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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정메이트 Nov 16. 2020

서귀포에 삽니다.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

*글을 읽기 전, 할 말이 있어요. 이 글은 제 개인적 의견이고, 무한 제주도 찬양 글이기 때문에 부담스러운 분들은 읽지 않는 게 좋습니다:)      

나는 제주도에 산다. 제주에서도 남쪽에 위치한 서귀포에 산다. 여기서 태어나고 자라고 20대 때 3년간 서울살이를 하고 다시 제주로 돌아와 살고 있다.      


잠깐 서울살이를 이야기하자면 섬이라는 한정적인 공간에서 살던 나는 서울은 그야말로 기회의 땅처럼 부푼  꿈을 안고 입성했다. 거기서 취업하고, 언니랑 같이 살았다. 내가 살았던 곳은 서울역 근처인 후암동이다. 회사는 사당이었다. 5분에서 10분 정도 걸어서 숙대입구역까지 가서 4호선을 타고 출근했다. 끝나면 바로 허겁지겁 2호선을 타고 강남역에 가서 영어학원에 갔다. 끝나는 시간이 되면 2호선은 항상 만차였다. 처음 만나는 남자 가슴팍에 안겨 가기도 하고, 냄새나는 아저씨와 밀착되어 더는 벗어날 수 없는 냄새 지옥을 견디며 귀가했다. 주말에는 이직하고 싶은 분야 학원을 다니며 정신없이 살았다. 처음에는 ‘맞아, 성공하려면 이렇게 바쁘게 살아야 되는 거야’, ‘지금의 고생이 앞으로 보상하는 날이 올 거야’라고 생각하며 일하고, 자기 계발하며 열심히 살았다.


몇 년을 바쁘게 살다가 어느 날, 지하철에서 제주도 사투리가 들렸다. 어디서 나는 소리지? 옆을 보니 어떤 아저씨가 사투리로 통화 중이었다. 제주도에 있을 때는 투박스러운 아저씨 사투리가 참 듣기 싫었는데 반가웠다. 그리고 순간 눈물이 났다. 제주도가 갑자기 미치도록 그리웠다. 가족, 친구들이 보고 싶었다.    

  

며칠 뒤, 바로 연차를 내고 제주도로 갔다. 제주도는 공기부터 달랐다. 빌딩 숲에 있던 내가 나무가 울창한 숲에 가서 나무를 직접 만지니, 감격스러웠다. 이게 뭐라고.. 어릴 때 실컷 뛰어놀던 숲과 바다가 애절한 첫사랑을 만난 듯 사무쳤다.

나는 그때 번아웃이 왔던 것 같다. 그리고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제주도로 돌아왔다. 잠깐 쉴 겸 돌아왔던 제주도는 새로운 일을 하게 되고, 전 남편을 만나고, 아이를 낳으면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2017년 ‘효리네 민박’이 히트하면서 제주도 이주 바람이 불었다. 2억 대면 살 수 있었던 아파트들이 3억, 4억을 넘어가고 심지어 8억까지 치솟았다. ‘제주 한달살이’, ‘1년 살이’로 대한민국에 웬만한 사람들은 제주도로 놀러 오고, 쉬러 왔다.

밀물 오듯 사람들이 미어터지더니 지금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제주도에 살았던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돈 많은 사람이 살면 좋은 섬이라고..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나야말로 서울이 그런 곳이라고 생각했다. 돈이 있어야 좀 더 쾌적한 환경에서 살 수 있었다. 집값이 저렴한 동네는 좁은 땅덩어리에 사람들이 많아서 집들이 다닥다닥 붙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그리고 워낙 사람들이 많다 보니 어딜 가던 사람들이었다. 웬만한 브랜드 커피숍에 가면 자리가 없었고, 자리가 난다고 해도 옆에 사람들과 거리가 가까워 친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에 반해 제주도는 당연한 말이지만, 서울보다는 집값이 저렴한 편이다.

제주시 등 인구 밀집 지역을 제외하고 집들이 서로 떨어져 있어, 주거환경이 좋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 조용하고 한적하다. 물론 마트나 병원 등 생활편의 시설을 차 타고 이동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20~30분 내면 근방에 다 있다. 브랜드 커피숍도 자리 여유가 있는 편이고, 사람들이 많으면 굳이 안 가도 된다. 뷰가 좋거나 맛이 좋은 커피숍이 깔리고 깔린 게 제주도다.

물가가 비싸다고 하는데 그 말은 맞다. 삼다수 말고 모든 공산품은 비싸다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나에게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부분이다. 공식품을 잘 먹지 않을뿐더러, 공산품이 많이 필요할 때는 쿠팡을 이용한다. 로켓 배송이 있어서 따로 배송비가 들지 않는다.

그리고  닭, 돼지고기, 소고기는 바로 도축한 고기들이 많아서 신선하다. 잡내가 안 난다. 솔직히 나는 고기도 잘 안 먹는 편이라서 아이 것만 사는 편이다. 채소는 텃밭에서 가꿔서 먹거나 아니면 오일장에 가서 산다. 사계절 내내 제철 채소, 과일과 신선한 생선을 싸게 살 수 있다.     


제주도는 쇼핑할 곳이 없다고 한다. 그건 맞는 말이다. 나는 브랜드도 거의 인터넷 몰에서 구매한다. 아니면 기분전환으로 주중에 연차를 내서 당일치기로 쇼핑을 하러 서울에 올라가기도 한다. (코로나가 있기 전) 주중 싼 비행기 표는 왕복 4만 원 정도면 갔다 올 수 있다. 가서 맘껏 도시를 거닐며 쇼핑하기도 하고, 볼일을 보거나 친구를 만난다.


여행 갈 때도 국제공항이 있어서, 직항으로 가는 나라를 편하게 갈 수 있고, 잘만 고르면 경유하는 비행기를 예약해서 서울을 굳이 거치지 않고 여러 나라를 여행할 수 있다.  저가항공이 많아 서울 가는 비용으로 가까운 나라로 여행 갈 수 있다. 그래서 딱히 도시에 대한 그리움이 없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돈이 없을수록 더 제주도에 내려오라고 말하고 싶다. 일자리가 없다고 하지만, 눈만 좀 낮춘다면 보람 있게 일할 수 있는 일거리는 널렸다. 그리고 서귀포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여유가 있다. 이게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 심적인 여유다.


그리고 궨당 문화로 한집 건너 다 아는 친ㆍ인척이다라고 생각하여 서로에게 예의를 차리는 편이다.  병원에 가도 권위 의식 있는 의사보다는 수더분하고 말을 참 따듯하게 하시는 의사 선생님분들도 많다. 다만, 오진이 있을 수 있어 잘 안 낫거든 제주시 병원이나 대학병원으로 가길 바란다. 의료시설이 좀 아쉽다.


빈부격차도 서울에 비해 크지 않아, 아무리 부자인 사람들도 일반 서민처럼 다 절약하면서 산다. 거의 다 땅 부자일 확률이 높아서 수중에는 돈이 많지 않다. 누구한테 과시할만한 것도 없고, 열심히 일해서 그 돈으로 밥 먹고, 아이 키우며 고만고만하게 산다. 명품이나 외제 차가 보여도 알려진 브랜드 아닌 이상 잘 모르기 때문에 부러워하는 마음도 없다. 옷차림들이 거의 다 수수하다.

조금만 걸어가면 러닝 할 수 있는 풍경 좋은 길이 쫙 펼쳐져서 돈 안 들이고 운동하기에도 딱 좋다. 주말에는 제주도에 있는 오름만 올라가도 좋다.

그리고 승마, 골프, 스킨스쿠버 등 고급 스포츠를 서울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배울 수 있고, 즐길 수 있다.


제주도에 가장 이점은 자연 친화적으로 아이 키우기 참 좋은 환경이다. 조금만 아래로 내려가면 바다고, 위로 올라가면 숲이 있다. 관광도시여서 박물관이나 볼거리도 많다. 초원 위에 망아지처럼 아이를 방목하며 키울 수 있다.

봄에는 딸기 따러 가기도 하고, 벚꽃, 유채꽃 등 꽃구경하러 가기 바쁘다. 여름에는 사방이 해수욕장과 호텔 수영장이 있어서 시간 날 때마다 수영하러 간다. 가을에는 고구마를 캐기도 하고 단풍 보러 산에 올라간다. 겨울에는 귤 따러 가기도 하고, 조금만 올라가면 눈썰매를 실컷 탈 수 있다.      

11월이 되면 제주도는 귤 철이다. 나는 매해 친정 부모님 밭에 귤 따러 가는 신세다. 귤 따러 간다고 하면 서울 사람들은 밭 있는 것을 부러워하든지 따 보고 싶어 한다. 그건 밭일 안 하는 사람들이 로망 섞인 발언이지, 제주도 젊은 여자들은 귤밭이 있는 남자에게는 돈이 아무리 많아도 시집가기를 꺼린다. 다른 농작물에 비해 손이 가진 않지만, 추운 겨울까지 귤을 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허리 한번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단순 노동을 온종일 해야 한다. 하지만 노동의 즐거움도 있다. 바로 딴 귤을 한입 베어 물면 그렇게 달콤할 수 없다. 새참과 군고구마 구워 먹기는 별미다. 귤을 다 따고 사우나에 가서 몸을 담그면 그만큼 행복한 일도 없다. 밥맛도 좋고 잠도 참 잘 온다.        


그리고 지금처럼 코로나 19 시기에는 제주도만 한 곳이 없다. 조금만 교외로 나가면 해외 뺨치는 경관들이 가득하다.

어느 날, 친구들이랑 바다가 보이는 루프탑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해외에 나가면 돈과 시간을 들여 그런 여유를 누릴 수 있지만 난 단 몇 분 만에 여행지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은 좋은 풍경도 매일 보면 질리지 않냐고 묻지만 30년 넘게 봐온 바로 절대 질리지 않는다. 특히 우리 집 뒤에는 한라산이 항상 보이는데, 매일 볼 때마다 감탄한다. 제주도를 다 못 가본 곳도 수두룩하다. 그때그때 다른 풍경을 보여주기 때문에 항상 새롭다.

여행 기분을 더 내고 싶으면 호캉스를 간다. 비수기에는 저렴한 비용으로 5성급 호텔에서 수영도 하고, 뷔페도 먹으며 여유로운 휴가를 즐긴다.           


그래서 난 제주도가 참 좋다. 제주도에 태어나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만약 내가 서울에 태어났으면 몇 번 여행 오고 말았을 것이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느꼈을 것이다. 지금은 제주도를 속속히 느끼며 감탄하는 일상이 너무 좋다.

내가 힘들었을 때, 제주도는 나를 위로해줬다. 끝없이 펼쳐지는 풍경을 보고 끊임없이 걸으며 성찰하게 되었고, 다독여줬다.

항상 그 자리에 우두커니 있어주는 나의 고향 제주도야,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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