷한 위계가 형성된 관계로 보인다. 대표적인 상징이 '에메랄드 불상'으로 나라의 영광을 가져다준다는 전설이 있다. 원래 라오스에 있던 이 불상은 18세기경 태국이 무단으로 가져가 현재 방콕의 왓 프라깨우에 보관이 되어 있으며, 태국 국왕은 1년에 한번씩 불상의 옷을 갈아입히는 의식을 행하고 있다. 라오스는 지속적으로 반환을 요청하고 있지만 경제적 논리에 의해서 되지 않고 있다. 아마 미래에 라오스의 경제력이 태국을 추월한다면 아마도 반환받을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라오스는 태국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라오스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찾아 국경을 넘어 태국으로 향하고, 태국에서 벌어들인 돈을 가족에게 송금하는 것이 주요 생계 수단이기도 하다. 말이 통하기 때문에 불법으로 방콕에 와서 공사장 등에서 일하는 라오스 사람들도 많다. 이런 구조에서 라오스는 자존심을 지키기 어려운 처지이다. 반면 태국 사람들은 라오스를 ‘불쌍한 동생’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같은 조상에서 출발은 했지만 지금은 다르고 경제적으로 자신들보다 아래에 있는 나라.


라오스 사람들의 반응은 복잡 미묘하다. 태국을 동경하면서도 경계하는 태도, 때론 질투 섞인 감정을 보인다. 마치 이것은 20세기 초 한일 관계와도 흡사하다. 우리는 2025년에 1인당 소득을 일본을 따라 잡았는데 내륙국가인 라오스는 그럴 수 있을까.



두 나라의 미래

태국은 여전히 동남아의 대표 관광 국가로서 입지를 유지하고 있지만, 제조업과 IT 분야의 경쟁력은 갈수록 베트남에 밀리고 있다. 일본의 생산 기지를 벗어나지 못해 대표적인 중진국의 함정에 빠진 나라이다. 산업구조가 서비스로 바뀌어 10년 전부터는 출산률도 1명대로 급격히 떨어져서 선진국이 되기도 전에 늙어버린 나라가 되었다. 소위 '하이소' 라고 불리는 수입억은 물론 수백억, 수조를 가진 상위 1%들의 위치는 날이 갈수록 견고해지고 있으며 수도 방콕과 지방의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 태국도 이 점을 아는지 이제는 상업화보다는 관광 도시로 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또한 화려해보이는 이면에는 다양한 문제들이 있다. 소득 불균형, 정치적 불안정, 오랜 경제 침체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 상호 비자 면제 덕분에 태국인들은 다른 동남아 사람들과 달리 무비자로 한국에 여행올 수 있는데, 그 때문에 현재 국내에 가장 많은 불법체류자들이 태국인이다. 이는 한때 외교문제가 되기도 했다. 실제로 한국에 있는 타이마사지에 근무하는 태국인들 대다수는 관광비자로 들어왔다가 돌아가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이다.


라오스는 순박하고 평온해 보이는 사람들과 고요한 자연경관이 매력적이다. 그러나 그 평화로운 모습 뒤에는 여전히 많은 국민이 빈곤과 씨름하고 있다. 아직도 라오스의 시골에서는 전기가 안 들어오고 인터넷도 안 되는 곳이 많다. 가난하고 소박하지만 행복한 그들의 과거도 스마트폰의 보급과 더불어 붕괴되고 있다. 젊은이들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으로 다른 나라의 사람들과 자신들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최빈국이였기 때문에 매년 7~8% 의 높은 경제 성장률을 보이고 있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중국과의 경제적 의존이 커지며, 정치적 중립성이나 문화적 독립성이 위협받고 있다. 기존의 경제나 문화가 태국에 종속되었다면, 지금은 중국에 정치도 종속당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다


이 두 나라에서 직접 살아본 경험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각기 다른 매력과 장단점을 지니고 있는 태국과 라오스. 현재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들의 미래가 밝기를 기원한다.


- 2024.02.01.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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