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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놈펜의 한 카페, 빈부격차를 보다

프놈펜의 아침, 카페에서 시작되다

어느 쉬는 일요일 아침, 나는 모처럼 느긋하게 일어나 카페에 들렀다. 캄보디아는 프랑스 식민지 영향을 받아 카페 문화가 발달했다. 오늘 내가 간 곳은 프놈펜 시내 곳곳에 지점이 있는 ‘브라운 커피’라는 프랜차이즈 카페다. 이곳은 현지인들뿐만 아니라 외국인들 사이에서도 제법 유명한 곳이다. 인테리어는 현대적이고 깔끔하며 스타벅스보다도 가격이 더 저렴하면서도 커피맛이 꽤 괜찮다. 무엇보다 마음이 드는 것은 여기에서는 캄보디아에서 가장 빠른 와이파이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캄보디아는 2025년 현재에도 인터넷이 중간에 끊기는 곳이 많다. 덕분에 이른 아침부터 노트북을 펼쳐놓고 일하는 사람들도 제법 보인다. 나는 아침 8시에 도착했는데도 이미 몇몇 테이블이 차 있었다. 어떤 사람은 게임을 하고 있었고, 또 어떤 가족은 아이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흡사 서울의 브런치 카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뭔가 세련되고 정돈된, 도시적인 분위기였다. 이곳에선 커피와 빵, 샌드위치는 물론 쌀국수나 볶음밥 같은 간단한 식사류도 판매하고 있는데, 가격대는 5천 원에서 1만 원 사이로 한국인들에게는 부담 없는 가격이지만, 현지 평균 소득을 생각하면 꽤 고가다. 참고로 길거리에서 파는 쌀국수는 약 2천 원 정도니 단순 비교만 해도 3~5배는 되는 셈이다.


오전 10시가 넘자 카페는 금세 북적였다. 젊은 커플부터 아이를 동반한 가족, 그리고 홀로 노트북을 보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 풍경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을 넘어 하나의 도시 문화를 반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이런 ‘도시적 일상’이 이곳 사람들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가격, 다른 체감

우리 한국 사람 입장에서는 커피와 간단한 식사로 이루어진 6천 원짜리 브런치는 꽤 괜찮은 가격이다. 커피를 추가로 마셔도 총금액이 1만 원을 넘지 않는다. 서울에서 이 정도면, 뭐 괜찮은 한 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가격이 캄보디아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다가올까? 캄보디아의 1인당 국민소득은 약 2,800달러 정도. 한국이 3만 5천 달러를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거의 12배 이상 차이 난다. 단순 10배로만 계산을 해도, 여기에서 6천 원은 한국에서 6만 원짜리 브런치를 먹는 기분이라고 보면 된다.


한국에서도 6만 원짜리 브런치를 자주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상위 5~10% 정도의 소득자들이 누릴 수 있는 문화다. 캄보디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카페에서 여유를 즐기는 현지인들은 대부분 상류층이거나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고소득 전문직 혹은 나와 같은 외국인들이다. 이처럼 ‘같은 가격’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일상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사치다. 브라운 커피에 앉아 있는 사람들과 그 주변 거리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 사이에는, 단지 소비의 차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도 격차가 존재한다.



도시를 움직이는 두 세계

모든 개발도상국이 그렇듯 이곳에서도 빈부격차가 심하다. 상위 1%는 그야말로 ‘그들만의 리그’ 속에서 살아간다. 고위 공무원, 정치인, 재벌가, 부동산 투기 세력 등. 이들은 웬만한 외국보다도 훨씬 높은 수입과 소비 수준을 자랑한다. 참고로 태국에서는 이들을 '하이소' 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일반인들과는 아예 분리가 된 삶을 살고 있다.


우리가 흔히 ‘중산층’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즉 월 소득이 1,000달러에서 1,500달러 정도 되는 계층은 프놈펜에서 나름 안정적인 삶을 영위한다. 이들은 카페에서 브런치를 즐기며 주말이면 차를 몰고 근교로 나들이를 간다. 아이들은 국제학교에 보내며 가끔은 해외여행도 떠난다. 또한 아이폰 최신형을 살 수 있고 깨끗한 단독주택 혹은 아파트에서 거주한다. 캄보디아가 현재는 중저소득국이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최빈국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소득은 상당하다.


하지만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서민층의 삶은 전혀 다르다. 수도를 기준으로 본다면 월 소득이 300달러에서 500달러 정도이며 하루 일당으로 환산하면 10~15달러이다. 이들이 일하는 곳은 주로 청소, 가정부, 배달, 소규모 자영업, 건설현장 일용직 등으로 언제든지 대체가 가능한 직종이다. 하루 종일 열심히 일을 하지만 삶은 여전히 팍팍하다. 이들에겐 커피 한 잔의 가격조차 사치일 수 있다. 카페 안팎에서 마주친 두 계층은 같은 도시를 살고 있지만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간다.


캄보디아에서 여행이 아닌 생활을 해본 사람이 있다면 이곳의 높은 물가에 깜짝 놀랐을 것이다. 분명히 경제는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보다 낮은데 물가는 오히려 더 비싸다. 농산물과 같은 1차 생산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지라 물가가 더 비싸다. 한 달 월급을 300달러를 받는다고 가정하면 저축은커녕 집세를 내고 밥 세끼 먹기에도 빠듯한 금액이다. 프놈펜 중심가의 고급 아파트, 대형 쇼핑몰, 현대적인 카페를 보면 마치 동남아의 다른 선진 도시와 비슷하다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화려함은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현실이 아니다.



진짜 프놈펜을 보다

캄보디아는 1970년대 킬링필드라는 엄청난 비극을 겪었다. 그 고통의 그림자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이 나라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논밭이 있는 시골에 살며 자급자족으로 살아가던 곳이었다.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던 마을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도시 개발이 시작되었고, 지난 10여 년간은 중국 자본이 밀물처럼 들어오며 도시가 급속히 변화했다. 고속도로가 뚫리고, 콘도와 아파트가 쑥쑥 올라갔다. 하지만 그 빠른 성장만큼, 빈부 격차도 함께 벌어졌다. 도시 중심은 점점 높아지고 화려해지는데, 외곽은 여전히 비포장 도로와 흙먼지가 가득하다. 프놈펜을 여행하는 외국인들은 보통 중심가 호텔에 머물며, 쇼핑몰이나 고급 식당을 찾는다.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는 카페, 무료 와이파이가 빵빵한 레스토랑, 깔끔한 거리 풍경은 프놈펜의 겉모습이다. 하지만 이 모습만 보고 캄보디아 전체를 오해해서는 안 된다.


캄보디아를 여행한다면 시간을 조금만 내어서 그들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는 로컬 시장에 가서 물건을 한 두개 사보록 하자. 우리가 구입한 물건이 큰 금액은 아닐지라도 그들의 저녁 식사에 고기가 좀 더 들어가게는 할 수 있다. 시장에서는 아이를 업은 아주머니가 채소를 팔고, 자전거에 짐을 실은 배달원이 쉴 틈 없이 움직인다. 외곽 동네로 가면 아직도 비포장 도로와 흙집이 이어진다. 그곳엔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소박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삶이 바로 진짜 캄보디아를 말해준다. 프놈펜의 화려한 외양은 일부의 것이다. 도시 전체의 얼굴을 보려면, 그늘진 곳까지 함께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굿네이버스나 월드비전을 통해 매달 3만원씩 시골 아이를 위해 기부를 하거나 국제개발 재단에 돈을 낼 필요는 없다. 혹자는 그 돈이 정말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기부가 아니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관심' 이다. 이 세상에 소외된 자들을 대해서 조금 더 보고, 조금 더 느끼고, 이해하려는 마음이야말로 사회를 좀 더 살기 좋게 하는 것이 아닐까.



프놈펜의 한 커피숍(25.05.25. 찍음)


- 2025.05.25.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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