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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대는 인류 1만 년 역사상 최고의 유토피아

“당신은 이미 유토피아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 유튜브 채널 '삼프로 TV'에서 방송을 보다가 흥미로운 주제를 접하게 되었다. 바로 영국의 사상가 토머스 모어가 1516년에 발표한 『유토피아』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방송을 통해 예전에 읽었던 책의 내용이 떠올랐다. 나도 20여 년 전쯤, 아직 사회에 발을 내딛기 전인 대학생 시절에 『유토피아』를 한 번 읽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어렵고 난해한 문장이 많았지만, 그 책에서 유독 인상 깊게 다가왔던 부분이 있었다. 바로, 이상적인 사회에서는 하루에 단 6시간만 노동을 한다는 대목이다.


삼프로 TV에서는 이 내용을 이렇게 해석한다. 유토피아의 6시간 노동은 당시에는 주말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오늘날로 치면 주 5일제를 적용해 하루 평균 노동 시간을 계산하면 8시간 정도가 되는 셈이라고 말이다. 즉, 지금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하루 8시간 근무제가 실은, 유토피아에서 꿈꾸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에서는 유토피아의 또 다른 조건으로 정치 집권자를 시민이 직접 선출할 수 있다고 기술하였는데, 그것 또한 오늘날 우리가 하고 있는 정치체계이다. 이렇게 따지면 2025년 현재의 대한민국은 1516년 토머스 모어가 그렸던 '유토피아'인 셈이다.



동남아에서 본 현실, 그리고 대한민국이라는 행운

나는 지난 수년간 라오스, 태국 등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거주를 하였다. 현재는 캄보디아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곳의 삶은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 가난한 사람은 여전히 많고 빈부격차는 한국보다도 심하며 소위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이 많다. 최빈국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되고 지금은 저개발국가이지만 신발이 없이 다니는 아이들이 여전히 있으며 일부 부유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루 종일 노동을 해서 10달러 남짓 벌고 있다. 물가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으며 저축을 해서 미래를 도모한다는 것이 사치이다. 나는 이런 현실들을 볼 때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아주 행운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 인류 역사 1만 년에서 9900년은 굶주림과의 사투였다. 설렁 배가 고프지 않더라도 끊임없는 전쟁에 시달렸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공식적으로 굶주림이 해결된 것은 1980년 이후로 보고 있다. 오늘날 젊은 사람들은 '보릿고개'라는 말을 잘 모를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GDP 3만 5천 불 시대를 맞이하였다. 많은 기업들이 주 5일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어 주 40시간 남짓 노동을 한다. 출퇴근 시간과 업무 강도를 감안하더라도 우리는 일주일 중 1/3 이상은 자유로운 시간을 가지고 있다. 이 시간을 통해 독서를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가족과 대화를 나누거나, 혹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일반 가정을 본다면 대다수 국민들이 냉장고, 세탁기, 스마트폰, 자가용, 온수기 등 기본적인 가전제품을 갖추고 살아간다. 배가 고프면 24시간 언제든지 통닭, 피자, 족발 등 당신이 먹고 싶은 것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통닭 한 마리가 3만 원이라서 비싸서 못 먹겠다고? 그렇다면 이마트에 9시쯤 가면 1만 원 정도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으며 맛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빨래를 하기 위해 허리 아프게 쭈그려 앉아 방망이를 두들길 필요도 없고, 청소를 하기 위해 걸레를 빨 필요도 없다.


물론 모든 국민이 경제적 여유를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보수적으로 보아도 일반 직장에서 일을 하면 실수령 기준 월 250만 원은 받을 수 있다. 이 중 한 달에 150만 원을 소비한다면 약 100만 원 정도는 매달 저축하거나 투자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월 100만 원을 연 복리 7%로 25년간 투자하게 되면 약 7억 5천 정도 모으게 된다. 물론 이 계산은 물가 상승률, 세금, 예기치 않은 지출 등을 고려하지 않은 단순화된 계산이긴 하지만, 적어도 7억 5천 정도면 노후 때 풍족하지는 않아도 기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금액이다. 만약 자녀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요즘은 대부분 맞벌이 가정이기 때문에 지출이 커지더라도 교육비에 지나치게 사용하지 않는다면 수입 또한 2배로 된다.



유토피아에서 불행을 느끼는 이유

이런 점들만 보면 오늘날 우리들의 삶은 '완벽한 유토피아'이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현재 당신의 삶이 행복한가?'라고 물어본다면 '그렇다'라고 답변하는 사람들이 과거에 비해서 높아졌을까? 예전에는 스마트폰이 없어서 남들도 자신과 비슷하게 산다고 생각했고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이니 하는 SNS가 없었기 때문에 오늘날보다 더 행복했을까?


나는 그 질문에 대해 쉽게 '그렇다'라고 말하지 못하겠다. 오히려 사람들의 얼굴에는 불만과 피로, 불안이 더 보인다. 왜 그럴까? 내가 내린 결론은 우리 인간은 배고픈 것은 참지만, 배 아픈 것은 참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남과 자신을 비교한다. 자신보다 좋은 차를 타는 사람, 더 넓은 집에 사는 친구, 더 비싼 옷을 입은 동료를 보며 우리는 스스로의 위치를 자꾸만 측정한다. 그리고 그 비교는 만족보다는 결핍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배가 고파서 괴로운 것이 아니라, 배가 부른데도 누군가 더 배부른 사람을 보면 불행해지는 것이다.


물론 그 비교 본성이 인간을 이렇게 문명을 발달하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는 없다. 만약에 사람들이 남들을 부러워하는 감정이 없고 모두 욕심을 버리고 산다면 아직도 고대 원시 시대처럼 채집 수렴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비교심이 과도해질 경우, 우리는 절대 만족을 느낄 수 없게 된다. 아무리 풍요로운 환경 속에 살아도, 더 가진 사람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불행하게 여긴다면 그 삶은 결코 유토피아가 될 수 없다.



평온의 조건: 내려놓기, 받아들이기, 그리고 감사하기

45년 정도 인생을 살아보니 내가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인지하고 '할 수 없는 것'은 과감히 포기한다는 것이다. 친구가 외제차를 산다고 해도, 그것은 친구의 일이다.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나는 여전히 쿠팡에서 구입한 3만 원짜리 카시오 전자시계를 차고 다닌다. 시간을 확인하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고, 기능도 만족스럽다. 솔직히 친구가 로렉스를 차고 자랑할 때, 순간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런 감정도 이제는 금세 사라진다. 그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니까. 물론 가끔은 돈 10억쯤 가진 친구를 보면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도 욕망이 가득한 인간이니까. 사람 마음이란 게 원래 그러니까. 하지만 나는 이제 그 감정을 억누르기보다는, 인정하고 흘려보내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우리 모두는 이미 유토피아를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남과의 비교를 멈추고, 지금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할 수 있다면, 우리는 조금 더 행복하게 하루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늘도 쿠팡에서 산 3만 원짜리 제 시계를 바라보며, 저렴한 2천원 쌀국수 한 그릇으로 배부르게 잘 먹었다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간다.



[라인홀드 니부어 "평온을 비는 기도" (Serenity Prayer) ]

하나님,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평온을 주시고,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바꾸는 용기를 주시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 2024.09.03.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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