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바둑이가…."
바둑이는 12살 바둑알처럼 흰색 바탕에 검은색 무늬가 매력적인 코리안숏헤어 고양이였다. 좁은 이동장 안에서 몸을 미세하게 떨며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아픔이 느껴졌다.
"밤에 갑자기 비명 소리를 질러서 나가봤더니, 온몸에 전선이 감겨 있었어요. 감전됐나 싶어서 얼른 풀어줬어요. 그랬더니 뒷다리를 전혀 못 쓰더라고요. 애가 감전된 걸까요?"
"감전은 아닌 것 같아요. 보통 고양이가 갑자기 뒷다리를 쓰지 못하는 것은 급성 디스크 탈출이나 다리로 가는 큰 혈관을 혈전이 막는 상태가 대표적인 원인입니다. 혹시 최근에 숨쉬기를 힘들어하거나, 입을 열고 숨을 쉬는 것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소파나 캣타워 같은 높은 곳에 잘 오르지 못했나요? 아니면 평소보다 움직임이 줄어든 것 같나요?" 디스크 탈출과 혈전 모두 모두 응급 상황이므로 신속한 원인 파악과 대처가 필요하다.
"숨 쉬는 것은 괜찮았는데, 최근에 조금 움직임도 줄어든 것 같고, 돌이켜보니 걸음도 조금 불편해 보였던 것 같아요. 제가 너무 둔감했나 봐요. 요즘 너무 바빠서 바둑이를 잘 살피지 못한 것 같아요. 일찍 데리고 왔어야 했는데.. 괜찮을까요? 다리는 다시 쓸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보호자님들이 그렇듯, 바둑이 보호자님도 스스로를 탓하기 시작했다.
"고양이들은 강아지들보다 아픈 것을 최대한 숨기려고 해서, 이상한 것을 알아채기가 쉽지 않아요 보호자님. 그러니 너무 자책하시지 않아도 되세요. 지금이라도 얼른 원인을 찾아서 치료를 해보면 되지요. 다시 걸을 수 있을지는 원인을 파악해야지 경과를 예측할 수 있어요. 들어가서 바둑이 상태를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처치실에 들어가 경계하는 바둑이에게 넥칼라를 씌우고 이동장에서 조심스럽게 꺼냈다. 담요로 몸을 감싸는데 통증이 너무 심한지, 몸에 손이 닿자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하악!"
하악질 하는 바둑이를 달래며 조심스럽게 필요한 검사를 진행했다. 혈전으로 뒷다리를 못 쓰게 되는 경우, 발바닥이 보라색으로 변하고 몸의 혈당 수치보다 뒷다리의 혈당 수치가 더 낮게 나온다. 뒷다리로 혈액 순환이 되지 않아 보라색으로 변하고, 혈당이 소모되는데 공급되지 않아 수치가 낮아지는 것이다. 다행히 발바닥 패드가 보라색이 아니었고, 다리의 혈당 수치도 정상이었다. 심장병이 있으면 올라가는 혈액검사 수치도 정상 범위이고, 흉부방사선 상에도 심장이 커 보이지 않았다. 심장병으로 인한 혈전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그다음으로 디스크 탈출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최대한 아프지 않게 신경계 평가를 진행했다. 양쪽 뒷다리 전혀 쓰지 못했지만, 다행히 통증 반응은 남아 있었다. 통증 반응이 없다면 더욱 위급한 상황이다. 통증 부위를 확인하기 위해 꼬리에서부터 머리 쪽으로 올라가며 척추뼈 부위를 눌러본다. 허리뼈 부분을 만지자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볼 때 허리 디스크일 가능성이 커 보였다. 디스크 진단을 위해서는 MRI 촬영이 필요하다. 하지만 방사선 사진에서 척추뼈와 척추뼈 사이가 좁아지는 게 보통인데, 이상하게 척추뼈의 길이가가 짧아 보이는 부분이 있었다.
“보호자님, 일단 심장병으로 인한 혈전 가능성은 낮아 보이고, 디스크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MRI를 찍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취 위험성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드리고, 동의서를 받았다. 보호자님도 나도 초조하게 MRI 결과를 기다렸다.
MRI 촬영 후 다소 충격적인 소견을 전달받았다. 척추뼈가 녹아있고, 상당히 큰 종양이 그 안을 파고들어 척수신경을 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압박 골절인지 그로 인해 척추뼈가 짧아졌던 것이다. 나쁜 소식을 전하는 것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보호자님.. 디스크였다면 그래도 수술을 하거나, 약물을 통해 치료를 시도해 볼 수 있을 텐데.. 척추에 종양이 있고, 그 주변 뼈들을 녹여 놓았습니다. 그리고 척추뼈 안을 파고들어 가서 척수 신경을 누르고 있어요. 크기와 위치, 파고들고 있는 정도를 봤을 때는 수술적으로 종양을 완전히 제거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현재 바둑이의 통증을 완화하는 목적으로 수술을 진행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제거하기 힘들기 때문에 재발할 확률도 매우 높습니다. 방사선 치료는 시도해 볼 수 있는데.. 비용이 상당합니다.”
한 글자라도 놓칠까 집중하시던 보호자님들은 의외로 담담해 보이셨다.
“사실 갑자기 너무 아파하고, 걷지 못하니 심각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최근에 다른 동거묘도 심장병으로 계속 고생하다가 결국에는 보내줬거든요. 왜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일어나는지 모르겠어요. 나쁜 결과를 예상했는데 정말로 나쁜 결과였네요.” 한숨을 쉬시고 말을 이어가셨다.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면, 치료 과정 자체도 아이가 많이 힘들어할 것 같아요..”
보호자님들께서는 안락사까지도 염두에 두고 계셨다. 앞서 다른 동거묘를 떠내 보낸 아픔이 가시지 않으셨는지, 두 분 모두 매우 지쳐 보이셨다.
감정적으로 힘든 상태에서, 뜻하지 않은 안 좋은 소식을 들으면 더욱 강하게 부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 같다. 예전에도 감정적으로 무너져 치료를 포기하고 싶어 하셨지만, 객관적으로 아직 때가 아니어서 보호자님을 설득해서 더 치료를 이끌어간 적이 꽤 된다. 그런 경우 보호자님들은 그때 그런 선택을 했다면 너무너무 후회하셨을 거라곤 고마워하신 적도 많다. 보호자님들은 아이를 너무 아끼는 게 느껴졌고, 내가 대화를 한 시간을 통해 추정컨대 바로 안락사를 선택한다면 후회하실 수 있겠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단어를 선택했다.
“음… 보호자님. 정말 힘드셨겠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돼서 이런 소식이라니.. 어떤 기분이실지 제가 어떻게 상상하기 힘드네요. 하지만.. 아직은 그런 결정을 하기에는 살짝 일러 보이기는 하네요. 당장 보내주는 결정을 한다면.. 조심스럽지만, 나중에 후회로 힘든 시간을 보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추가 치료를 하지 않더라도 진통제라도 복용하면서 어느 정도는 생활할 수 있는지 지켜보는 게 어떨까요?”
약 조제가 끝나고 약을 보호자님들께 전달하기 위해 로비로 나갔지만, 남자보호자님이 보이지 않았다.
“사실 남편이 주 보호자예요. 지금 화장실 가서 울고 있는 것 같네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여자보호자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남자보호자님이 돌아오셨다. 그의 눈시울이 붉다. 일주일 후에 경과를 보자고 하고 귀가하셨다.
일주일 후, 바둑이는 여전히 다리를 쓰지 못해 대소변은 가리지 못하지만, 통증은 많이 줄어든 것 같고 밥은 정말 잘 먹는다고 하신다. 그렇게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다행히 아직 보호자님들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머지않아 이별의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가끔은 강아지, 고양이가 말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항상 아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순간에는 그 아이가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얼른 이 세상을 떠나고 싶을지, 아니면 너무너무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자신의 보호자들과 짧은 시간이라도 함께 하고 싶어 할지. 그렇다면 꺼져가는 생명의 촛불을 끄는 행위의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