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과 ‘좋은 동료’는 다르다
부서를 옮기고 3주가 지났다. 내가 신청한 부서이동이었지만, 실제로 발령이 날지, 난다면 어디로 가게 될지도 모른 채 약 2달을 기다렸다. 발령 하루 전까지 어떤 언질도 듣지 못하고 있다가, 오후 3시쯤 소식을 들었다. 내일부터는 다른 부서에서, 지금까지 해왔던 일과 전혀 다른 업무를 하게 될 것이라고.
소식을 들은 몇몇 동료들이 나를 걱정하며 괜찮겠냐고 물어봐 주었다. 나와 연관성이 있지도 않고 교류도 거의 없던 부서로의 발령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낯선 부서, 처음 해보는 업무에 대한 두려움보다도 기쁜 마음이 먼저 들었다.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보다 ‘뭐든 지금보단 낫겠지’라는 희망이 컸다. 아직 한 달이 조금 안 되었지만, 나는 전보다 편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하고 있다.
일이 적거나 편해서는 아니다. 일손이 특히 부족했던 부서였고,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바로 실전을 치르면서 배워야 했다. 처음 보는 생소한 용어가 많았고, 업무의 순서도 바로 이해되지 않았다. 뜻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외워서 하다가 2주 차부터 조금씩 용어의 의미와 업무의 순서가 머리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 모르는 게 더 많고, 배워야 할 업무도 한참 남았다.
그래도 최근 2년 사이 가장 홀가분한 마음으로 회사에 다니고 있다. 그것이 나는 기쁘면서도 씁쓸하다. 기쁜 것은 당장 2년 가까이 나를 짓누르던 스트레스 상황에서 벗어났기 때문일 테고, 씁쓸한 것은 떠나온 부서와 거기서 했던 업무에 애정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전 부서에서 하던 업무는 내 경력과 적성에 맞는 일이었다. 은퇴할 때까지 이 업무를 하고 싶었다. 그 정도로 애정을 갖고 임했던 일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내 손으로 그만두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실제로 발령 이후 마주치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물어본 것도 이 부서 이동이 내가 원했던 것이었는지 아니면 타의에 의한 것이었는지였다.
남들이 봐도 내가 그 부서와 그 업무를 떠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업무에 아무리 애정이 많고 나와 잘 맞는다고 해도, 같이 일하는 사람과 맞지 않으면 그곳은 지옥이 될 수 있다. 특히 그 사람이 내 업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반대로, 낯설고 처음 해보는 일이라도 동료들과 업무적으로 잘 소통이 될 수 있으면 괜찮은 회사생활을 할 수 있다. 이번 부서이동으로 깨달은 점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좀 더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있다. 나는 왜 거기서는 힘들었고, 여기서는 괜찮다고 느끼고 있는 것일까? 거기는 나쁜 사람들만 있었고, 여기는 좋은 사람들만 있어서? 아니다.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과도, 회사가 아닌 다른 곳에서 개인적으로 만났다면 서로 좋은 관계로 잘 지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였을까? 그것은 아마 개인적으로 ‘좋은 사람’과 업무적으로 ‘좋은 동료’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회사에서는 ‘좋은 사람’이 꼭 ’좋은 동료’가 된다는 보장이 없다. 나에게 친절하거나 개인적으로 잘 맞는 사람이라고 해도, 업무 스타일이나 일하는 방식에서 충돌이 생긴다면 함께 일하는 것이 고통스러울 수 있다. 반대로, 사적인 교류는 거의 없는 사이라고 해도 업무에 있어서 서로 존중하고 배려할 수 있는 사람과는 충분히 좋은 동료가 될 수 있다.
회사는 일을 하러 오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이 얼마나 착한지, 혹은 나와 성향이 비슷한지는 본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업무적으로 신뢰할 수 있고 서로의 일에 도움이 된다면 좋은 동료다. 반대로, 아무리 개인적으로 호감이 가는 사람이라고 해도 내 업무에 방해가 된다면 결국 나쁜 동료가 된다. 인간적인 호감과 일하는 궁합은 별개의 문제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후자가 훨씬 중요하다.
나는 일은 일로서 대하는 사람, 일과 사람을 혼동하지 않는 사람이 좋다. 되도록 그런 사람들과 같이 일하고 싶다. 반대로 개인적 친분과 공적인 업무를 혼동하는 사람, 일을 하는 데 있어서 개인적 감정이 업무상의 원칙보다 우선하는 사람과는 가능하면 일로 엮이기 싫다.
업무적으로 부딪히더라도, 그것을 일로 끝내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나와 친한 사람이라도 업무적으로는 다른 의견을 낼 수 있음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고, 나에게 반대하는 사람은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공적인 업무 앞에서 개인적인 친분이나 감정의 문제는 접어둘 줄 아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후자에 속하는 사람과 업무적으로 얽히게 되면 불행해질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을 피하는 것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는 가능하면 얽히고 살지 않기를 바란다. 내 나름대로 그런 사람들과도 잘 지내보려고 많이 노력해봤지만, 쉽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는 더 빨리 관계를 정리하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이직이나 퇴사와 같은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고도 나와 맞지 않는 사람에게서 떠날 수 있는 길이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 만약 다른 방법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도 아주 불행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