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는 히어로를 꿈꾸는 한 소년이 최고의 히어로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다. 이렇게 소개하면 애들 보는 유치한 만화라고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실제로 나도 그렇게 생각했으니 할 말은 없다. 딸들이 정말 좋아하는 만화라고 강추할 때도, “그래그래 니들 나이에는 원래 그런 유치한 거나 보면서 즐거워하는 거야~”라며 넘겼다. 그랬던 내가 최근 40권까지 정주행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진짜로). 그리고 중학생 딸들에게 사과했다. 이건 정말이지 너무나 멋지고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너희들이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 이제야 알았고, 늦게 읽어 봐서 미안하다고.
이 글은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이하 <나히아>)에 대한 감상문이다. 전문적인 리뷰는 아니지만,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람이 무너지기 쉬울 때
사람이 무너지기 쉬울 때가 있다. 괴롭고 힘든 시기를 홀로 헤쳐나가고 있다고 생각될 때, 이제 다 포기하고 내려놓고 싶은 그런 순간이 있다. 그런 때에 손을 내밀어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를 히어로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 누군가를 도와준다면, 그에게 히어로라고 불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히어로가 되어줄 수 있다. 네가 힘들 때는 내가, 내가 힘들 때는 네가, 그렇게 서로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를 나누어 줄 수 있다.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이하 <나히아>)는 바로 그런 우리들의 이야기다. 어느 한 명의 위대한 히어로 이야기가 아니라, 모두가 히어로가 되는 이야기다. 만화 속의 히어로들 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살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나히아>를 보면서 유독 눈물이 났던 장면이 있다. 주인공 미도리야 이즈쿠를 같은 반 친구들이 다 함께 학교로 데리고 돌아오는 장면이다. 미도리야는 최고의 히어로가 되기를 꿈꾸며 히어로 전문 교육기관 ‘유에이 고교’에 입학한 1학년 학생이다. 그는 역대 최강의 히어로가 지녔던 힘을 물려 받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역사상 최악의 빌런에게 노려지게 된다. 최악의 빌런은 미도리야의 힘을 빼앗으려 했고, 몇 차례의 격렬한 전투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같은 반 친구들이 죽을 뻔했고, 학교의 선생님을 포함한 프로 히어로와 일반 시민 가운데서도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미도리야는 결국 학교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최악의 빌런도 크게 다쳐 당분간 활동하기 어려운 상황. 그러나 언제 어떤 모습으로 되돌아올지 예측할 수 없었다. 미도리야는 최악의 빌런을 꾀어낼 미끼 역할을 자처하며 폐허가 된 도시를 유랑한다. 그의 스승이 곁에 있었지만, 스승님도 자신 때문에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결국 그마저 따돌리고 혼자가 된다. 폐허 속에서 남아 있는 시민들을 구하면서 빌런과의 싸움을 계속하는 미도리야. 슈트는 너덜너덜해지고 몸과 마음이 닳을 대로 닳아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상황에 처한다.
“어디든 달려 가서 손을 잡아 주겠다”
그때 미도리야와 같은 히어로과 A반의 친구들이 나타난다. 자신을 걱정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와 준 친구들을 고맙게 생각하면서도, 다시 친구들과 시민들이 위험에 빠질까 봐 돌아가길 거부하는 미도리야. 결국 “너희들은 나를 따라올 수 없어”라며 실력 행사로 돌파하려 한다. 1대1로는 누구도 따라오기 힘든 경지에 오른 미도리야지만, A반 학생들은 차례대로 자신의 힘을 다음 주자에게 전달하는 협동 플레이를 펼치며 추격한다. 마지막 주자로서 자신의 한계속도를 이끌어내며 하늘 위에서 미도리야를 잡는 데 성공한 반장 이이다 텐야(히어로명 ‘잉게니움’)는, 여전히 손을 놓으라고 말하는 미도리야에게 이렇게 외친다. “안 놓을 거야! 쓸데없는 참견이란 건, 히어로의 본질이잖아.”라고.
“쓸데없는 참견이란 건, 히어로의 본질이다”는 <나히아>에 자주 등장하는 대사다. 히어로는 오지랖이 넓어야 한다는 의미도 될 수 있지만, 그보다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나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는 사람은 히어로가 될 자격이 없다는 의미에 가깝다.
현실에서도 그렇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알아보더라도, 만화 속 히어로처럼 선뜻 손을 내밀기는 결코 쉽지 않다. 더욱이 자신의 손해나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나를 도와줄 사람은 많지 않다. 부모라 할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용기 내어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 손을 잡고 다시 일어서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그 작은 호의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비록 만화 속 히어로처럼 목숨까지 걸지는 않았더라도, 그 손을 내미는 데에는 결코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했다는 것을. 그것을 알게 되면, 나도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어려울 때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히어로가 되어줄 수 있다.
<나히아>에서 가장 눈물 났던 장면은 히어로가 빌런에게 승리하는 장면도, 주인공이 최고의 히어로가 되는 장면도 아니다. 바로 모두가 서로에게 히어로가 되어주는 장면이다. 나도 힘들고 두렵지만, 나보다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누군가를 위해 떨리는 걸음으로 뛰쳐나와 손을 잡아주는 장면이다.
나의 히어로들에게
나도 살면서 그같이 고마운 히어로들을 많이 만났었다. 힘들게 들어간 좋은 대학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가보겠다고 하는 아들을 끝까지 믿고 응원해준 부모님. 결혼 후 제대로 된 수입 없이 시간강사와 번역가로 살던 나를 먹여 살려준 짝꿍. 늦은 나이에 들어간 회사에서 마음을 열고 나를 받아 준 동료들. 회사에서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나서준 동료들. 모두가 나의 히어로들이다.
나의 히어로들에게 나 또한 다짐한다. 미도리야와 이이다가 서로에게 그랬듯이, 말하지 않아도 그들이 힘들어 보이면 먼저 손을 내밀 것이라고. 만약 미안해 하며 뿌리친다면 더 센 힘으로 팔을 잡고 일으켜 주겠다고.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힘들어하는 그들을 혼자 두지 않겠다고. 그들이 나에게 히어로가 되어 주었듯이 나도 그들의 히어로가 되어주겠다고.
히어로를 히어로로 만드는 것은 슈퍼파워나 이능력도 아니고 강화슈트도 아니다. 바로 ‘용기’다. 도움이 필요한 내 주변의 사람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어줄 용기 말이다. 그 용기를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최고의 히어로가 되어줄 수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