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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이동 신청, 도망일까 도전일까?

by Woo Play

부서이동 신청을 고민 중이다.


업무가 싫거나 과중해서는 아니다. 나는 내 업무를 좋아했다. 시키지 않는 야근도 할 정도로. 하고 싶었던 일은 아니지만, 재미도 있고 적성에도 맞았다. 그것 만큼은 회사에 감사하며 살았고, 가능하면 마지막 날까지 지금의 부서에서 근무하고 싶었다.


하지만 부서를 떠날 결심을 하고 있다. 아니, 결심은 이미 했고 ‘어떻게’를 고민 중이다.


이유는 사람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쓰지는 못하겠다. 필명을 쓰고 있지만 본명을 숨기지 않고 있어서, 함부로 회사 사람 이야기를 쓸 수 없다는 이유가 크다. 이 부분은 브런치스토리 시작할 때부터 고민했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내 경력과 과거를 숨기고 싶지도, 익명 뒤에 숨어서 남의 이야기를 쓰고 싶지도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그 사람이 밉고 이해하기 어렵다. 익명 커뮤니티에 그 사람과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을 줄줄이 써서 대중의 심판을 받아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내가 얻는 게 무엇인가? 내 입장에서 쓴 글만 가지고, 바라던 대로 내가 옳았고 그가 나빴다는 익명 대중의 지지를 얻었다 치자. 그러면 내 문제가 해결될까? 잠깐의 정신승리는 맛볼 수 있을지 몰라도 나의 현실은 그대로일 것이고, 허탈감과 분노의 마음만 더 커질지 모른다.


그런 일에 나의 에너지와 감정을 소모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 쓸 것도 모자라니까. 그렇지만 이대로 참으면서 회사생활을 계속하는 것도 무리였다. 좋아하는 만화나 게임을 해도 즐겁지 않을 때가 늘어난다. 긴 휴식과 운동으로 잠시 마음의 평정을 찾아도, 출근해서 다시 같은 일을 겪으면 괴로움이 더 큰 반동과 함께 돌아온다.


결국 그 사람과 나를 분리시키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결론에 도착했다. 이 결론을 얻기까지 1년 반 정도 걸렸다. 그동안 나도 그 사람에게 맞춰 보기 위해 노력했었고, 그도 조금씩 변화했었다. 하지만 서로 겉으로만 변하는 척하면서, 본질적인 문제는 피해왔었던 것 같다. 우리는 단 둘이 있는 자리에서 그 사실을 매우 좋지 않은 형태로 확인했다. 그리고 나는 부서를 떠나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안다.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을.


결심은 했지만 고민은 계속되었다. 부서이동 신청은 합당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 업무만 보면 내가 지금의 부서를 떠날 이유가 없다. 물론 내가 없다고 업무가 마비되거나 부서가 안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있을 때보다 잘 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당장의 업무 공백은 피할 수 없을 것이고, 동료들에게도 피해가 갈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도 예정에 없던 변수가 생기는 것이다. 업무적 필요성에 의해서 지시받은 부서이동도 아니고, 회사에 더 큰 이익을 가져다 주겠다고 벌이는 일도 아니다. 그저 떼를 부리는 것으로 보여질 수 있다. 옮겨가는 부서에서도 반기지 않을 수 있다. 어쨌거나 환영받지 못할 부서이동이 될 것이다.


알고 있다. 비슷한 문제로 먼저 부서를 떠났던 옛 동료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 지를. 결국 퇴사한 자도 있고, 유령처럼 조용히 다니는 이도 있다. 그들을 두고 어떤 말들이 오갔는지도 알고 있다. 나는 그들과 다를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부서이동을 신청하려 한다. 내게 있어 이건 자기 보호와 생존의 문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는 도망치고 있는 걸까?


도망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망이 꼭 나쁜 건가? 이대로는 죽을 것 같아서 도망치는 사람에게 도망치지 말고 맞서 싸우라는 말은 잔인하다. 도망이 편한 길이라는 생각도 편견이다. 왜냐면 도망친다고 해서 바로 편해지는 것도 아니고, 도망치는 데에도 노력과 각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의 이 선택은 도망이 맞지만, 도전이기도 하다. 나는 익숙한 사람들과 환경, 몸에 맞는 업무를 버리고 다른 부서, 해본 적 없는 업무에 적응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제 내게는 도망치는 이유와 도전의 목표가 일치한다. 그것은 회사에서 내가 더 건강한 상태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커리어 개발이나 승진처럼 더 큰 꿈을 찾아서 신청하는 부서이동이 아니니까. 그저 퇴근 후에 회사 생각 안 해도 되는 일상을 바랄 뿐이다. 회사에서 받은 부정적 스트레스가 나의 사적 영역을 잠식하고 지배하지 않기를 원한다.


이 선택이 옳은지 그른지 나는 아직 모른다. 부서이동 신청을 반려당할 수도 있고, 결과적으로 더 안 좋은 상황에 놓이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대로는 내가 더 힘들어질 뿐이라는 거다. 관계 개선을 위해 더 노력해볼 생각은 없냐고? 1년 넘게 노력해봤고, 그런데도 겪을 만큼 겪어봤으면, 도망의 이유로 부족하진 않은 것 같다.


도망치는 게 어때서? 그것도 살기 위한 노력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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