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을 하며 바라본 세상
밤 늦게 천 길을 따라 걷다가 한 사람을 보았다. 결연한 표정으로 있는 힘껏 내달리는 여자였다. 대학생 아니면 사회 초년생 정도 나이쯤 되어 보이는 그녀는 무언가를 잊고 싶은 것처럼 열심히 뛰었다.
“저렇게 뛰면 오래 뛰지 못할 텐데.”
나는 나란히 걷던 여자친구에게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페이스는 웬만한 프로 수준으로 빨랐다. 5분에 1킬로미터의 속도면 프로에 준하는 속도인데, 보통 그렇게 뛰는 사람들은 호흡과 보폭부터 다르다. 안정적으로 코로 쉰 뒤 코로 내뱉고, 보폭은 일정하다. 프로는 그렇게 오랜 시간 뛸 수 있다. 빠르게 뛰어도 안정적이다.
하지만 그녀의 호흡은 지금 당장이라도 그만 둘 수 있을 것처럼 거셌다. 입에서는 쉰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보폭은 일정하지 않았다. 좁아졌다가 넓어졌다가를 반복하는 모습이 마치 곧 쓰러지기라도 할 사람 같았다.
“어 아까 전에 본 사람이다”
여자친구가 그녀를 보더니 내게 말했다. 앞을 쳐다보니 좀 전에 빠르게 뛰어서 걱정한 여자가 상체를 앞으로 굽힌 채 양 무릎을 잡고 서 있었다. 무척 지친 모습이었다.
러닝을 처음 시작할 때의 내가 떠올랐다. 그 시절의 나는 어느정도까지가 적당한 속도인지를 쉽게 가늠하지 못했다. 생각이 많아 정리할 것이 많은 날에는 오버해서 뛰었다. 숨이 헐떡 뒤로 넘어가기까지 뛸 때 비로소 생각을 멈출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는 오래 뛸 수 없었다. 근육이 놀랄 뿐 아니라 금세 지쳐 다치는 일도 잦았다. 작년 이맘쯤에는 몸도 풀지 않고 달리다가 인도 위에서 크게 발목을 삔 적 있었다. 9개월 가까이 뛰지 못하다 요즘 들어 다시 달리기 시작하는데, 뛸 수 있다는 사실 하나에 감사하며 산다.
“근데 저분 팔목에 상처가 많네. 힘든 일이 많으신가 봐.”
여자친구는 조심스럽게 내게 말했다. 지나가며 흘깃 보니 그녀의 손목에는 자해의 흔적이 보였다. 면도칼 같은 걸로 그은 흔적이 아직 아물기 전인데 불구하고, 그 위에 또 다른 상처가 있었다. 상처 위에 상처를 입은 사람의 마음에 대해 온전히 헤아리고 싶었지만, 차마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아픔이 그곳에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녀가 지금의 슬픔을 잘 달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천 위를 달리며 지금 그녀를 어지럽게 만드는 생각들을 잠시라도 지워, 그 빈 공간에 기쁘고 행복한 생각들이 가득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