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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없었던 시절, 어떻게 여행을 했을까?

스마트폰이 없었던 시절, 우리는 어떻게 약속을 했을까?

“스마트폰 없던 시절, 사람들은 어떻게 약속을 지켰을까?” 요즘 초등학생이라면 의문을 가질지도 모른다. 내가 어렸을 때인 1990년대에는 각 집에 전화기가 있어 전화로 약속을 잡았다. 지금은 나와 엄마 전화밖에 모르지만 그땐 친한 친구집의 전화번호를 6~8개쯤 외우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때에도 이러한 질문이 있었다. "1950년대엔 집에 전화도 없었는데 어떻게 사람들을 만났나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만나고, 사랑하고, 떠났다. 그 시절은 지금보다 삶의 반경이 좁았고, 시간도 천천히 흘렀다. 동네 슈퍼, 이발소, 학교 운동장처럼 서로의 발길이 닿는 장소에서 자연스럽게 마주쳤다. 농촌 사회라서 시간의 개념도 지금 개발도상국 시골이 그렇듯 느슨했다. 시간을 어기지 않는 대신, 기다리는 일도 당연시되던 시대였다.



첫 해외여행, 스마트폰 없이 유럽을 걷다

2008년, 대학 4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고 졸업하기 전에 추억을 쌓고자, 나는 생애 첫 해외여행으로 유럽 5개국을 돌았다. 하지만 그땐 스마트폰이 없었고, 카카오톡도 없었다. 와이파이조차 흔치 않았던 시절이다. 해외에서 전화나 문자를 하기 위해서는 비싼 로밍 서비스를 이용해야 했다. 많은 여행자들이 로밍 없이 가거나 혹은 비상용으로만 가입하고 출발했던 시기였다. 당시 나는 여행 동행자를 찾기 위해 지금도 많은 회원들이 이용하고 있는 ‘네이버 유랑’이라는 카페에서 사람을 구했다. 누군가가 여행 일정을 올리면 다른 사람이 답변을 달면서 서로 스케줄을 조율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15박 16일 여행 전체를 같이 다니는 것은 부담스럽고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부분 동행을 구하기로 했다. 몇 명과 일정을 맞추다가 한 명을 찾았는데, 서울사는 나와 동갑내기 여자로 초반에 런던과 파리에서 4일 동안 같이 동행을 하기로 했다.


그 만남은 지금 생각하면 참 아슬아슬했다. “9월 5일 오전 10시, 런던 타워 시계탑 앞에서.” 로밍을 안 한 상태였기 때문에 연락할 방법도 없이, 하지만 우린 그 약속 하나만을 믿고, 각자 비행기를 타고 영국으로 향했다. 나는 그 장소에서 상대방이 나타나길 기다렸다. 당시 런던탑 앞에서 친구를 기다렸던 그 셀렘을 아직도 기억한다. 낯선 외지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을 만나다는 것. 누군가는 위험할 수도 있다고도 하지만 그때는 그게 낭만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사진을 교환하지 않아 얼굴도 몰랐지만 한눈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때의 설렘이란. 아마도 낯선 타국에서 동갑내기 이성이라 더 그랬겠지. 지금은 40대 아재가 되었지만 그때는 풋풋했던 20대였으니까. 피부도 좋았고 지금처럼 무릎이 아프지도 않았으니까. 다행히 우리는 약속 시간에 무사히 만났고 첫날은 그렇게 런던 여행을 같이 했다. 구글 지도도 위치 공유도 없었지만, 약속은 이루어졌다.



파리에서 어긋난 약속

런던에서의 이틀을 함께한 동행과 나는 각자 유로스타를 타고 파리로 향했다. 도착 시간도 다르고, 숙소도 달랐기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파리 지하철 샤틀레역 4번 출구, 오전 9시. 30분 동안 기다렸는데 서로 보지 못하면 각자 일정대로 움직이자. 그리고 모레는 아침 9시에는 루브르 박물관 매표소 앞에서 다시 보자.” 참 단순하고 명확한 약속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우리는 만나지 못했다. 나는 약속시간보다 10분 일찍 지하철역에 도착해서 30분 넘게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녀는 오지 않았다. 아마도 출구 번호가 헷갈렸거나, 다른 방향의 출구를 말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날은 각자의 여행이 되었고, 우리는 이튿날 루브르 박물관에서 다시 만났다. “그때 왜 못 왔어?” “출구가 너무 많아서, 네가 말한 쪽을 못 찾았어.” 우리는 각자를 탓하지 않았다. 서로의 말이 다 맞고, 그저 기술이 없어서 생긴 해프닝이었다.



낯선 도시, 낯선 사람의 도움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다. 생애 첫 해외여행 혼자서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내려 까다로운 입국 심사를 마치고, 지하철을 타고 예약해 놓은 한인민박집을 찾아갔다. 당시 유럽 여행을 할 때는 일반 호텔은 숙박비가 비싸서 한인 민박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은 그 나라에서 정식으로 허가를 받은 것이 아니라서, 아고다나 호텔닷컴에 나오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해당 홈페이지에서 직접 예약하고 돈을 입금한 뒤 집주소로 찾아가는 방식이었다. 구글맵이 없었던 시기라 알아서 ‘런던 ㅇㅇ거리 ㅇㅇ가 ㅇㅇ 번지’에 있는 곳으로 가야 했다. 만약에 목적지를 찾지 못하면 공중전화로 민박집에 전화하면 아주머니가 나오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낯선 해외에서 영국 주소는 익숙하지 않았고 영어도 서툴렀다. 겨우겨우 공중전화를 찾았지만, 동전이 없었다. 망설이던 나에게 한 영국 사람이 다가와 “도와드릴까요?”라고 말했다. 그는 나의 짧은 영어를 듣고는 상황을 알아차리고 가게 주인에게 말해 동전을 바꿔줬다. 나는 연신 “땡큐, 땡큐”를 외쳤고, 결국 민박집 아주머니와 통화해 무사히 숙소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지금이라면 스마트폰으로 숙소 주소를 찍고, 실시간 안내를 받아 걸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나는 한 타인의 친절로, 겨우 하루의 시작을 열 수 있었다.



기술이 바꾼 여행의 모습

그 시절, 여행 가방엔 ‘100배 즐기기’ 같은 가이드북과 종이 지도, 그리고 볼펜이 필수였다. 혹은 각 여행지에 도착하면 시내에 있는 여행자 센터(Tourist information center)에서 지도를 하나씩 얻었다. 목적지를 지도에 표시하고, 길을 잃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다. 지금처럼 ‘길치’라는 말은 없었다. 모두가 길을 잃었고, 그래서 더 많이 물었고, 더 많이 말을 섞었다.


이제 우리는 실시간 번역, 자동 예약, 위치 공유, 별점 리뷰까지 모두 손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 시간은 절약됐고, 실수는 줄었고, 불안도 사라졌다. 하지만 가끔, 그 불편했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우연한 만남, 엇갈린 약속, 낯선 이의 친절 같은 것들이 더 이상 자주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는 여행을 할 때면 꼭 여행자 센터를 찾아가서 지도를 얻는다. 이제는 여행자 센터도 점점 없어지는 추세이고 예전과 같이 지도를 자주 펼쳐서 보지는 않지만, 시내 주요 관광지가 표시된 지도를 보면 왠지 마음이 편하다. 그 지도가 꼭 필요해서가 아니라, 아마도 그 시절의 낭만을 아직 손에서 놓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2025.06.21. 씀.

그림 : 챗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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