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르찌르와 미찌르는 어디로 갔을까?
'파랑새'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최근에는 파랑새를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녹두장군인 전봉준을 떠올린다고 하는데, 방송의 힘은 그만큼이나 대단한것이 아닌가 합니다.
(최근 '역사저늘 그날'에서 동학운동에 대해서 다루었습니다.)
사실 최근의 일은 그렇다고 해도 '파랑새'하면 대부분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나오는 동화책을 떠올릴것 입니다.
저는 키다리 아저씨의 일화 한장면이 떠오르는데요, 쥬디가 첫날 누군가가 모리스 마테를링크(파랑새의 저자) 이야기를 하는데, 그 아이도 신입생이냐고 묻는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사실 엄청 창피할지도 모르는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사실 대부분의 친구들은 쥬디의 이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죠.) 본인은 다른 친구들 못지않게 똑똑한것 같다고 편지에 너스레를 떱니다.
이런 쥬디의 모습이 청소년기에 소극적이고 잘 나서지 못했던 저에게는 동경의 모습이었죠.
'파랑새'도 같은 의미로 다가옵니다.
흔히 이 이야기의 주제는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다.'로 알려져 있지만 저에게 만큼은 '희망'으로 다가옵니다.
사실 모든 모험을 겪고 힘겹게 집으로 돌아오는 두 남매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처음에 출발했을 때의 그런 힘찬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배고프고 많이 지쳐서 아마도 손을 꼬옥 잡고 집으로 한걸음씩 걷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저의 모습이 이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지치고 힘이 듭니다.
사실 대한민국의 어떤 평범한 사람이 힘들지 않고 지치지 않을까요?
그런 저에게 집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공간이 아닐까 하네요. 집 문앞까지 오면,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이면 가장 마음이 편안합니다.
치르치르와 미치르도 집을 멀리서 보고 '이제 집이구나!"라는 생각에 미소지었을지도 모릅니다.
문을 열고 돌아오는 순간에 보이는 부모님의 모습에 얼마나 기뻤을까요.
(사실 원작에는 꿈으로 나옵니다. 저는 어릴때 읽은 동화책과 특히 유명했던 에니메이션인 세계명작동화 속의 장면이 너무나 인상 깊었습니다.)
결국 집으로 돌아와보니 파랑새는 집에 있었죠. 조금은 허무한 결말이지만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죠. 먼 곳만 보지말고 바로 주위를 살펴보라는 소중한 결론 입니다.
제가 말하는 '희망'도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집 이야기를 했지만 '행복'은 가까이 어딘가에 있고, '희망'은 나 자신이 아닐까 합니다.
결국 행복해지려는 주체는 '나'이고, 그래서 행복해지는 희망이 '나'라는 것입니다.
사실 현실을 비추어보면 희망이 나라는 것을 언뜻 믿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저도 내가 희망이라고 하면, 자신이 자신의 삶에서 진정 희망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마음에 와 닿을까?'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희망을 가지기에는 요즘 현실이 너무나도 많이 힘들더군요 그래서 우리는 목표가 필요합니다.
단순한 목표도 괜찮더군요. 소박한 목표도 괜찮구요. 찌르찌르가 바라는 '파랑새를 찾는다.'도 사실 목표의 단순함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급여일에 치맥을 꼭 먹을테다! 이번주에는 주말에 서점에 가볼꺼야. 등등 이런 단순한 목표들이 복잡하고 거창한 목표보다 삶에대한 의미를 더 많이 부여하는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게 목표가 생기면 '나' 자신에게 희망이 생깁니다. 도착해야 할곳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희망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힘들어요.
정말 힘듭니다. 사는것 하나만으로도 급여를 받고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너무 힘든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매일 야근은 기본이고 언제쯤 조하하는 사람들과 차한잔 나눌 기회가 있었는지 까마득할 지경입니다.
하지만 또 그렇게 나를 돌아보면서 또 한번의 파랑새를 꿈꾸어봅니다.
그리고 내가 희망이라는 생각을 통해서 스스로를 위로해 봅니다.
'나는 나의 희망이야.'라면서 토닥토닥 마음속으로 자신을 쓰다듬어 줍니다.
마지막으로, 주위를 둘러보면서 힘들어하고 있는 미찌르에게 속삭여 주세요.
이제 곧 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