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근무하던 곳에서(물론 그때도 시간제 근무였다) 나를 아꼈던 건지 그냥 잔소리가 하고픈 거였는지 모르겠지만 사사건건 조언과 충고 혹은 잔소리 그 어디쯤에 걸친 쓴말 폭격기 부장님이 계셨다. 보시기에 내가 나이 먹고 아직도 계약직을 전전하는 것이 퍽 안타까웠던 것 같다. 그래서 인생계획까지 수립해줄 작정이셨다. 정작 그 조언들이 나에게는 하나도 약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 반전이라면 반전이다.
나라고 미래에 대한 아무런 고찰 없이 손 놓고 놀고만 있었을까. 나름 살아보겠다고,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보겠다고 부단히도 애쓰던 때였다. 지금도 애쓰고 있다는 것이 조금 서글프긴 하지만, 어쨌든 내가 어떤 자격증을 취득하겠다고 하면 부장님은 득달같이 달려와 그 쓸모없는 자격증을 뭐하러 따냐고 힘 빠지는 소리를 하셨다. 그 때문인지 결국 그 자격증을 취득하지 못했지만; 결코 그 부장님의 조언이 맞아서 그런 것은 아니다.
마냥 조언 따윈 필요 없다고, 천상천하 유아독존 내 인생 내 맘대로 살겠다는 자세는 위험하지만, 그때의 심정은 딱 이거였다. 나라고 안 되고 싶어서 안 되겠냐고! 아직은 내가 더 성숙되는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오래 전의 기억은 내게 전혀 자양분이 되지 못했던 걸까? 그렇게 싫었던 끔찍한 기억인데, 한참 시간이 흐른 후 내가 친구에게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다. 어이쿠. 정말 좋아했던 친구였고 잘됐으면 했고, 한눈에 보기에도 친구가 너무 힘들어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딱히 조언할 입장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쨌든 진심으로 잘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렇지만 정작 친구에게 전혀 득이 되지 못한 조언을 해버렸다. 이번에는 내가 가해자가 된 것이다. 지나고 나서 알았다. 그건 정말 해선 안 되는 독 같은 조언이었음을.
가끔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올바른 조언을 하면 아끼는 사람이 방황하지 않고 더 빨리 안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당사자가 조언을 원할 때 뿐이다. 굳이 먼저 나서서 조언이라는 좋은 말로 이미 마음이 닳고 닳아 상처가 깊은 사람에게 소금을 쳐댈 필요는 없다. 그에게는 그만의 속도가 있고, 인생에서 방황하는 시간이 필연적일 뿐이며 그 속에서 진짜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사실은 그도 당신만큼, 어쩌면 당신보다 더 열심히 살고 있다. 어차피 열심히 사는 사람은 언젠가는 빛을 볼 것이고, 대충 사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조언도 스며들지 않는다. 상처와 관계의 악화만 남길 뿐. 그러니 어쭙잖은 조언 넣어두고 나나 잘하자.
'당신이 옳다'의 저자는 충조평판을 멈추라고 한다. 그 말이 백번 옳다.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은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살다가 보면 꼭 도와주고 싶은 사람이 생긴다. 잘됐으면 하는 마음 때문에. 하지만 그 마음이 진심인만큼 조언은 침묵으로 삼켜야 한다. 그 사람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조언이 아니라 기다림이다. 재촉하지 않고 옆에서 진득이 기다려 주는 것, 그래서 불안하지 않게 해주는 것, 그게 진짜 사랑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