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우주를 걷기 위하여』(도로노다 이누히코, 2023~)
여기 우주를 걷고 싶어 하는 소년이 있다. 우주비행사가 꿈인 것 같다. 우주비행사는 머리도 좋고 신체능력도 우수해야 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소년은 그러기는커녕 평범한 일상생활조차 어려운 사람으로 보인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히 알 수 없다. 유일한 보호자인 누나는 “남들과 똑같이 생활하기 위해 더 큰 노력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할 뿐이다.
만화 『너와 우주를 걷기 위하여』의 주인공 우노 케이스케의 이야기다.
우노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대처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그래서 해야 할 일들이나 행동수칙을 노트에 적어 놓아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을 개고 양치를 한다”, “버스를 타기 전에 시간표를 확인한다” 같은 것들이다. 기억하고 있는 내용이라 해도 노트에 적혀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 노트에 없는 상황을 마주하면 당황하거나 경직된다. 우노는 그런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혼자서 우주에 떠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눈앞이 캄캄한 가운데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그저 막막하기만 한 상태. 우노가 말한 그 기분을 나도 잘 알 것 같았다. 자폐 스펙트럼을 갖고 있지 않아도 그런 경험은 얼마든지 있다. 잘 모르는 일을 갑자기 해야 할 때, 예상치 못한 상황에 휘말릴 때는 누구나 당황할 수 있다. 그런 경험이 누적되면 비슷한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위축되기 쉽고, 도망치고 싶어진다.
우노에겐 다른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 대부분 그런 부정적 경험으로 다가올 것이다. 매일매일이 공포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노는 큰 소리로 외친다.
“그래도 우주를 걷고 싶습니다”라고.
우주는 양면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 동경과 애호의 대상으로서의 예쁘고 멋있고 낭만적인 우주와, 끝없는 미지의 공간이 가지고 있는 경외심과 두려움의 대상으로서의 우주. 우주는 인간의 환상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동시에 두려움과 경외심을 느끼게 한다. 어릴 적부터 혼자 하루 종일 우주 도감 같은 것을 보며 지냈다는 우노는 그런 우주의 양면성을 잘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우노가 일상을 우주 같다고 느낀 이유는, 그것이 동경하고 갈망하는 대상인 동시에 어렵고 두려운, 우주와 같은 양면성을 지닌 세계였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에 가서 아침마다 친구들과 인사하고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실컷 수다를 떠는 평범한 일상이, 우노에겐 몹시 어렵고 멀게 느껴진다. 그래도 하고 싶다. 그런 우주 같은 매일을 걷고 싶으니까.
우주비행사에게는 '테더'라는 생명줄이 필요하다. 테더가 있어야 안전하게 우주를 유영할 수 있다. 우노에겐 노트가 테더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노트에 적혀있지 않은 일을 맞닥뜨리면 더 어쩔 줄을 몰라 하고, 노트를 잃어버리거나 빼앗기기는 일도 많았다. 우노의 불완전한 테더를 보완해 준 건 우노가 전학 온 학교에서 만난 친구, 코바야시 야마토였다.
코바야시는 일찍부터 학업을 포기한 불량아다. 자신이 남들보다 머리가 좋지 않다는 사실을 어린 나이에 자각한 이후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그도 '남들처럼'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우노와 비슷하다. 학교 수업도, 아르바이트도 남들처럼 곧잘 해내지 못한다. 그런 자신이 쪽팔려서 더 삐뚤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우노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한편으로, 자신의 부족함에서 도망가지 않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우노를 보면서 큰 자극을 받는다.
잃어버린 노트를 되찾아준 코바야시에게 우노는 이렇게 말한다. "코바야시 군 덕분에 나는 우주를 걸을 수 있습니다"라고. 우노에게 노트가 테더라면, 코바야시는 테더가 흔들리거나 끊어지지 않는지 살펴주는 버디다. 하지만 도움을 받는 건 우노만이 아니다. 코바야시도 우노를 보고 용기를 내어 줄곧 피해오기만 했던 현실에 부딪혀 나아가기 시작한다. 조금씩 자신만의 테더를 만들면서.
우노와 코바야시를 보면서 나도 용기를 얻는다. 하루하루가 힘들고 막막해서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서 미칠 것 같을 때도 있다. 아무도 길을 가르쳐주지 않을 때는 정말 우노가 말한 것처럼 혼자 우주 속에 던져진 기분이 든다. 나만이 아닐 것이다. 그런 기분을 종종 느끼면서도, 어떻게든 하루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사람은.
그런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 이 표현은 『너와 우주를 걷기 위하여』 1권 작가의 후기에서 빌려왔다. 작가의 이름은 도로노다 이누히코(泥ノ田 犬彦)다. "도로노다"는 진흙밭을 뜻하고, "이누히코"는 개 견 자에 선비 언 자를 쓴다. 만화를 그리는 자신이 "진흙탕처럼 몸부림치는 개의 이미지"이기 때문에 필명을 그렇게 정했다고 한다.
그 필명이 이 만화의 주제를 참 잘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개처럼 몸부림치면서 하루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우린 모두 굉장하다. 우노도 굉장하고, 나도, 코바야시도, 당신도 굉장하다. 일상이라는 낯선 우주를, 저마다의 테더를 손에 쥐고 한발 한발 매일 걸어가고 있는 위대한 탐험가들이다. 또 내일이면 주저 앉아 울거나 도망가고 싶어질 지 모른다. 그래도 아직 이 우주 같은 매일을 걷고 싶은 걸 보면, 내게도 나만의 테더와 버디가 있는 뜻이겠다. 그 사실에, 내가 우주를 걸을 수 있게 해준 모든 것들에 새삼 감사해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