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파편 위에 쌓아올린 확신에 대하여
신은 가끔, 너무 가까워서 낯설고, 너무 멀어서 선명하다. 때때로 우리는 그 신의 흔적을 한순간 스치듯 경험한다. 바람처럼 지나가는 어떤 체온, 설명되지 않는 감정의 요동, 말이 끝나기 전 울컥 쏟아지는 눈물. 그 짧은 파문이 너무도 강렬해, 우리는 그것이 신의 현존이라고 믿는다. 그 믿음은 불현듯 불붙지만, 오래 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체험은 본디 파편이기 때문이다.
그 감정은 순간적이고, 인상은 휘발된다. 그 파편은 반짝이지만 조각에 불과하다. 손에 쥘 수는 있지만 오래 잡고 있을 수는 없다. 진리를 보았다고 확신하는 그 순간조차, 우리는 사실 진리의 일부만을 부유하는 셈이다. 슐라이어마허가 말한 ‘절대 의존의 감정’이든, 조이스가 느꼈던 존재의 순간적 개안이든, 그것은 구조가 아니라 섬광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섬광을 성벽처럼 쌓으려 한다. 체험의 기억들을 벽돌 삼아, 거대한 확신의 건축물을 올린다. 하지만 그 탑은 늘 삐걱이고 기울어진다. 파편으로 지어진 믿음은 아름답지만 불안정하다. 그것은 건축이 아니라 조적이다. 망치 대신 심장이 사용되었고, 자 대신 눈물이 동원된 탑. 처음부터 견고할 수 없는 구조물이다.
그 확신은 종종 타인의 불안보다 더 위협적이다. 흔들림 없이 말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언뜻 성스러워 보이지만 종종 의심을 배제한다. 리쾨르는 말한다. 진정한 해석은 의심에서 시작된다고. 의심은 신앙의 적이 아니라, 그 본질을 더듬는 손이다. 확신은 때로 결론이 아니라 사유의 정지이고, 침묵의 거부이며, 타자를 향한 봉쇄가 된다.
체험은 귀하다. 그러나 그것은 씨앗이지, 열매는 아니다. 그것은 신앙의 출발일 수는 있어도, 도착지는 아니다. 신앙은 경험으로 시작되더라도, 결국은 텍스트 위에 서야 한다. 텍스트는 감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그것은 들음에서 나고, 해석 속에서 성장하며, 침묵 가운데 가라앉는다. 경험은 빛나는 순간이지만, 텍스트는 어두운 시간 속에서도 식지 않는 불씨이다.
그러나 텍스트는 홀로 진리를 말하지 않는다. 모든 글은 그것이 울리는 맥락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텍스트는 컨텍스트와 만날 때, 비로소 말이 된다. 이 둘 사이를 끊임없이 왕복하는 것이 해석이고, 그 운동성 안에서 우리는 ‘믿음’이라는 오래된 단어를 새롭게 조립한다. 고정된 진리는 없다. 오직 다시 읽히고, 다시 질문되는 진리만이 있다.
믿음이라는 단어 또한 단순하지 않다. πίστις. 단지 무엇을 ‘믿는다’는 뜻이 아니라, 신실함, 믿을만함, 그리고 관계에 대한 충성이다. 믿음은 감정의 고조나 지식의 동의가 아니라, 신에게 등을 돌리지 않는 자세이며, 부재 속에서도 머무는 결의이다. 의심을 거두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의심의 길을 걸으면서 삶의 진동을 견뎌내는 것. 흔들리는 마음 안에서 다시 걷는 그 지속. 그것이 믿음이다.
신은 그리 쉽게 붙잡히는 존재가 아니다. 조이스는 신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신을 감히 설명하려 들지 않았다. 그는 말한다. “나는 의심 속에서 믿는다”고. 신을 말로 감싸기보다, 말이 다다를 수 없는 지점에서 머무는 쪽을 택한 것이다. 그 자리에서 신앙은 확신이 아니라 경외로, 감정이 아니라 기다림으로, 체험이 아니라 해석으로 변한다. 종교는 그런 느린 변화 안에서 자란다.
믿음은 경험을 완성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험이 사라진 뒤에도 남아 있는 그 조용한 고백을 기다린다. 흔들리는 마음 속에서도 “주께서 말씀하셨기에”라는 말이 울릴 수 있다면, 그 자리에 신앙은 이미 서 있다.
파편은 빛난다. 그러나 그것은 조각의 빛이다. 그 조각 위에 세운 믿음은 종종 삐걱이며 기울어진다. 반면, 의심은 때로 돌처럼 무겁고,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아래에는 성찰의 토대가 숨어 있다. 파편으로 쌓은 확신은 쉽게 무너지지만, 유보하는 마음으로 두드리는 의심은 오히려 더 견고하다.
진리는 완성된 형태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깨진 조각들 사이를 해석하며 나아가는 서사다. 조각은 많고, 연결은 어렵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우리는 더 오래 머무르고, 더 깊이 사랑하게 된다. 확신은 재단하지만, 의심은 경청한다. 그리고 믿음은, 그 경청 끝에서 나직이 대답한다.
믿음은, 결국 파편으로 시작해도, 파편 위에 머무르지 않는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