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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정메이트 Oct 12. 2020

나는 아이에게 어떤 추억이 될까?

나의 부모님은 항상 바쁘셨다. 아빠는 나를 낳기 전, 전기 사업을 하셨다. 사업은 잘 돼서 풍족하게 살았었다. 내가 태어나고 사업이 급속도로 나빠져, 그만 폐업을 하고 말았다. 우리는 단칸방에서 남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다섯 식구가 살았다. 찢어지게 가난했다. 오랜만에 외할머니가 놀러 오면, 엄마는 대접할 게 없어서 할머니가 손주들에게 준 용돈을 몰래 가져가서 그걸로 국수를 사셨다고 한다. 아빠는 사업실패를 한 후 놀음에 빠졌다. 우리는 아빠가 돈을 딸 때는 밥을 먹었고, 돈이 없을 때는 국수를 먹었다. 아니면 식육점에서 공짜로 나눠주는 비계를 가지고와 그걸 끓인 물로 연명을 하며 살았다.


엄마는 그때부터 억척스럽게 변했다. 돈을 벌어야지 라는 생각으로 3살 애기를 8살, 5살 아이들에게 맡기고  일을 하러 나갔다. 한 번은 내가 열이 났는데도  언니들이 몰라서 방치하다 기절을 했다고 한다. 조금만 엄마가 늦게 왔더라면 난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일이 있어도 아이들에게 아기를 맡기고  또 돈을 벌러 나갈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놀음과 술독에 빠지다 어느 날, 엄마가 비 오는 날 리어카에서 과일 파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으셨다. 그 후, 두 분은 결심했다고 한다. 살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 아이 교육을 포기하자.. 그렇게 두 분은 365일 쉬지 않고 일을 했다.     


그래서 난 부모님들과의 추억이 많지 않다. 하지만 딱 2가지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단칸방에서 살 때, 아침에 나는 주인집 마당에서  줄넘기를 했었다. 요구르트 아주머니가 오더니 주인집에 무엇을 놓고 갔다.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저건 뭐야?”

“응 요구르트야”

“와 맛있겠다.. 나도 먹고 싶다”

어린 나이여도 당연 우리 집 형편이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먹고는 싶었지만 엄마에게 사달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다음 날, 요구르트 아줌마가 오더니 우리  집에도  요구르트를 3개 넣어줬다. 엄마가 언니와 나에게  하나씩 나눠 주었다. 내가 인형을 사달라고 울어도 절대 사주지  않았던 엄마가 요구르트를 사주셨다. 나에겐 사랑이었다. '엄마가 내가 말한 것을 잊지 않고 나를 생각해주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나는 아빠와의 추억이다. 집안 형편이 조금 나아지면서  우리는 외할머니네 집에 세 들어 살았다. 초등학생이 된 나는 반에서 유행하는 브랜드 운동화가 너무 갖고 싶었다. 어느 날, 아빠는 나만 따로  불렀다. 그리고 차를 타고 내가 갖고 싶었던 브랜드 운동화점에 가서 나에게 운동화를 사주셨다. 그리고  예쁜 티와 바지도 세트로 사주셨다. 아빠는  “윤정이에게만 사주는 거야, 언니들에게는 비밀로 해야 해” 아빠는 내가 잘난 언니들 사이에서  주눅 들어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나 보다. 그렇게 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빠와의 데이트를 했었다.     


가끔씩 살다가 예전 추억을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부모님들에게 서운 했던 마음도 그때를 생각하면 본심은 그게 아닐 거야 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나이 드신 부모님을 볼 때면 짠하기도 하다. 내 기억  속  모습에는 젊은 부모님과  어렸던 내가 있다.


어린 시절 추억에 잠기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난 아이에게 어떤 추억이 될까?


혹여 내가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는지 걱정되는 마음도 있지만 난 아이에게 좋은 추억이 되고 싶다. 따뜻했던 품, 나를 향해 웃고 있는 모습, 하굣길에 정문 앞에서 기다려준 엄마 모습, 함께했던 여행길, 별거 아닌 것에 웃었던 나날.. 진심을 다하면 통하는 법이라 생각한다. 난 오늘도 아이에게 내 진심과  마음을 준다. 하루에 한 개씩, 소소하지만 기분 좋은 엄마와의 추억을 만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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