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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형은 제시카>, 존 보인


제목이 매우 직관적인 청소년 소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 이 책은 성정체성과 청소년, 그리고 가족에 대한 청소년 소설이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내가 겪지 못한 어려움을 경험해보고 싶었던 것과 더불어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 중 가장 인상깊게 남은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의 원작을 지은 작가의

신작이라는 점이었다.


이야기의 흐름은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을법한 사건과 발단, 전개가 이어진다.

주인공은 부유하고 따뜻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난독증을 앓았기에 또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는 못한다. 

부모님은 무엇이든 부족함 없이 채워주지만, 

삶이 퍽퍽해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고 그저 다그치기만 한다.

하지만 그에겐 누구보다 자기를 인정해주고 애정해주는 형이 있기에 외롭지 않다.

그리고 그 형에 의해 그의 견고했던 울타리는 무너진다. 

그 어느때보다 남의 시선에 민감할 사춘기에, 형이 자신은 남자가 아니라고 공표해버리다니.

안그래도 입지가 없던 학교에서, 그의 자리는 점점 비좁아질뿐 아니라 우스개 거리가 되어버린다.


이상이 이야기의 전말이다.

주인공 샘의 심리와 시선이 중심이 되어 흘러가는 이 사건들은 

충분히 예상할 만한 이야기들이지만, 

입체적인 인물들의 내밀한 심리까지 추측하며 따라가다보면 정말 다양한 생각이 겹쳐져서

쉽게만은 읽을 수 없었다.


나는 이 책을 보며 샘의 형의 심리가 아니라, 

샘의 부모와 제임스의 주변인들의 심리를 추측하며 보고있었다.

왜 이렇게밖에 반응하지 못했을까. 조금 더 좋은 어른이 이보다는 더 많을 수 없을까.

나는 과연 그런 어른일 수 있을까. 

제임스의 친구들은 어떤 가르침을 받았기에 저렇게밖에 반응을 안할까.

하지만, 현실에 비해서, 소설은 너무 소설답게 결론이 지어지는 것을 보고 

현실에서는 이보다 더 심할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내 아이만 잘 키우면 되는 세상이 아님을 깊이 통감하고 있다.

자신과 다른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이며 살아야 하는지 올바르게 가르쳐주고 싶고,

다름을 두려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이해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

그래서 더욱 다양한 아이를 바라보고 싶고, 내가 먼저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조금 더 넓은 시각과 마음으로 세상을 품는 아들이 되었으면 하기에.

그래서, <우리 형은 제시카>는 청소년 뿐만 아니라 나와 같은 부모가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무언가에 대해 많이 알수록 두려움이 없어진다는 걸 

나는 매번 절실히 깨닫고 있다. 

-

내가 아닌 남을 반드시 이해하고 수긍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그저 있는 그대로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마음을 갖는다면 

이 세상은 더 평화로워질 게 틀림없다.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해도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다."(_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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