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나라니까 물가도 싸겠지.” 프놈펜에 도착하기 전까지, 나도 그렇게 믿었다. 동남아라는 공통된 이미지, ‘개발도상국 = 저렴하다’는 공식. 이웃 국가인 베트남과 태국을 다녀본 경험이 있었기에, 캄보디아도 비슷하거나 더 저렴하리라 생각했다. 특히 라오스처럼 공장이 없고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라면, 어쩌면 공산품은 다소 비싸더라도 전반적인 생활 물가는 낮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캄보디아에 머문 지 일주일 만에 깨졌다. 재례시장에서 파는 1차 농산물, 예를 들어 생닭, 채소, 달걀 등은 대부분의 나라가 그렇듯 여기도 비싸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프놈펜에서 마트에 들어가면, 가격표를 보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칫솔 하나에 3달러, 치약 5달러, 우유에 3~4달러 등등 내가 알고 있는 개발도상국의 물가가 맞나? 싶었다.
한국 다이소에서는 2천 원 안팎이면 살 수 있는 것들이 여기서는 두 세배 비싸다. 가성비로 치면 ‘비싸고 불편한 나라’가 되어버렸다.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는 달리 여기에서는 '중간 가격'이라는 게 많이 없는데, 음식을 예로 들면 서민들이 먹는 길거리의 현지 로컬 식당 vs 중산층을 위한 시원한 에어컨과 청결한 식탁이 있는 곳이다. 중간의 적당한 가격의 적당한 시설의 식당은 별로 없다. 태국이나 베트남에서는 마트에 가서 이것저것 먹고 싶은 것을 사더라도 비싸지가 않았는데 여기는 왜 이렇지? 캄보디아가 더 경제 수준이 낮으니까 더 저렴해야 하는 건 아닌가? 더 놀라운 건, 이 물가가 외국인 전용도 아니란 것이다. 현지 주민들도 이 가격을 감당하며 살아간다. 그러니 문득 궁금해진다. 왜 가난한 나라의 물가가 오히려 더 비쌀까?
캄보디아에는 농산물을 제외하고는 ‘만드는 것’이 거의 없다. 눈에 띄는 제조업이 없고, 대형 유통망이나 물류 인프라도 부족하다. 전력도 안정적이지 못해서 작은 공장을 짓는 일조차 쉽지 않다. 얼마 전에는 캄보디아 전역에서 제1통신사의 휴대폰 인터넷이 하루 종일 먹통이 된 적이 있었다. 국경분쟁으로 태국에서 전화망을 끊어버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국제 사회에서 태국 눈치를 봐야 하는 등 외교적인 협상에서도 불리한 점이 많다. 생필품부터 공산품, 가공식품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물건이 국경을 넘어 이 나라로 들어온다. 문제는 이 수입품 하나하나에 운송비, 관세, 유통마진이 덧붙는다는 점이다. 그렇게 쌓인 비용은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이 된다. 그리고 그 소비자의 상당수는 월 200~300달러를 벌어들이는 현지 서민들이다. 소득이 가장 낮은 사람들이, 역설적으로 가장 높은 소비 비용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또한 캄보디아는 자국 통화가 불안정해서 달러를 공용으로 사용하는 것도 높은 물가의 한 주범이다.
그 결과, 프놈펜 시내에서 두 끼를 외식하고 툭툭(오토바이 택시)로 출퇴근만 해도 한 달 생활비는 300달러를 가뿐히 넘긴다. 거기에 방세, 공과금, 통신비, 생필품까지 더하면 최소 400달러 이상이 필요하다. 외국인인 나조차 최대한 검소하게 지내도 이 금액을 줄이기 어려웠다. 그런데 내 옆에서 일하는 현지 직원은 단돈 250달러로 한 달을 버텨냈다. 아무리 계산기를 두들겨봐도 쉽지 않은데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셋이 같이 살고, 밥은 집에서 해 먹어요." 함께 일하는 캄보디아 직원의 대답은 짧았지만 그 안엔 250달러로 한 달을 지내는 모든 노하우가 들어 있었다. 이들은 한 달 방세 120달러짜리 원룸을 세 명이서 나누어 낸다. 1인당 40달러. 방엔 매트리스와 선풍기만 있고, 에어컨은 물론 없다. 캄보디아에서 에어컨을 충분히 틀 수 있고, 오토바이가 아니라 승용차가 있다면 기본적으로 중산층이다. 식사는 시장에서 직접 장을 봐서 만들어 먹는다. 생선 세 마리를 1달러에 사서 각각 끼니 반찬으로 나눠 쓰고, 쌀은 고봉으로 퍼서 국물이나 고추양념과 함께 먹는다. 예전에 필리핀에서 사람들이 밥을 가득히 펴서 치킨 한 조각과 밥을 먹는 것을 봤는데 여기도 비슷하다. 이러다 보니 탄수화물이 지나치게 섭취하여 30대만 넘어도 남자는 배가 나오고 여자도 체형이 변한다. 마치 한국의 90년대처럼,
나는 예전에 읽었던 기사 하나를 떠올렸다. 프놈펜 외곽의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한 남성 노동자의 사례였다. 그는 월급 200달러, 초과근무 수당 30달러 포함 총 230달러를 받는다. 방세는 100달러지만 친구와 살아서 50달러씩 부담한다. 식비로 90달러, 전기·수도요금 20달러, 핸드폰 5달러, 교통비 20달러. 부모님께 용돈까지 송금까지 하고 나면 손에 남는 돈은 없다. 아프면 병원 대신 약국으로 간다. 개발도상국은 한국과 달리 의사 처방전이 없어도 일반 약국에서 전문의약품을 구할 수가 있는데 병원 문턱이 높기 때문이다. 의사 진료는 비싸고 휴가 개념도 없다. 하루 쉬는 것은 곧 하루치 임금을 잃는다는 뜻이니까. 몸이 아파도 해열제 하나 삼키고, 퇴근 후에는 유튜브 몇 편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그들의 삶은 ‘검소함’이 아니라 ‘버팀’에 가깝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조용히,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었다.
캄보디아보다 더 상황이 열악한 나라들도 있다. 예를 들어, 호주 북쪽에 위치한 파푸아뉴기니는 극단적인 수입 의존 경제, 열악한 인프라, 섬나라라는 지리적 한계, 도시와 농촌 간의 큰 격차, 대기업 중심의 시장 구조와 경쟁 부재, 달러화에 기반한 경제 구조 등으로 인해 ‘소득은 낮고 물가는 비싼 나라’의 전형적인 사례로 꼽힌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도 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이들 국가들은 대개 오랜 기간 자급자족 중심의 부족 사회로 유지되다가 유럽의 식민 지배를 겪은 후, 근대 시민의식이나 자본주의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자리 잡기 전에 독립을 맞이했다. 결국 권력층은 공장을 세우거나 산업을 육성하기보다는 천연자원을 팔아 생긴 돈으로 자신과 가족, 소속 부족의 이익만을 챙기는 데 몰두했다. 그렇게 얻은 수익은 사치품 소비로 이어졌고, 부는 극소수에게 집중되었다. 반면 서민들은 일할 곳도, 살 수 있는 물건도 점점 사라져 갔다. 악순환은 반복되고 경제는 성장하지 않는다.
엥겔지수의 경우 캄보디아는 60%이다. 참고로 베트남은 50%, 태국은 40%, 한국·일본·독일은 20–30% 정도이다. 지수가 높을수록 식품 지출이 높아 다른 여가, 교육, 의료 등에 더 투자할 수가 없다. 마트에서 칫솔 하나 가격에 놀라던 나는 이제 다른 걸 묻게 된다. “왜 이렇게 비싸요?”라는 질문은, “왜 이들은 이렇게 비싼 삶을 살아야 할까?”로 바뀌어야 한다. 캄보디아의 물가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건 이 나라가 직면한 현실의 반영이다. 공장이 없고, 대체 생산수단이 없으며, 인프라는 부족하며, 사회안전망이 부재한 상태에서 물가는 떨어질 이유가 없다. ‘싼 나라’라는 말은 여행자들이 외식이나 교통비만 보고 내리는 단편적인 판단일지도 모른다. 길거리 음식이나 마트에서 가격표 몇 개를 보고 '가격이 싸네'라고 할 수가 없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이 비싼 값을 치르는 나라’에 가깝다.
즐거운 월급날, 급여명세서를 들여다보면 문득 씁쓸해진다. 나와 현지 직원들의 급여가 8배에서 많게는 10배까지 차이가 난다는 사실 때문이다. 만약 내가 미국에서 일한다면, 이번엔 미국인들과 나의 월급이 2~3배 정도 차이 나겠지. 과거 농업사회에서는 개인의 노동 시간과 투입한 노력에 따라 산출량도 대체로 비례했다. 하지만 현대 자본주의는 그렇지 않다. 이제는 개인이 속한 국가, 언어, 인종, 교육 수준 같은 구조적 조건들이 임금을 좌우한다. 같은 시간, 같은 노동을 들여도 받는 보상은 전혀 다르다. 차가 엄청나게 붐비고 언제 사람이나 소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좁은 길을 요리조리 신기에 가까운 묘기로 운전하는 인도 델리의 택시 기사가, 미국 뉴욕에 있는 택시 기사보다 운전 실력이 좋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 뉴욕에 있는 택시 기사와 인도 델리에 있는 택시 기사의 수입은 10배가 넘는다. 그 격차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누군가는 외국인 투자가 늘고, 빌딩이 올라가고, 카지노가 생기고, 고급 레스토랑이 문을 여는 것만으로는 서민들의 삶이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임금도 같이 올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노동자들이 여유를 가질 수 있고, 소비가 늘며 내수 시장도 성장할 수 있다고. 또한 더 많은 공장이 세워져야 더 많은 일자리가 생긴다고,
그러나 위의 주장은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 세상은 그렇게 말처럼 쉽게 굴러가지 않는다. 그것이 쉽다면 왜 아직 수많은 나라들이 최저빈곤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겠는가. 한 나라의 경제를 발전시켜서 서민들의 삶을 향상하는 것은 단순히 공장 몇 개 짓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이것들은 자본의 분배와 정치권력과도 맞물렸기 때문에 어쩌면 풀 수 없는 실타래처럼 완전히 엉켜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프놈펜에서 250달러가 가진 의미를 오래 되새겨본다. 35만 원 남짓한 이 돈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한 달을 버티고 있다. 경제발전도 좋고 외국자본도 좋고, 높은 빌딩도 좋고 화려한 카지노도 좋다. 그러나 분명히 누군가는 더 많이 가졌고, 누군가는 덜 가졌고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하면 더 틈을 줄일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할 시간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