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시여, 우리에게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은 평온으로 받아들이는 은혜를,
바뀌어야 하는 것들은 바꿀 수 있는 용기를,
그리고 그 각각을 구별하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라인홀트 니버의 유명한 기도문이다. 당분간 멀리 떨어져 계신 연인께서, 그 먼 타지에서 전혀 예상도 할 수 없었던 난처한 상황을 겪게 되어, 마음고생도 스트레스도 심한 상황이었다. 어쩌면 그곳까지 가게 된 그 이유가 어그러질 수도 있었고, 그렇다면 이제까지 준비하고 계획한 그 모든 시간과 노력들이 한순간 무너져 내리는 것이니, 그 심정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대략적인 상황을 전해 듣고선, 그저 위로만, 그저 기도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연인을 떠올리며, 연인의 상황을 생각하며, 연인에게는 날이 밝아 올 즈음, 나에게는 아직 깊은 밤이 한창일 즈음, 연인에게 위로의 말을 남기며, 진심으로 이러이러하게 기도하겠다 남겨놓고선, 다시 한번 읽어 내려갈 때에 떠오른 것이 바로 니버의 저 얼핏 겸손하고 소박해 보이는 기도문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연인을 위해 기도한다며 쓴 그 기도에 '소소한 기도'라고 이름 붙였었고, 그러고 보니 왠지 모르게 그 기도의 태도가 낯익어 보였기 때문이다. 막막하고 답답하기만 하던 상황이 갑자기 잘 풀리길 바라는 건 너무나도 거대하고 어려운 기도 같아서 잘 이루어지지도 않을 것 같고, 다만 연인의 마음이 잘 지켜지기를 그래서 잘 대처할 힘을 얻으실 수 있기를, 그러는 과정 중에서도 나름의 유익을 얻으실 수 있기를, 바라는 건 그래도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소소한 기도지만 연인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나는 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꿔야 하는 것. 그런데 저 기도문을 떠올리며 곰곰이 다시 생각해볼 때, 나의 그 소소한 기도는 정말로 합당한 것일까 고민스러워졌다. 내가 소소한 기도라 이름 붙이며 무심결 내 안에서 나온 그 기도는 바꿀 수 없는 것으론 외부 환경을, 바꿀 수 있는 것으론 그 외부 환경 속 연인의 마음가짐을 놓아 버리는 것이었고, 그러한 면에서 어쩌면 너무도 소극적이고 순응하는 형태의 삶만을 바라는 것이지 않을까. 네 마음이나 바꾸라고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짜증스러워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연인께, 그렇게 감정을 동요시키는 건 불필요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라고 압박하고 있는 건 아닐까. 네 마음먹기에 달렸다며 말이다. 나는 내 연인께서 그러한 삶의 태도와 관점으로 자신의 삶을 바라보시길 기도한 것일까.
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꿔야 하는 것. 그 각각으로 구별돼야 하는 대상이 모두 다 외부 환경들로 적용된다면 이 기도문은 꽤나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과 그 삶의 환경들을 변화시킬 수도 있을 것 같다. 때로는 평온이라는, 때로는 용기라는 마음의 자세를 발휘하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니버의 저 기도문은 결코 소소할 수는 없을 기도인 것 같다. 자기 앞에 놓인 삶의 문제들과 환경들을 직접적으로 마주하며, 맞서 바라보며 그 외부를 향해 선포하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그 기도문의 한 부분,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으로 받아들이는 정도에나 내가 생각했던 그러한 소소함이 살짝 묻어있을 순 있을까. 하지만 그 평온은 용기를 잃어버리지 않았기에 평온이다. 머나먼 곳에서 한껏 고생하고 있을 연인께, 그러한 평온이 깃들기를 다시 기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