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액제 남편의 용돈 만세』 (요시모토 코지, 2019~)
처음 이 만화를 알게 된 건 인터넷에 떠도는 아래 짤 때문이었다.
“Work is not my life”의 신념 아래 정시출퇴근, 연결되지 않을 권리, 일과 나의 철저한 분리를 추구하는 나에게 이 짤은 충격과 공포로 다가왔다. 짤이 꽤 퍼진 걸 보니 나 말고도 여기에 충격받은 사람이 적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직 우리 사회에는 제정신인 사람이 조금은 더 많은 것 같아 약간의 안도감이 들었다. 동시에 이런 정신 나간 이야기를 하는 만화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책 제목은 『정액제 남편의 용돈 만세 ~월정액 21,000엔의 빈곤 라이프~』. 작가 요시모토 코지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용돈 다큐멘터리 만화다. 마침 국내에 1권이 정발되어 있어 읽어 보았다. 짐작과는 달리 회사에 대한 만화는 아니었다. 회사원이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어른들의 용돈 라이프에 대한 리얼한 르포다.
정확히는 서바이벌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용돈 2만 엔으로 한달살기” 대회를 보는 것 같다. 에피소드 하나에 한 명씩, 각자의 슬기로운 용돈 생활을 자랑한다. 얼마나 적은 용돈으로 한 달을 버틸 수 있는지, 같은 물건을 얼마나 싸게 살 수 있는지, 그렇게 아낀 용돈으로 무엇을 하는지 등등을 자랑한다.
그 짠내 나는 생존기를 보고 있으면 우습고 슬프다. ‘이게 과연 자랑할 거리인가?’라는 생각이 들지만, 본인들은 큰 성취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참고로 등장인물은 전부 실제 모델이 있으며, 작가가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그린다고 한다.
첫 화는 작가 본인의 이야기였다. 작가의 용돈은 월 2만 1천 엔. 그 안에서 좋아하는 간식도 사 먹고, 아이들 장난감도 사주고, 자기 취미생활도 즐겨야 한다. 생활비로 지출할 수 있는 항목은 부인과 합의해 정하는데, 기준이 상당히 빡빡하다. 작업실 전등을 LED로 교체하는 것도 굳이 필요하지 않은 지출이라는 이유로 용돈에서 까야 했다. 부인이 너무하다고 생각하는가? 부인의 용돈은 월 7천 엔이다. 세계관 최강자 되시겠다.
그 외에도 점심값 포함 월 2만 엔으로 버티는 직장인 등 놀라운 능력자들이 등장해 용돈 배틀을 벌인다. 기본적으로 얼마나 절약을 잘하는 지를 중요하게 보지만, 더 중요한 기준은 따로 있다. 바로 한정된 예산으로 ’얼마나 즐길 수 있느냐’이다.
등장인물들의 용돈은 편차가 있긴 하지만, 보통 2만 엔+@ 수준이다. 한 달을 버티기엔 쉽지 않다. 물론 생활비와는 별개인 순수 용돈이지만, 뭔가를 풍족하게 누리기엔 부족한 금액인 건 맞다. 하지만 이곳의 등장인물들은 그 적은 용돈을 아끼고 아껴 자신만의 ‘작은 사치’를 즐기는 데 쓰고 있다.
작가의 부인은 한 달에 딱 한 번, 좋아하는 호프집에서 혼술을 즐긴다. 용돈 7천 엔의 절반은 그날을 위해 남겨 놓는다. 바이크가 취미인 어떤 가장은 월 2만 5천 엔의 용돈으로 점심값과 바이크 정비비용까지 감당하며 한 달에 한 번 당일치기 바이크 투어링을 다녀온다. 새 바이크는 꿈도 못 꾸므로, 부품 소모를 막기 위해 출근길에도 바이크를 타지 않으며 정비도 직접 한다. 두 달에 한 번, 포인트 2천 점이 모이면 그것을 편의점 쿠폰으로 바꿔 혼자만의 파티를 즐기는 것을 낙으로 살아가는 직장인도 있다.
그 ’작은 사치‘는 고생해서 누리는 보상이라기엔 몹시 조촐해 보였다. 부자는 아니라고 해도, 적당히 벌 만큼 버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까지 궁상맞게 구는지도 잘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도 벌이가 넉넉하진 않지만 그 정도로 짠돌이가 될 자신은 없다. 그렇게 살면 너무 비참할 것 같았다.
하지만 매 에피소드에서 등장인물들이 가장 행복해 보이는 장면은, 바로 그 ‘작은 사치‘를 누리는 순간이다. 모든 에피소드에서 그 장면만큼은 큰 컷으로, 가장 밝게 웃는 얼굴로 그려진다. 마치 “나는 이날을 위해 살아간다”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다. 그 표정이, 몹시 부러웠다.
나는 그런 표정을 얼마나 짓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