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우리의 미래를 보는 것이 조금 무섭다는 너에게
어느새 삼십 대 중반을 향해가는 내 생일을 맞아, 그리고 우리 만남을 시작한 지 어느새 삼 년을 훌쩍 넘어 1200일쯤 되는 날을 기념하며, 연인님이 써준 편지에는 미래를 보는 것이 무섭다는 문장이 쓰여 있었다. 편지 속의 이 문장에는 생략되어 있었지만, 연인님이 무섭다는 그 미래는 아마도 우리 둘의 미래일 것이다. 앞으로 우리의 관계가 얼마나 오래, 또 얼마나 주변의 큰 무리 없이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무서움. 그렇다면 연인님은 우리 관계가 언젠가는 끝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생각하시는 걸까….
편지 속에서, 이 무서움에 대한 설명인 듯 따라붙은 문장은, 좀 더 어릴 때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그때의 미래가 지금의 현실이 되어버리니 그런가 봐, 라는 것이다. 아마도 만남을 시작할 당시 연인님은, 이 만남이 이리도 오래 이어질 수 있을지 그리 확신하진 않았고, 그러다 보니 지금 이 순간에만 충실해 보자, 하는 데까지 해보는 거지 뭐, 미래에 대해서는 막연히 던져놓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사실 어느 정도는 느끼고 있었다. 조금씩 관계가 무르익어 가며 나로선 묻지 않을 수 없었던 질문들, 확인받고 싶었던 약속들에 연인님은 늘 곤란한 듯 얼버무리거나 미온적으로 넘어가곤 했으니.
그런데 우리 만나는 동안 연인님은 어느새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로 접어들었고, 이제는 더 이상 우리 미래에 대하여 그저 밀어둘 수만은 없다 생각하시는 듯도 하다. 굳이 나이가 더 들어서라기보단, 이미 함께 보낸 세월만큼 우리 관계가 더욱 깊어졌기 때문에. 우리 각자의 삶에서 조금 더 장기적인 삶의 궤적을 그려가야 할 시기에 함께 접어들어 또 같이 보내며, 이 관계를 점점 더 특별히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게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자기 삶 곳곳에 서로의 자취가 배어있다는 걸 너무도 절실히 느낄 수 있기에.
하지만 언제나 두려운 건 역시나 사회적 시선이나 여건의 문제이고, 또 기존의 가족의 문제이다. 아직은 언제쯤이면 더 완화될까 불투명하고, 섣불리 공개하거나 인정을 요구하기엔 그 험난할 과정이 너무도 무거우며, 여건도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 그러한 면에서 연인님은 기본적으로 더 큰 두려움을 가지고 계시기에, 어쩌면 우리 미래에 대한 무서움도 더욱 와 닿게 느끼시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때의 미래가 지금의 현실이 되어버린 이 시점에도, 다시 한번 ‘지금처럼’을 반복하며, 조금씩 더 깊어지고, 사랑하는 마음이 늘어나며, 정이 쌓이는 것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일 테다. 언젠가는 서로가 도저히 떨어질 수는 없어서, 그래서 그 모든 상황을 감수할 수밖에 없어지는, 그 무게 중심의 이동이 너무나도 확연해진다면 그때는 어쩔 수 없이…, 라는 식으로.
물론 나 역시 우리의 여건이 충분히 준비돼 있지 않으며, 각자 헤쳐나가야 할 삶의 과제들 역시 당장 눈앞에 있으므로, 그 이후에야 그다음 단계를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인정한다. 그래서 한편으론 예전과 비교해 이 정도라도 진전된 연인님의 마음이 기껍기도 하고, 그리 나쁘지 않다 싶기도 하다. 다만 나 역시 요즘 들어서는 문득문득, 불안감에 휩싸이는 순간들이 있어서…. 세상 일은 정말 내 뜻대로 내 맘대로 흘러가지 않으며,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얼마든지 닥쳐올 수 있으니까. 지금까지 나름대로 잘 쌓아가며 맞춰놓은 이 ‘지금처럼’에 어쩌다 자연재해처럼, 돌발적인 큰 균열이 발생한다면 어떡하나, 불안해질 때가 있는 것이다.
절대로 지금의 이 관계를 잃어버리고 싶진 않은데, 과연 얼마나 더 깊어지고, 얼마나 더 늘어나며, 얼마나 더 쌓아 놓아야, 그 어떤 시련이 몰아쳐도 버텨낼 수 있는 정도가 되는 걸까. 그리고 세월이 흐른다 하여 언제까지고 더해지기만 할 수 있는 걸까, 그저 세월을 보내며 ‘지금처럼’의 희망적인 덧셈만 막연히 해나가다 그 이상의 꼭 필요한 무언가를 놓쳐버리는 건 아닐까, 나는 불안해지는 것이다.
사실 그 어떤 방법이 있을까,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이고 다가오지 않은 현실인데….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무서워하거나 불안해하고만 있을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그때의 미래가 지금의 현실이 되었다는, 연인님의 편지 속 그 말의 시선을 그대로 전향하면, 지금의 미래가 어느 순간 그때의 현실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현실에는, 우리의 ‘지금처럼’을 이리도 끈질기게 이어가고, 준비해 가며, 함께 해나가려 하는 우리의 지금이 반영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같은 말이지만 또 다른 말로서, 다시 한번 다짐하며 나의 사랑하는 연인께, 다시 한번 제안하고 간청하는 것으로 대답하고 싶은 것이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함께 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