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규제 답일까?
카메라가 처음 등장했을 때, 예술계는 외쳤다.
“회화는 죽었다.”
초상화가의 생계는 위협받았고, 인간의 얼굴을 기계가 복제하는 일은 사생활 침해라는 법적 논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지금 그 누구도 카메라를 예술의 적이라 말하지 않는다.
회화는 죽지 않았고, 오히려 사진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거울 삼아 더 깊고 자유로운 방향으로 진화했다.
인쇄술도 마찬가지였다.
인쇄술은 성서를 대량 복제했고, 종교개혁의 불씨가 되었다. 권력은 그것을 두려워했지만, 결국 인쇄술은 금지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식은 확산되었고, 인간은 읽고 사유하는 존재로 확장되었다.
기술은 언제나 기존 질서를 흔들었다.
그러나 기술이 문명을 퇴보시킨 적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인공지능 앞에서 우리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AI 규제법은 이전의 어떤 기술 규제보다도 빠르고, 강하며, 감정적이다.
윤리와 안전이라는 언어를 사용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공포가 담겨 있다. 이번에는 단순한 도구의 변화가 아니라, 인간의 ‘능력’ 일부가 공유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AI는 손을 대신하는 기술이 아니다.
AI는 생각의 일부를 확장하는 기술이다.
이미지를 상상하고, 문장을 구성하고, 구조를 설계하고, 반복 노동을 대신한다.
이것은 기존의 전문성과 지식 독점 구조를 정면으로 흔든다. 그래서 이번에는 기술이 아니라, 기술을 사용하는 ‘개인’이 위협으로 인식된다.
나는 이 지점에서, 인류가 기술 때문에 위기에 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술 앞에서 인간이 스스로를 과소평가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위기에 처했다고 느낀다.
과거 우리는 이렇게 물었다.
“이 기술을 어떻게 쓰면 인간은 더 확장될 수 있을까?”
지금 우리는 이렇게 묻는다.
“이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지 않을까?”
질문의 방향이 바뀐 것이다.
이것은 기술 비관이 아니라, 인간 비관에 가깝다.
규제는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먼저 막고 보자’는 태도는 문명적으로 매우 위험하다. 그것은 결국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인간은 이 기술을 책임 있게 사용할 능력이 없다.”
하지만 인류는 늘 통제 불가능해 보이는 도구를 감당해오며 진화해왔다.
카메라, 인쇄술, 라디오, 인터넷—그 어떤 것도 처음에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때마다 문명은 금지가 아니라 적응과 재해석을 선택했다.
AI 역시 마찬가지다.
AI는 디스토피아를 만들 수도 있고, 권력을 집중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상상력의 민주화를 이룰 수도 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상상을 선택하느냐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안전 장치가 아니라 용기다.
통제보다 필요한 것은 신뢰이고, 규제보다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지금의 위기는 기술의 위기가 아니다.
상상력이 멈춘 인간의 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