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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노래> 이승우


이번에 리커버로 나온 <지상의 노래> 표지의 사진이 책의 내용과 너무 어우러진다.


책 속 한구절

"대개는 믿음을 드러내고, 더 잘 드러내기 위해 미적 감각을 활용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지만 모든 경우에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거꾸로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더 잘 드러내기 위해 믿음을 활용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해 믿음만큼 좋은 소재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믿음을 드러내기 위해 아름다움만큼 좋은 도구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28p)."

"천산의 벽서를 탄생시킨 것은 믿음만도 아니고 아름다움만도 아니라는 것. 그러나 그는 그 믿음과 아름다움이 왜 그렇게 표현되어야 했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어떤 믿음이 그곳에서 그런걸 만들게 했는지, 어떤 아름다움이 그런 걸 요구했는지 숙고하지는 않았다(29p)."


"거울을 들여다볼수록 형제는 거울이 아니라 형제를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성경을 읽을수록 형제는 성경이 아니라 형제를 더 잘 알게 될 것이다(102p)."


"세상은 언제나 악하고 어느 시대나 힘이 세고 어디서나 무자비해요. 그러니까 젊은이, 외람되게 충고하는데, 그 때문에 절망하거나 마음 상해하거나 넘어지지 마요(344p)."


이승우 작가의 글은 참 밀도가 진하다. 

특유의 동어반복은 치밀하고도 촘촘해서, 그물과도 같은데

이 기법에 걸리는 인물들의 심리는 아주 신랄하게 벗겨진다.

그의 글을 특히 좋아하는 점은

신앙과 믿음, 성경의 모티프를 매우 문학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풀어낸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근본적인 부분을 거부감없이 소재로 다룬다는 것이 참 신기할 정도다.


<지상의 노래>의 배경은 197-80년대, 군사정권 시대 전후로 추정된다.

소재만으로 보면 충분히 자극적일 쿠데타, 생매장, 근친, 겁탈 등의 얼개들이 엮여 

다섯개의 삶의 양상이 되고, 그 가운데 있는 누군가는 모두 나름의 속죄의 길을 걸어간다.

각자 자신의 무의식의 내면을 어떤 이는 발견하고 어떤 이는 고백하며 어떤 이는 인식한다.


한국현대사와 속죄의 이야기의 연결고리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죄책감 없이 사람들을 유린한 권력가, 그런 자를 동조하며 따르는 시대.

겁탈 당한 자가 손가락질 받는 시대, 사람 위에 사람이 있던 시대.

그런 시대에 소리없이 스러진 자들이 있었음을 기억하며 기록으로 남긴 것이

천산 수도원 벽의 성경구절들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외진 산속 건물 벽에 필사된 글씨들이 그토록 아름답고 경이로워 보였던 이유가.

실재하지 않음에도, 그 글씨들은 상상 속에 새겨져서 '지상의 노래'가 되어 내 귀에도 들리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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