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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 May 24. 2022

사소한 것이 시시하지 않은 이유

정성이 인생을 더 좋은 방향으로 틀어준다

예전엔 사소한 것에 목숨 거는 사람들은 참 유별나다고 생각했다. 참 피곤하게 산다 싶었고, 그 사소함에 에너지를 쏟느라 정작 더 중요한 일을 놓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어쩌면 전체의 틀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일의 진행을 막는 트러블 메이커라고만 여겼다. 그렇게 나는 나무가 아닌 숲을 볼 줄 아는 큰 사람이라는 오만에 젖어 사소한 것이 주는 힘을 모른 채 살았다.




여전히 미숙하지만 더 미숙하던 지난날, 이만하면 된 일이라고 생각한 일에 딴지(그때는 딴지 혹은 시비라 생각한)를 걸 때면 '내가 싫구나'생각했더랬다. 솔직히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도 맞고, 그냥 좀 넘어가지 생각한 적이 많다. 나에겐 별로 중요한 문제라 여겨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태도가 나를 계속 시시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요즘 들어 깨닫는다.




사람들이 나에게 불평을 늘어놓는다는 것은 분명 현재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고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이야기다. 더 좋은 방향으로 개선될 수 있다는 것, 나 역시 더 발전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나에게 사소한 것, 그러나 남에게는 사소하지 않을 수도 있는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보면 사실 내게 도움이 되는 것들이 많다. 사람들이 다 내가 잘되라고 하는 말인 셈이다.




예쁜 옷을 입어서 내 외면을 뽐내려고 하듯이 기안문의 글자에도 옷을 입힐 수 있다. 내면이 더 중요하다며 외면을 가꾸지 않는 사람들이 안타까웠듯이 알맹이의 중요성을 논하며 한눈에 보기 좋게 양식을 갖추는 일이 단지 시간낭비라 여겼던 것이 이율배반적이라는 것이다. 정성. 정성을 쏟는 일에는 마음이 깃들고  마음들이 모여 나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힘을 가진다. 당장 대단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더라도 그 정성이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조금씩, 조금씩 틀어주는 것이다.




몇 년 전 면접장에서 만난 어떤 여성과 하룻밤을 같이 보낸 적이 있다. 면접이 계속 지연되는 바람에 지방에서 올라간 우리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숙소를 잡아 묵어야 했기 때문이다. 라이벌도 아니었고 두 사람 모두 채용될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좋은 감정으로 서로를 응원하는 사이가 될 수 있었다. 그렇게 날이 밝고 면접장을 가는데 그 친구가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을 아주 사소한 문제 때문에 이력서를 재 출력하러 간다는 것이다. 당시 나는 아무것도 아닌 문제인데 꼭 그렇게 까지 해야 하는 싶은 생각이 들었다. 면접자 번호를 기입해야 했다던가? 기억나지 않지만 안 써도 그만이고 손으로 기입해도 괜찮을 그런 문제였는데, 모르겠다. 그게 그만큼 중요했을지도.




아무튼 우리의 결과는 엇갈렸다. 그 친구는 합격을 했고 나는 떨어졌다. 그 모든 것이 사소함의 차이는 아니었을 줄 안다. 분명 나는 아주 멍청한 실수를 했고 그 얘기 역시 언젠간 할 날이 올 것이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하고자 한 이유는 그 사소한 것에도 온 신경을 다해 정성을 쏟는 마음이  그의 태도에 분명 묻어 나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가끔 업무상 여러 업체를 상대할 때가 있는데 ,  어찌 보면 내가 면접관의 입장에 놓인 것이다. 그 자리에서 보면 느껴지는 게 있다. 어떤 업체는 사소한 것 하나라도 주의를 기울여 처리하는 곳이 있고 또 어떤 곳은 몇 번을 얘기해도 제멋대로다. 물론 여러 가지 사정상 반드시 정성을 다하는 업체와 계약을 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런 정성을 보이는 업체는 오래 기억되고 다음번에 권한을 가진다면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은 곳으로 기억된다. 사람의 마음이 그렇다.  설령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사소함일지라도 나는 알고, 나의 태도에 묻어난다. 한 땀 한 땀 장인정신으로 만든 것을 우리는 명품이라고 쳐주지 않는가. 정성에는 분명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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