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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봇 Oct 12. 2024

갑작스러운 이별과 공감

신부전

6살 '망고'는 이름에 걸맞게 갈색의 귀여운 치즈냥이였다. 남자 보호자님은 짧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상담 중에 그가 군인이고 휴가 동안 망고가 안 좋아져서 동물병원에 데리고 왔음을 추측할 수 있었다. 망고는 주로 그의 아버지가 돌봐주고 계셨다.


망고는 가끔씩 구토를 했고, 2주 전부터 밥을 잘 먹지 않고 살이 계속 빠졌다고 했다. 고양이가 밥을 2주 동안 적게 먹었다는 것은 비상이다 (고양이는 충분한 에너지를 얻지 못하면 몸에 저장된 지방을 분해하는데, 갑자기 많은 양의 지방을 분해하기 어려워 지방간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망고의 상태에 대해 상세히 질문했다. 일단 혈액검사를 하기로 하고  처치실 안으로 들어왔다.


검사 결과, 신장 수치가 매우 높았다. 신부전은 신장 기능이 저하된 상태로, 강아지와 고양이에서 상대적으로 흔한 편이다. 망고는 나이를 고려하면 급성 신부전이 의심되었다. 고양이는 선천적으로 신장이 좋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서서히 신장 기능이 떨어지다가 어떤 원인으로 급성 신부전이 왔을 수 있다. 추가 정밀 평가를 위해 방사선 촬영과 복부 초음파를 진행하니, 많은 장기에 노령 변화의 일종인 석회화가 많이 보였다. 6살이라는 나이가 맞는지 의심될 정도였다.


"망고의 나이가 정말 6살이 맞나요? 몸에 노령성 변화가 너무 많아서 이상하네요."


"처음에 애기 때 분양샵에서 데려와서 나이가 틀릴 리는 없어요. 2개월쯤 되어서 데려왔고, 지금 6년 정도 같이 살고 있어요."


설상가상으로 심장병이 있을 때 올라가는 혈액검사 수치 (fBNP)가 측정 불가할 정도로 높았다. 심장 초음파 결과, 심장 근육이 두꺼워지는 심장병 (비대성심근증)까지 발견되었다. 예후가 좋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신부전의 가장 중요한 치료법은 수액 처치입니다. 하지만 망고는 지금 심장병도 있어요. 심장병이 있으면 수액이 과하게 들어올 때 순환이 잘 안 돼서 폐에 물이 찰 위험이 큽니다. 그래서 수액 처치를 적극적으로 하기 힘들기 때문에, 신부전 치료도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초기 3~5일 정도의 치료가 중요할 것 같네요. 그리고 현재 신장수치라면 요독증으로 위장관 궤양도 생길 수 있고, 구내염, 심하면 발작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일단 치료를 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보호자님은 아버지와 상의를 해봐야 할 것 같다며 전화를 하고 오셨다.


"제가 부대로 돌아가야 해서... 아버지가 며칠 동안은 면회 오실 것 같아요. 지금 상황에 대해 아버지는 애가 너무 힘들면 안락사를 시키라고 하시네요. 선생님, 아버지를 좀 잘 설득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아직은 안락사를 얘기하기에는 너무 이릅니다. 회복되는 경우도 많으니 최소 며칠은 경과를 지켜보도록 하죠. 아버님께도 잘 말씀드려 볼게요."


그렇게 입원 치료를 시작했다. 보호자님과 나의 바람과는 달리 수액 처치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망고의 신장 수치는 오히려 올라갔다. 보호자님은 부대로 복귀했기 때문에 통화는 안 됐고 카카오톡으로 소식을 전달해 주었다. 동시에 아버님에게도 좋지 않은 소식을 전달했다. 아버님은 치료를 포기하고 싶어 하셨다.


"치료를 시작한 지 하루 정도 되었지만, 치료 반응이 좋지 않네요. 그래도 하루 이틀 정도는 더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망고에게 조금만 더 기회를 줘보는 게 어떨까요?"




하지만 3일의 집중치료에도 불구하고,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처음 내원했을 때보다 기력도 떨어졌다. 그리고 발작을 했다. 발작 이후에는 컨디션이 더 나빠졌다.  아버님은 이미 치료를 종료하기로 마음을 굳히셨고, 현재 아이 상태에 대해 보호자님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다행히 통화를 할 수 있었다.


"보호자님, 아무래도 망고가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들 수 있겠습니다. 지금 정도 상황이라면 아이를 편하게 보내주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는 상황이네요..."


"알겠습니다. 선생님... 제가 휴가를 얼른 내서 가보도록 할게요. 그때까지만 어떻게든 버틸 수 있게 해 주세요. 인사라도 하고 보내주고 싶네요. 부탁드립니다."


점점 망고의 혈압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발작은 더 이상 없었지만 틱처럼 움찔움찔하는 증상도 보였다. 혈압을 올려주는 약물의 용량을 점차 증량했다. 얼른 와야 할 텐데... 아버님은 원내에서 대기 중이셨고, 보호자에게 다시 전화를 했지만, 도착하려면 아직 30분은 남았다고 했다. 시계만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결국 보호자님이 도착할 때까지 버티지 못하고, 망고의 심장이 멈췄다. 얼른 삽관을 하고, 심장마사지를 하며 응급약물을 투약했다. 하지만 10분이 경과하도록 전혀 반응이 없다. 회생 가능성이 거의 없다. 아버님은 심폐소생술 중단을 요청하셨다.


그리고 10분쯤 지났을까. 보호자가 헐레벌떡 들어온다. 하지만 이미 심폐소생술은 중단한 상태였다. 그는 말 그대로 혼비백산했다. 아버지를 원망하며 심폐소생은 왜 중단을 했냐, 아버지가 케어를 잘 못해줘서 그렇다... 등등 미친 듯이 눈물을 흘리며 화를 쏟아냈다. 그 모습이 안타까워 잠시 기다렸다가 그를 진정시키고, 말없이 그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그는 계속 울다가 울음을 잠시 멈추면 스스로를 탓하고, 아버지를 탓하고, 왜 이렇게 된 것인지 나를 추궁하다가 다시 우는 것을 반복했다. 그렇게 30분은 지났을까? 그제야 그는 조금 편안해 보였고 '그래도 망고가 이제는 더 이상 아프지 않겠죠?'라고 물었다.


"그럼요 보호자님. 이제는 편안한 곳으로 갔을 거예요. 망고도 보호자님이 아버님에게 화내는 것을 원하지 않을 거예요."  




반려동물을 잃는 것은 마치 가족을 잃는 것과 같은 슬픔을 동반한다. 반려동물의 죽음 앞에서 대부분 보호자님들은 처음에 죽음을 부정하고, 분노를 표출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수없이 많은 이별을 지켜보고 이별을 도와주기도 한다. 하지만 보호자님들에게는 평생 기억에 새겨지는 '하나'의 강렬한 순간이다. 그렇게 때문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이별은 공감과 위로가 더욱 어렵다.

 '공감이란 상대방의 내면 깊은 곳까지, 정확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를 필요로 한다'라고 한다.

따라서 보호자님들이 왜 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그 선택들이 어쩔 수 없었음을 충분히 설명하고, 감정적으로 공감받을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마지막 순간에 조금이나마 고통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야기의 강아지 또는 고양이 이름은 가명입니다. 정보 보호를 위해 약간의 각색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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