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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정메이트 Apr 26. 2021

슬픔의 무게는 같지 않다.

주위 사람들에 죽음을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한창 내가 건강염려증으로 불안장애를 겪고 있을 때, 내 생과 사를 생각해본 적이 있지만, 주위 사람은 불사조처럼 영원할 줄만 알았다.     

죽음을 경험해 본 적도  많지 않다. 대학교 2학년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나에게 할머니는 그저 엄마의 엄마 정도였다. 아들을 귀하게 여겼던 할머니는 내 이름조차  잘 모르셨고, 따뜻하게 말을 해준 적이 없다. 그저 없는 집안에 애는 줄줄이 낳아서 왜 이 고생을 하는지 할머니에게 나는 손녀가 아닌 엄마를 힘들게 하는 또 하나의 존재였다.

할머니의  장례를 치렀을 때, 나는 울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운 게 아니고  엄마의 슬픔이 나에게 전해져 울었다. 엄마를 위로해주기 위해 흘린 눈물이었다.     

가끔 지인이나 직장 동료분의 부고를 접할 때 장례식에 갔다. 그때도 안쓰러운 마음만 있었지, 솔직히 내 일이 아니었기에 그분들에 슬픔을 온전히 느끼지 못했다. 따뜻한 말 한마디를 해주고, 마음이 담긴 부조를 하는 게 다였다.      


막내 이모가 돌아가셨다. 엄마에게 그 말을 전해 듣자,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갓난아기처럼 울부짖었다.

나는 외가 쪽 친척들과 정이 없다. 내 이름조차 몰랐던 할머니, 할아버지, 줄곧 일등만 하는 언니에게만  인사하는  삼촌들, 얼굴이 예쁜 둘째 언니만 아꼈던 큰이모. 외가에 가면 나는 외톨이었다. 숨 막히는 공간이었다. 뭐 하나 내세울  게 없던 나는 그저 그런 존재였다.

하지만 막내 이모는 달랐다. 이모는 바쁜 부모님들을 대신해서 항상 쉬는 날이면 우리 세 자매를 데리고 놀러다녔다. 정성스럽게 김밥을 싸고 유명한 관광지를 구경시켜주고, 사진을 찍어 줬었다.

이모는 예뻤다. 항상 머리를 예쁘게 말아 올려서 풍성한 긴 머리를 하고 다녔다. 이모가 화장 하는 날이면 옆에 앉아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이모는 다정하게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주었다. 이모는 한 번도 우리에게 화낸 적이 없었다. 사근사근한 서울  말투를 쓰며 따뜻하게 말해주었던 기억이  있다.      

커가면서 이모를 잘 보지 못했다. 직장을 다닌 명절 때도 제주도에 잘 안 내려가 볼 기회가 없었고, 결혼해서는 외가댁에 갈 일이 없어 보지 못했다. 간간이 엄마에게 소식만 들었다. 이혼한 후 사는 게 바빠서 이모의 안부를 물어볼 여유조차 없었다.


며칠 전, 이모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문병을 가려고 하자, 엄마가 조금 더 괜찮아지면 가라고 하셨다. 최종 원고 작업에 바빠 나는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허망하게 이모를 보내고 말았다.      

어릴 때 추억을 생각하며 애도의 시간을 보냈다. 온종일 눈물이 나왔다. 가까운 절에 들러 108배를 하며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바로 장례식장에 가서 친척들과 인사를 나누고 입관식에 들어갔다. 싸늘한 침대 위에 누워있는 이모를 보니, 걷잡을 수 없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앙상한 팔과 다리. 안 본 사이에 그 예뻤던 얼굴은 사라지고, 이게 정말 막내이모 맞냐고 울부짖으며 차마 이모를 만져보지 못했다. 미안하다고 부디 아픔 없이 좋은 곳에 가라는 말만 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모를 떠나보냈다. 나와 이어진 관계 깊이에 따라 슬픔의 무게는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어릴 때만 봤던 이모여서 그 슬픔은 깊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주위 분이 작은삼촌이 돌아가셨다 그래서 너무 슬프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부모님이 돌아가신 게 아니라서 그 슬픔은 그렇게 깊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깊이 공감을 못 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슬픔은 관계의 기간과 비례하지 않았다. 진심으로 나를 대해줬던 이모에게 난 감동을 했었고, 좋은 추억이 있었다. 그 추억 속에 이모를 생각하며, 외롭게 살았던 이모를 생각하며 난 그 슬픔을 감당할 수 없었다.

엄마를 위로해줘야 했지만, 나에게도 큰 슬픔이어서 내 감정만 보였다. 사는 게 바빠 잘 돌보지 못했던 지난날 후회가 자기혐오로 다가왔다.      

이모를 보내고, 죽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었다. 영혼이 빠져나간 육신은 한 줌의 재가 되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삶을 우리는 살고 있다. 언제 어떻게 죽음이 다가올지 우리는 모른다. 소중한 주위 분들을 더 챙기고, 마음껏 사랑하고 시간을 보내는 일. 그게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다.           


티 없이 맑았던 이모. 그래서 사람들에게 상처만 받고 떠나가 버린 이모.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던 이모. 하늘나라에서는 이모 하고 싶은 거 다 하며, 행복하게 살아.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부디 다음 생애에는 정 많은 곳에서 사랑받으면서 살길.


*안녕하세요? 감정메이트 윤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최종원고본을 보고 있어 브런치를 못 들어왔네요.

그 와중에  갑작스럽게 이모가 돌아가셔서 마음을 추스르기가 힘드네요.

당분간은 인터넷 활동을 자제하려고 합니다.

옆에서 엄마를 다독이고, 애도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다들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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