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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인생계약 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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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woo Dec 06. 2020

계약직의 돈 관리

정규직 되고부터 돈 관리한다고? 댓츠 노노!!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돈은 있는 사람들이나 관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처음 계약직으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도 이건 임시로 하는 거니깐, 급여도 적은데 뭘 관리를 하나 싶었다. 그냥 최소한의 생활만으로도 없어질 돈쯤이라 여긴 것 같다. 그런데 계약직 생활이 길어지고 나이도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이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은 위기의식이 생겼다. 그래서 가계부를 쓰고 저축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대학시절에도 나름 재테크 서적을 읽으며 펀드 투자를 해 많은 돈을 잃었던 경험이 있었다;; 그때 재테크 서적에 관심을 둔 것은 나중에 돈을 벌면 돈 관리를 어떻게 해야겠다는 최소한의 의식은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문제는 계약직이라는 신분 때문에 지금은 재테크를 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돈을 저축하고 내가 알게 모르게 쓰는 돈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되는 순간부터 왜 진작 알뜰하게 모을 생각을 하지 않았나 싶은 후회가 밀려왔다.

혹시 나처럼 계약직으로 일하면서 돈 개념 없이 흥청망청 써버리는 이가 있진 않을까 싶은 생각에 몇 자 적어본다면 돈은 있든 없든, 얼마를 벌든 관리해야 하는 대상이다. 무조건 짜게 굴라는 것이 아니라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그 돈 안에서 규모 있는 지출과 저축 및 투자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계약직이든 정규직이든 사회초년생들은 갑자기 들어온 큰돈에 그간 억눌렸던 소비욕구가 커지며 일단 플렉스 하고 본다.

품위유지비라는 미명 아래 대학생 때는 잘 쓰고 다니던 저렴한 화장품들이 갑자기 백화점 입점의 고가 브랜드의 것들도 대체되고, 정규직으로 입사한 친구들이 하나 둘 명품 가방을 들고 나오면 갑자기 '나도 이제 친구 결혼식이나 격식 있는 자리에 들고 갈 명품 가방은 하나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이 생긴다. 여자이기 때문에 예쁜 거 보면 갖고 싶은 마음 너무나 잘 알지만 왜 굳이 그렇게 비싼 것으로 치장해야 할까? 당신이 계약직이니깐 그런 건 사면 안된다는 말은 아니니 오해하지 말길. 이건 정규직과 계약직의 문제가 아니다.

솔직히 한때 친구가 들고 나온 명품 가방을 보면서 이제 나도 30대 중반을 향해가는데 하나쯤 있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진짜 적당한 브랜드와 가격의 가방을 정말로 열심히 서치한 적이 있다. 부끄럽지만 당시 내 상황은 시간제로 버티며 그 급여로 생활비를 충당하지 못해 그동안 벌었던 돈을 까먹으며 생활하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통장에는 명품 가방을 사고도 몇 개월 더 버틸 만큼의 잔고가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때의 나는 통장 잔고보다 낮은 자존감 때문에 더 명품 가방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내 가치를 올려주지 않을까 기대고 싶었나 보다.

다행히 조상신이 도왔는지 지름신은 강림하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명품 가방 없는 여자다. 그리고 지금은 제법 모은 돈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는다. 그때 그 명품 가방을 샀다면 그걸 볼 때마다 그 돈으로 주식 한 주 더 사지 못한 걸 후회했을 거다. 계약직을 전전하며 지금까지 일하며 모은 돈을 보며 느낀 점은 명품 가방보다는 두둑한 잔고가 나를 더 당당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건 나이 들수록 더 체감할 것이다.

노파심에 한 가지 덧붙이면, 못 먹고, 못 입고, 못 쓰며 찌질하게 살라는 말이 아니다. 남한테 빌붙고 절대 베풀지 않는 사람은 정말 싫어하는 인간의 부류이고 절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저렴한 화장품으로 꼼꼼하게 관리하고 저렴한 옷을 잘 관리하여 여러 해동안 깔끔하게 입고 다닌다. 사실 옷은 이월상품 사면 싸고 질도 괜찮다. 큰돈이 드는 여행도 계획하여 착실하게 모은 돈으로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다닌다. 나를 위해 몸에 좋은 음식과 영양제도 챙겨 먹으려고 노력한다. 심지어 아주 소액이지만 기부도 한다. 나를 가꾸고 성장을 위해 무언가를 배우는 데 찾아보면 생각보다 큰돈을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