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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 Sep 04. 2021

그럴 수도 있지

폭탄 말고 폭죽처럼 우아하게

누군가는 전두엽에 문제가 있어서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성질이 지랄 맞아서라고 했다. 남 탓을 하는 건 비겁한 변명이지만  그런 날에는 그냥 유전자 탓이라고 돌렸다. 무슨 얘기인고 하니, 내 속에 화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자리를 뺏는 얘기이다. 아직 심신수련이 덜 된 탓에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한 번씩 까칠이로 변한다.  그럴 때마다 화내고 또 참지 못한 나에게 실망하고 반성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진정 마음속에 고요함으로 인해 화를 내지 않는 경지에 오르면 좋으련만 아직은 화를 참다가 결국 한 번씩 폭탄처럼 터진다. 차라리 폭죽이라면 아름답기라도 하지.




화가 나지 않는 방법은 여전히 모르겠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화를 더럽게 표출하면 상황이 곤궁해진다는 점이다. 솔직히 지난 세월을 반성하면 끝도 없을 것 같다. '나 화났어요!'를 세상모르는 사람이 없도록 굴었다. 예를 들면 물건을 쿵쿵 놓는다든지, 문을 쾅 닫거나 한숨을 푹푹 쉬었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악을 쓰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낯 뜨겁고 아찔한 기억이다. 왜 그랬는지 유치하고 수치스럽기까지 하다. 정말 성격이 뭐 같다고 스스로도 느끼는 바다.




모순적이게도 정작 나는 화를 내는 사람을 싫어하고 피했다. 어렸을 때 아버지는 참 화가 많았고 무서웠다. 왜 그 끔찍한 모습을 닮았을까 속상한 마음에 앞에서 유전자 탓을 하긴 했지만 사실 안다. 나 자신이 문제라는 것을. 내가 화를 더럽게 냄으로써 주위 사람들이 겪을 불편함 따위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저 내 기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로 인해 어떤 공포감이 조성되는 지도 생각하지 못한 채 말이다.




득도를 하지 못한 미성숙한 인간이기에 화가 아예 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면 적어도 나의 화로 인해서 타인을 해쳐서는 안 된다. 타인의 감정보다 내 감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결국 그 화가 다시 나에게 더 큰 화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그 화의 굴레에 갇히고 말 것이다. 영원히 그 화 속에서 잘되는 일 하나 없이 화만 내는 삶이 반복될 것이다. 어쩌면 그걸 일찍 깨닫지 못해서 나는 그동안 많은 걸 잃었을지도 모르겠다. 성격이 불같은 사람은 종종 그 화에 못 이겨 좋은 기회와 사람을 놓쳐 버리기 때문이다.




화. 유독 한국에만 화병이라는 병명이 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 화를 참기만 했던 옛 여인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즉, 화를 무조건 참는다고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때는 어떤 상황에도 화가 나지 않는 사람이 부럽기 그지없었다. 이래도 허허, 저래도 허허. 어쩌면 실없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나도 저렇게 그냥 넘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나 정녕 그게 어렵다면 담담히 화를 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폭력적이지 않고, 고상하고 우아하게 화를 낼 때 그 화 안에 내가 갇히지 않고 오히려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화난 사람을 상대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상대가 받지 않으면 그 화는 고스란히 나에게 메아리처럼 되돌아 올뿐이다. 내게 일어나는 모든 상황은 그럴 수도 있는 일일 뿐이고 그저 담담하게 '터프한 하루군요' 한 마디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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