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책을 읽다가 인도 남부에 '유토피아를 추구하는 공동체 마을'이 있다는 것을 보고 호기심이 생겼다. 이름은 오로빌(Auroville) 마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그런 곳이 아니라 인간의 이상향을 향한 실험을 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가장 눈에 띄었던 내용은 사람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노동을 한다는 점이었다. 억지로 직장을 다니지 않아도 되고, 생계를 위해 하기 싫은 노동을 안 해도 된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적성과 취미에 따라서 직장을 고를 수 있다. 그렇다면 먹고사는 것은? 마을 주문들에게는 식재료도 무료로 제공된다고 한다. 돈 없이도 살 수 있는 곳.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곳. 말 그대로 유토피아 아닌가? 이런 곳이 정말 존재하는가?
그와 동시에 '그게 과연 실현이 될까?"라고 의문도 들었다. 정말 그런 곳이 있다면, 아마 서로 들어가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면서 지구에서 가장 높은 인구밀도를 자랑해야 할 텐데, 정작 인구수는 많지 않다. 또한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만 한다면 하수구 청소나 음식물 쓰레기 처리 같은 것은 누가 할까? 아름다운 마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그런 일을 해야 할 텐데 말이다. 그리고 음식도 무료로 준다고 하면 그것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기부금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한계가 있을 테고,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오로빌은 1968년, 프랑스 철학자인 미라 알파사(Mirra Alfassa, '더 마더') 설립한 마을이다. 유네스코와 인도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시작된 오로빌은 '지속가능하고 통합적인 공동체'를 목표로 한다. 국적, 종교, 인종, 정치적 배경을 초월해 인간의 단결을 실현하려는 실험장이자 철학의 터전이다. 현재 오로빌에는 약 60개국에서 온 3,0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그들은 각각 자신의 방식으로 공동체에 기여하며, 물질적 소유보다는 정신적 자유를 추구하며 살아간다. 물론,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 겉보기에는 완벽해 보이지만 안에는 여러 모순이 잇다.
오로빌에 가보고 싶다는 나의 바람은 2019년 인도 남부 여행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가는 길은 쉽지가 않다. 먼저 부산에서 방콕을 경유해 인도 남부 첸나이(Chennai)로 갔다. 오로빌은 첸나이에서 남쪽으로 약 150km 떨어진 푸두체리(Puducherry) 근처에 있다. 푸두체리는 과거 프랑스 식민지였던 곳으로, 지금도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마을에 들어서자 호기심 많은 몇몇 인도인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낯선 타국인에 대한 경계심이라기보다는, 아마도 이곳을 찾는 이들에 대한 관심이었을 것이다. 가볍게 눈인사를 한다. 골목골목에는 파스텔톤의 건물과 아기자기한 카페들이 줄지어 있다. 오로빌을 가기 위해 찾은 도시였지만, 푸두체리 자체도 꽤나 매력적인 여행지였다.
부두체리에서 릭샤로 가격 흥정을 하고 다시 차에 몸을 싣는다. 중간중간 비포장 도로도 나온다. 1시간 정도쯤 달렸을까. 오로빌 마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표적이 보인다. 아. 드디어 도착했구나. 입구에는 이곳을 처음 찾는 사람들에게 안내하는 건물이 있었다. 간단히 이름 등 신상정보를 적고 마을로 들어선다. 드디어 오로빌 마을에 왔구나! 이곳은 마을이지만 생각보다 규모가 꽤 크다. 도보로만 다니기에는 시간이 좀 걸린다. 공연을 볼 수 있는 건물, 도서관, 음식점 등등이 떨어져 있다. 도시처럼 이정표를 하는 큰 건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찾기가 처음에는 어려울 수 있다.
오로빌의 중심에는 '마트리만디르(Matrimandir)'라는 황금빛 돔이 자리 잡고 있다. 돔은 이곳의 랜드마크로 내면의 평화와 명상의 상징이다. 현지에서 만난 사람이 말하길 그곳에 들어가면 신성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외부인이 이곳에 방문하려면 하루 전에 방문 신청을 해야 한다. 나는 시간이 안 되어서 안 따갑게 내부를 보지는 못 했다.
오로빌에서는 큰 호텔이 없다. 1인실 게스트하우스 형태의 숙소가 많다. 나는 거기서 이틀을 머물렀다. 우연하게도 그곳에서 20살 한국 대학생을 만났다. 그는 학교를 휴학을 하고 있는데 한 달간 오로빌에서 '한달살이'를 하러 왔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여기에 왜 왔는지, 이곳에서 느낀 점들을 말해주었다. 그때 그 청년이 뭐라고 말했는지는 6년이 지난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호기심이 많은 청년이었던 것 같다.
다음날에는 또 우연히도 한 한국분을 만났다. 30대 후~40대 초로 보이는 여자분이었다. 그녀는 몇 년째 여기 살고 있다고 한다. 나는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한국인은 총 몇 명인지? 식사는 어떻게 하는지? 여기엔 술이 안 파는데 시원한 맥주 마시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거주 조건이 뭔지 등등.. 그녀는 대략적인 내용을 알려주었고, 이후 나는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온라인에서 확인했다. (참고로 시원한 맥주도 마실 수 있다!!)
먼저, 오로빌에 거주하기 위해서는 탐방자(visitor)로 2~3개월을 지내며 공동체의 문화를 체험해야 한다. 이 기간 동안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며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공동체의 규칙을 익힌다. 그다음에는 '뉴커머(Newcomer)' 단계에 진입하게 된다. 이 시기에는 약 1년간 공동체의 숙소에서 지내며, 주당 30시간 이상의 노동을 통해 마을에 기여해야 한다. 농장 일, 건축, 아이들 교육, 식당 운영 등 역할은 다양하다. 이후 공동체의 평가를 거친다. 평가 항목은 인류의 단합, 영적 탐구, 지속 가능한 삶과 공동체 기여 등등이다.
이 모든 것을 통과했다고 주민이 될 수 없다. 마지막 관문이 있다. 바로 건축 기여금이다. 이는 오로빌 재단에 무상으로 기부하는 돈으로, 주택 소유가 아닌 '거주권'을 얻기 위한 비용이다. 일반적으로 2만~3만 유로, 한화로 약 3천만 원에서 5천만 원 수준이라고 한다. 이 금액은 나중에 떠난다고 해서 돌려받을 수 없다. 즉, 오로빌은 비영리 공동체이며, 자산은 모두 공동체에 귀속된다. 건축 기여금을 내지 않더라도 공동 주택 등에서 지낼 수는 있지만 쉽지는 않다.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마을 외곽에서 온 인도 노동자들을 자주 보게 된다. 그들은 건축 현장에서 일하거나, 청소, 조경, 유지보수 등의 작업을 담당하고 있다. 오로빌의 '이상적인 삶'은 어쩌면 이들 인근 마을 노동자들의 노동 위에 세워진 것일지도 모른다. 내부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글을 쓰거나 음악을 연주하거나 요리를 한다. 외부 사람들은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한다. 여기에 대해서 마을 주민들은 "우리는 다른 곳보다도 더 좋은 임금을 그들에게 지급하고 있다"라고 한다. 하지만 겉으로는 공동체라지만, 분명 바깥과 안은 층이 나뉘어 있다.
오로빌에서는 대부분 채식 식사를 한다. 마을 내 공동 식당에서 먹거나, 공동 농장 또는 개인 텃밭에서 얻은 식재료로 요리를 해 먹는다. 기본적인 식재료는 마을 내부에서 무료 혹은 최소 비용으로 공급된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자급할 수는 없다. 커피나 맥주, 간식, 수입 과일 같은 것은 마을 상점에서 별도로 구매해야 한다. 인도라는 나라는 덥다. 만약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싶다면 자기가 가진 돈으로 시내에 가서 구입한다. 즉, 기본적인 의식주는 공동체 내부에서 해결 가능하지만, 그 이상을 원할 경우 개인의 구매력이 필요하다.
거기에 입주를 위한 수천만 원 상당의 기부금까지 고려하면, 오로빌은 분명히 '돈이 있는 사람들'이 올 수 있는 곳이다. 실제로 오로빌에서는 전 세계 50여 개국에서 온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국적을 보면 대부분 서구 유럽이다. 인도가 가장 많으며, 다음으로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미국 등이다. 나머지는 러시아, 한국, 일본, 브라질 등등이 있다. 만약 이곳에 매력을 느낀 아프리카나 동남아의 가난한 마을에 살고 있는 청년이 여기에 살려면? 이론상은 가능하나 쉽지는 않다. 마을에서 건축, 농업 등 노동을 하면서 거주권을 획득할 수 있지만 생활비 등은 외부적 후원이나 자금이 없으면 사실상 힘들다.
여기에서는 현실에서 부딪히는 문제점도 만만치 않다. '소는 누가 키우는가' 문제이다. 예를 들어, 누가 화장실 청소를 할 것인지, 누가 시신을 처리하는 등의 ‘누군가는 꺼리는 일’도 반드시 해야 한다. 이런 일은 외부 노동자가 하거나 혹은 별도로 돌아가면서 하기도 한다.
사람끼리의 갈등도 피할 수 없다. 공동체는 평등과 협동을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각자의 가치관이 다르고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하므로 충돌이 자주 발생한다. 커뮤니티에서는 규칙을 정하고 서로 간의 대화를 하지만 갈등 조율이 쉽지가 않다. 아무리 자유로운 삶을 강조하는 곳이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 공동체는 유지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생계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이곳에서 거주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수익이나 생산물로는 최소한의 생계만 가능할 뿐이다. 하지만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려고 이곳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최근에는 관광객 유치로 외부 자금을 모으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은 개인의 지갑에서 경제활동이 이루어진다. 이런 점에서 여기는 이미 사회에서 어느 정도 성공했거나, 은퇴했거나, 혹은 장기 체류가 가능한 '자유인'들이 올 수 있는 곳이다.
전 세계에는 오로빌과 비슷한 실험들이 존재한다. 미국의 '더 팜(The Farm)', 덴마크의 '프리스틀란드(Friland)' 등이다. 더 팜의 경우 1970년대 히피 운동에서 태어났다. 평화주의·채식·자연 출산·공동 육아를 실천하며 자급자족의 삶을 이어왔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유명한 생태 마을이다. 외국인도 참여가 가능하나 비자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태국에도 이런 곳이 있다. 치앙마이에 있는 '토피아'는 공동체 정신을 바탕으로 전 세계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태 마을이다. 흙집을 짓고, 직접 농사지으며, 명상과 예술을 나눈다. 외국인도 참가 가능하나 역시 비자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사회주의가 어떻게 끝났는지 우리는 잘 알 수 있다. 오로빌은 현재 진행형이다. 어려움을 몸으로 겪으면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갈등이 발생한다. 때로는 실망을 하고 떠나기도 한다.
현재 오로빌은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다. 거주권을 얻기 위한 기여금과 생활비 등 현실적인 장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곳은 단순히 부유한 사람들의 휴양지가 아니다. 실제로 그곳에 가보면 생활환경이 그다지 좋은 것만은 아닌 것을 알게 된다. 인도라는 나라는 덥고 식재료도 한계가 있다. 여타 대도시와 달리 인프라도 부족하다. 만약 큰 병이 생기면 본국에 돌아가야 할 수도 있다. 누군가가 여유가 있다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르나 유럽의 몰타에서 지내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지이다. 여기에서는 각자 다른 배경과 문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고민하고, 더 나은 삶의 방향을 찾으려는 시도이다.
오로빌은 완벽하지 않다. 오히려 수많은 모순과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실험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끊임없이 방법을 찾는 것.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