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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 Aug 17. 2021

반짝반짝 인생 닦기

마음 청소하기

요즘 쓰잘데없는 신경전을 벌이느라 심신이 지쳤다. 사실 조금 오래전부터 속을 끓이던 문제가 있었다. 30년이 넘도록 다른 집에서 다른 을 살아온 사람이 함께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누가 들으면 흡사 결혼생활 같지만 그건 아니다. 미혼으로서 어떻게든 절약해 볼 요량으로 회사가 제공하는 숙소에서 다른 사우와 함께 살고 있다. 말이 동료지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런 연도 없는 그야말로 남이다. 안타깝게이 남과 화장실과 주방, 거실 등 일부 생활공간을 공유해야 한다는 사실에서부터 삐걱대는 문제가 발생한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요즘은 사생활 터치 하나 없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그나마 장점으로 작용한다. 물론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방 안에 콕 박혀 있는 내가 쌀쌀맞은 일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 성향 역시 개인의 취향이니 존중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공유하는 공간을 가진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다. 특히 화장실...... 화장실 벽에 케케묵은 오랜 곰팡이처럼 묵은 감정이 이젠 곪을 대로 곪아서 터져버리고 말았다. 나이는 나보다 어리지만 직급은 위였던, 그래서 차마 청소 좀 하라고 말하지 못했던 그 '남'과 소리 없는 전쟁을 나 홀로 애처롭게 벌였다. 





솔직히 나는 남과 공동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 무척이나 게으르고 정리정돈도 잘 못해서 매일 부모님께 구박을 받았다. 청소 좀 하라는 말도 자주 들었기에 나 자신이 굉장히 지저분한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웬걸,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과 살아 본 바로는 내가 평균 이상일지도(깨끗한 쪽으로;) 모른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더러운 환경에서도 바퀴벌레 마냥 잘 살아내는 사람을 보면서 역시 세상은 고 인종은 다양하다 느꼈다. 나도 안다. 너무 격한 표현이라 다소 버릇없게 들릴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솔직히 그 더러움을 처음 대면했을 때 심정은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물론 같이 살기에 적합한(?) 사람도 있었다. 굳이 비율로 따지면 반반 정도이지 않을까? 상대적으로 나도 그들에게 같이 살기 적합한 인간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한 반년을 나 혼자 숙소를 청소하면서 홀로 분노하고 내 그릇은 여기까지구나 느꼈다. 친구들은 차라리 그 남에게 청소하라고 말하라고 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사실 처음은 아니었고 예전에 같은 경험이 있었다. 그때 느낀 건 남은 그 더러움을 그다지 불편해하지 않을뿐더러 청소를 해도 대충대충 했다. 자기 집도 아니고 대충 잠만 잔다고 생각하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쾌적한 환경을 선호했던 나는 청소를 하고 뒤돌아서면 또 금방 더러워지는 환경에 절망까지 느꼈다. 머리는 또 어찌나 빠지는지 샤워 한 번 하고 나면 수채에 시커멓게 머리카락이 한가득이다. 그럼에도 머리카락 한 번 줍지 않던 남이 얼마나 미운지, 힘들게 청소해 놓으면 어떻게 알고 또 더럽히는지 정말 맘에 들지 않는 것 투성이었다





그렇게 반년을 남의 청소부 역할을 해주면서 이골이 났을까, 문득 궁금했다. 과연 얼마나 더러우면 청소를 할까 하는. 그래서 이 악물고 더러움을 견뎌봤다. 참 유치하긴 한데 매주 하던 청소를 손 놓아버리니 점점 더러워졌고 그걸 꾹꾹 참으며 버텼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는 건지 근 한 달 가까이 되니 그제야 화장실 청소라는 걸 했다. 물론 대충. 아마 그건 본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 또 하나 느꼈다. 이 지경까지 돼야만 청소를 하구나, 정말 더러워서 못살겠다 싶은. 이런 경우 해결은 두 가지다. 계속 내가 청소하거나 아님 독립하거나. 남을 변화시키는 건 에너지 소모뿐 아니라 그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그냥 남이 더러울 권리는 선사하기로 했다. 때때로 청소하는 사람 따로 있고 어지럽히는 사람 따로  울화가 치밀기도 하는데 그 더러움 속에 공존하느니 나라도 치우는 게 더 낫겠다 싶은 게 내 최종 결론이다





그리고 분명 그 '남'은 언젠간 청소 안 하는 것 때문에 인생이 한 번쯤은 꼬일 것이다. 이건 저주가 아니라 인생의 순리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나도 대학생 때 기숙사 생활을 한 경험이 있는데 그때는 내가 지금처럼 렇게 청소를 하지 않았던 듯하다. 차마 깨닫지 못했는데 그렇다면 분명 누군가가 나처럼 열심히 청소를 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지금 내가 벌 받는 건가 싶기도 하고....... 어쨌든, 그때 누군가 지금의 나처럼 홀로 속 끓었을 것을 생각하니 진심으로 미안하다. 이렇듯 남도 모를 수 있을 거라고 억지로 위안을 삼아 본다. 그리고 어쩌면, 아니 확실히 남도 나를 위해 참아주는 것이 분명 있다.





흔히 운이 좋아지려면 청소를 하라고 한다. 내가 사는 공간을 깨끗이 하는 게 운기를 높이는 거라면 안 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그 복을 챙기면 된다. 무엇보다도 청소 안 하는 그 '남'을 미워하는 내 마음부터 청소하는 것이 좋겠다. 한때 나도 그저 더럽게 사용하지 않으면 저절로 깨끗한 줄 믿었던 배려 없는 사람이었고 그 죄를 속죄하는 마음에서라도 수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남을 위해 청소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나의 복을 위해 청소하는 것이다. 물론 더 나아가 남을 위해 청소할 수 있는 큰 사람이 되면 더 좋겠지만. 마음이 아프거나 가난한 사람들은 청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굳이 남을 미워하며 더러움을 경쟁하여 불운을 자초할 필요가 없다. 내 인생은 반짝반짝 빛이 났으면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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