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남들이 잘 안 가본 곳'에 대한 로망이 있을 것이다. SNS에도 잘 안 뜨고, 심지어 한국어 블로그 후기조차 드문 곳. 오늘 내가 소개할 곳이 바로 그런 여행지다. 그곳은 바로 미얀마 삐이. 양곤에 가본 사람은 있지만 이곳에 가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미얀마를 여행한다고 하면 '전쟁 중 아니야?" 혹은 '내전 일어나서 위험하지 않나?' 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맞는 말이다. 아직도 그 상황은 진행중이라 조심을 해야 하지만 여행을 못 할 정도로 위험한 것은 아니다. 남아공처럼 나라도 불안정하고 사람들도 총기 사용이 많아서 위험한 나라가 있는 반면, 스리랑카처럼 나라는 불안정하지만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순박한 경우도 있다. 상좌불불교(소승불교)를 믿는 나라의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그런 편으로 미얀마도 마찬가지이다. 흔히들 권장되는 몇 가지 사항만 조심한다면(밤 늦게 밖에 다니지 말 것, 낯선 사람이 주는 음료수나 음식을 함부로 먹지 말 것 등등) 큰 문제없이 여행을 할 수 있다.
보통 한국인들이 미얀마를 여행할 때는 양곤(Yangon), 바간(Bagan), 만달레이(Mandalay), 인레 호수(Inle Lake)를 도는 코스를 따라간다. 나 또한 미얀마 여행은 처음이라 국민코스로 따라서 여행 일정을 짰다. 참고로,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지만, 양곤은 현재 미얀마의 수도가 아니다. 2005년에 행정수도는 '네피도(Naypyidaw)'로 이전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 뇌리에는 '양곤=수도'라는 인식이 강하다. 마치 튀르키예(터키)의 수도가 앙카라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이스탄불로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은 이런 유명한 코스를 소개하려는 게 아니다. 오늘은 조금 더 특이하고, 낯설고, 그래서 더 흥미로운 곳을 소개하려 한다. 미얀마 양곤에서 북서쪽으로 약 8시간 정도 떨어진 곳, '삐이(Pyay)'라는 도시다. 낯설지 않은가? 나도 처음엔 ‘삐이’라는 지명이 맞나 싶었다. 아무리 봐도 영어 철자와 발음이 어울리지 않았다. 뭐 발음이야 어떤들 어쩌리. 원래 영어 발음이 그런 걸. 삐이는 한마디로 '미얀마의 시골 도시' 같은 곳이다. 관광 인프라도 부족하고, 교통도 불편하며, 영어가 잘 통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오히려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분위기와 사람들의 진솔한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내가 삐이를 찾은 특별한 이유도 있었다. 바로, '눈병을 고쳐주는 불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5년 전부터 심한 안구건조증을 앓고 있다. 라식을 했거나 눈을 엄청나게 혹사시킨 것도 아닌데 어느순간부터 갑자기 나빠져버렸다. 눈이 뻑뻑해져 책을 10분만 읽어도 금방 피곤해졌고, 좋아하던 영화 감상이나 가끔 하던 게임도 멀리하게 되었다. 사무직이라서 하루에 8시간은 컴퓨터를 봐야 하는데 1시간만 모니터를 보기가 힘들었다. 생계를 위해서 어찌어찌 버티면서 일을 하고는 있지만 눈 사용을 멀리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유튜브를 '듣기만' 하게 되었고, 팟캐스트를 즐겨 듣게 되었다. 비교적 최근 10년 간 크게 증가한 질병으로 아직까지 인공눈물 이외에는 마땅한 치료약도 없다. 모든 병이 그렇듯 중증으로 되면 치료는 거의 불가능해진다. 무엇보다 가장 힘든 것은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젊은 사람이 일하기 싫어서 꾀병 부린다”거나 “엄살이 심하다”는 식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지금은 어느 정도 현실을 받아들이고, 병을 완전히 고치기보다는 불편한 눈을 관리하며 함께 살아가는 방식으로 적응해가고 있다.
어느 날, 미얀마 가이드북을 보다가 미얀마에서 '눈병에 영험한 불상'이 있다는 이야기를 보았다. 이 불상에 얽힌 이야기는 꽤 흥미롭다. 영국 식민지 시절, 삐이 지역에 살던 한 영국 고위 공무원의 부인이 심한 눈병에 걸렸다고 한다. 부인은 어떤 치료를 해도 낫지를 않았는데 당시 현지인 누군가에게 "불상에게 안경을 바치면 눈병이 낫는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반신반의하며 부인은 안경을 바쳤고, 며칠 지나지 않아 눈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는 이야기다. 이후 이 불상은 '눈병을 고쳐주는 부처님'으로 소문이 났고, 지금도 많은 이들이 찾아와 절을 하며 소원을 빈다. 믿거나 말거나 한 전설이지만, 안구건조증으로 고생하던 내게는 뭔가 마음을 끄는 이야기였다. 8박 9일 전체 일정에 하루 정도 집어 넣어도 무리가 없는 일정이였기 때문에 가보자고 결심을 했다.
문제는 교통이었다. 내가 미얀마를 여행하던 2022년 여름은 코로나 이후 막 미얀마 국경이 다시 열리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입국 전에 코로나 PCR 검사도 받아야 했고, 양곤 공항 도착 후에도 현장에서 30달러를 내고 한 번 더 검사를 받아야 했다. 비행기값보다 검사비가 더 기억에 남는 이상한 경험이었다. 태국 방콕에서 양곤까지 왕복 항공권이 약 25만 원이었는데, 검사비만 10만 원 가까이 추가로 들어갔다. 당시에는 코로나로 교통도 통제되고 사람들의 이동도 많지 않아 양곤에서 삐이까지 바로 가는 직항 버스가 없어서, 중간에 도시를 경유하며 환승을 해야 했다. 여정은 꽤 피곤했다. 길도 울퉁불퉁하고, 대중교통은 익숙하지 않았고, 사람들과의 소통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미얀마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했고, 영어를 못해도 도와주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동남아 시골 버스는 '절반은 사람, 절반은 물건' 이다. 물건 중에서는 닭, 오리 등 살아있는 생명체들도 있다. 닭 한마리가 포자기에 싸여져있어 고개만 뻐끔이 내밀고 있다. 과적용량이라는 것은 여기에 적용되지 않는다. 공간이 허락하는 곳은 모두 크고 작은 물건들로 채워진다. 나처럼 덩치가 작은 사람들은 동남아를 여행하는데 이점이 많다. 몸을 아무데나 던져놓으면 된다.
삐이에 도착을 하고나서도 뚝뚝을 타고 30분이나 가야 한다. 아직 외국인의 발길이 뜸한 탓에 미얀마의 택시 기사들은 관광객들 상대로 바가지 요금을 물리지 않는다. 그래서 적당히 가격을 흥정하고 목적지에 가면 된다. 어찌어찌 양곤에서 출발한 지 13시간 만에 겨우 안경을 쓴 불상이 있는 사원에 도착했다. 불상은 생각보다 컸고 정말 커다란 안경을 쓰고 있었다. '안경을 쓴 부처님'이라.. 불교를 믿는 나라를 많이 여행을 한 나였지만 이런 개성 있는 부처님도 처음이다. 나는 우선 지갑에서 돈을 꺼내 크지 않지만 시주를 했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조용히 기도했다. "부처님, 제 눈을 낫게 해 주세요."
그 이후 눈이 정말 나았냐고? 만약 그게 진짜라면 전 세계 안과 의사들은 다 실업자가 됐겠지. 현실은 그렇게 마법처럼 바뀌지 않는다. 우리의 인생은 영화가 아니다. 영국 고위관료의 부인의 눈병 이야기도 사람들의 이목을 끄려고 어느 누군가가 만든 스토리텔링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기도는 내게 위로가 되었고, 어쩌면 그 순간만큼은 정말 눈이 나은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 착각이 주는 평안함이 꽤 오래갔다. 중요한 것은 병이 나았느냐보다,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느냐가 아닐까.
삐이는 소박한 도시다. 화려한 리조트도 없고, 유명한 맛집도 없다. 하지만 그곳엔 이야기가 있었다. 전설 같은 이야기, 사람들의 믿음, 그리고 나의 조용한 기도가 있었다.
만약 당신도 미얀마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꼭 삐이를 가보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보통 미얀마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짧게는 4박 5일, 길어도 일반적으로 7박 8일을 넘기지 않기 때문이다. 이 일정동안 위에서 언급한 국민코스(양곤-바간-만달레이-인레 호수)를 보기에도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처럼 눈병을 앓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타이밍 좋게 미얀마 여행을 할 기회가 생긴다면, 하루 일정을 내어서 여기 가보기를 권한다. 마법처럼 '뽕' 하고 당신의 눈을 아프지 않았던 과거처럼 돌려줄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당신의 몸과 마음을 위로해 줄 테니까.
- 2022년 겨울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