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 시절 내게 가장 필요했던 선생님 <굿모닝! 티처>

만화에세이 No 10, 『굿모닝! 티처』(서영웅, 학산문화사)

by Woo Play



얼마 전 우리 집 청소년들의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났다. 그들은 결과야 어쨌든 일단 시험 하나가 끝났다는 사실에 그저 행복해하는 것 같았다. 부모 입장에서는 그 성적으로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 지가 걱정인데, 당사자들은 속 편하게 놀 생각뿐인 것 같다. 하지만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나도 그때는 그랬으니까.


좋든 싫든 대한민국에서 청소년으로 사는 이상 입시 스트레스는 피하기 어렵다. 고등학교 3년은 인생에서 가장 넘치는 에너지로 반짝이는 시기이지만, 대학 입시라는 압박감이 지배하는 때이기도 하다. 지금의 등급과 석차가 곧 미래의 자신의 사회적 지위로 굳어질 것만 같다는 불안감 혹은 자만심에 사로잡혀, 눈을 가린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게 되는 그런 시절이다.


부모인 동시에 그 시절을 먼저 겪은 선배의 입장에서, 몇 해 뒤 수능을 치러야 하는 아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줘야 할지 늘 고민이다.


학창 시절의 성적이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진 않는다. 꿈 같은 소리 같지만, 살아보니 진짜로 그랬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공부보다는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라고 말해 줄 용기 있는 부모는 되지 못한다. 결국 “잘하는 것도 없으니 공부라도 열심히 해야지”라는 꼰대 소리나 하는 부모가 된다.



“하고 싶은 일은 천천히 찾아도 되니까 일단 공부를 잘해라”

“공부만 잘하면 나중에 얼마든지 네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


저 말들이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저런 소리를 가장 많이 듣던 시절의 나는, 그것을 순순히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지 않았다. 이 또한 살아보니 사실임을 알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그저 우리들을 학교에 가둬 공부만 시키기 위한 어른들의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그 시절의 나는 공부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맹목적으로 말하는 어른들이 싫었다. 그러나 겉으로 표출하지는 않고 적당한 모범생으로 살았다. 공부도 그럭저럭 잘하는 편이었다. 부모님과 선생님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최상위권이 될 수 있다”며 안타까워 하셨지만, 그 성적은 내 한계를 120% 끌어낸 것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때의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야간 자율학습과 학원과 과외를 뺑뺑이 도는 삶이 아니었다. 그렇게까지 노력했는데도, 그 이상을 해내야 한다는 중압감이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에 스스로를 채찍질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가장 스스로를 열심히 채찍질하던 시기에 몇 번을 잃고 또 잃은 만화책이 있었다.


서영웅 작가의 <굿모닝! 티처>, 일출고등학교 학생 ‘박영민’이 고등학교에 입학해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95년부터 1999년까지 소년챔프에 연재되었는데, 그 시기는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해 대학생이 되었던 때와 겹친다.


주인공 박영민을 비롯한 일출고 학생들의 이야기는 곧 나와 내 친구들의 이야기였다. 내게 그들은 만화 속 캐릭터가 아니라,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청소년이었다. 내가 학교를 다니면서 했던 많은 고민들 - 성적 스트레스, 이성에 대한 호기심, 친구들과의 갈등 등을 그들도 똑같이 겪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정경희’라는 선생님이 계셨다는 것이다. 그는 “친구 같으면서도 선생님다운 선생님”이었다. 학생들과 같이 도시락을 까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장난을 주고받는 젊은 체육교사. 그러나 때로는 지극히 보수적인 선생님으로서의 면모를 보이는 이중적인 캐릭터다.


20250414_094632000_iOS.png


어려운 수학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학생에게, “네 말대로 졸업하면 학교에서 배운 수학 공식을 써먹을 일은 거의 없을 수 있다”면서 공감해주는 한편으로, “그렇지만 네가 지금 수학시험을 쳐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라며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는 그런 선생님이다.


특히 고3 담임을 맡았을 때, 제자들에게 “1년 후의 자신을 생각하느라 지금의 자신을 잊고 있는 건 아닌지” 물어보면서, 비록 입시라는 현실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지금의 자신을, 자신의 삶을 좀 더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되라는 말을 해주는 장면은 맹목적인 수험생활에 지친 나에게 큰 위안이 되어주었다.


부모님도 그 어떤 선생님도 해주지 못했던, 당시의 내게 가장 필요했던 말을 정경희 선생님이 해준 것이었다. 비록 현실의 선생님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에게서 인생의 많은 것을 배웠다.



그 <굿모닝! 티처>가 몇 년 전 전자책으로 복각되었다는 소식을 최근에야 들었다. 곧바로 사서 태블릿으로 열어 보았고, 나는 90년대 말의 고등학교로 돌아간 기분이 되었다.


엄마가 싸준 점심 도시락, 칠판과 분필을 쓰는 수업시간, 선풍기와 석탄 난로가 있는 교실 풍경. 축제와 체육대회, 수학여행과 극기훈련, 수능 100일 주 등의 추억이 만화 속 에피소드와 겹쳐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40대가 되어서도 10대 때의 일이 고스란히 기억난다는 것이 신기하고 기뻤다.


그러나 정경희 선생님에 대한 생각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정경희 선생님이 마냥 멋있어 보였고, 나도 저런 어른이 되고 싶다고 동경했었다. 왜 우리에겐 저런 선생님이 안 계신 것인가, 우리나라 교육계에서는 정경희 같은 선생님이 나올 수 없는 것인가라는 주제로 야간 자율학습을 하다 말고 친구와 열띤 토론을 했던 적도 있었다.


내 기억 속 정경희 선생님은 그만큼 ‘훌륭한 어른’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하지만 다시 읽어보니, 그도 미숙하고 실수가 많으며 종종 열정이 과해 선을 넘기도 하는 그런 20대였다. 아직 현실에 덜 찌든 사회 초년생의 느낌이 강했다.


재밌는 것은,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더 정경희 선생님이 멋있어 보였다는 점이다.

20250417_113243000_iOS_1.png


그는 학생들 앞에서라도 자신의 실수를 사과할 줄 아는 어른이었다. 교사로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훈육하면서도, 그들이 느끼는 대한민국 교육의 부조리와 모순에 깊이 공감한다. 그래서 본인도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며 흔들릴 때도 많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미숙함까지 솔직하게 인정하고 드러낸다.


부모든 선생이든 아이들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낸다는 건 쉽지 않다. 자녀나 제자 앞에서 권위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는 정경희 선생님처럼 자신 또한 나약한 한 명의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긍정하고, 정답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함께 길을 찾아보자고 말해주는 어른이 좋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부서를 옮기고 깨달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