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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범 Oct 23. 2024

내 인생의 경쟁자

러닝을 하며 드는 생각들 

러닝에 다시 빠졌다. 요새 날이 풀리면서 그렇게 됐다. 뛸 때마다 왼쪽 발목 뒷근육이 아프지만 작년 이맘때쯤 광기에 힘입어 달리다가 심하게 다친 때에 비하면 훨씬 낫다. 오늘은 날도 적당히 시원하기에 성북천을 뛰기로 했다. 집 앞에서 시작해서 청계천과 합류하는 지점, 두물다리 앞까지 뛰는 것이 계획이었다. 


처음에는 천천히 달렸다. 처음부터 빨리 달리면 금세 지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에서 어떤 사람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지나치는 것 아닌가. 짧은 반바지에 평범한 티셔츠를 입은 그는 입으로 훅훅 소리를 내며 나를 지나갔다. 나는 “곧 쓰러지겠군”이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첫 1km는 호흡에 신경 쓰지 않고 달렸다. 오히려 발바닥 중앙이 땅에 잘 붙는지 집중하면서 뛰었다. 하지만 이후 1km는 호흡에 신경 썼다. 코로 두 번 연달아 쉬고, 입으로 크게 내뱉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숨이 조금씩 가파 올 때 유용하다. 그렇게 뛰다 보니 10m 앞쯤에 좀 전에 봤던 남자가 열심히 뛰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아까 전에는 열심히 뛰더니 지친 모양이었다. 나는 무언가 속 안에서 올라오는 우쭐감을 느끼며 그를 앞질렀다. 


조금 있다가 뒤에서 어떤 소리가 들렸다. 그 남자의 숨소리였다. 그는 거친 소리를 내뿜으며 나를 쫓아오고 있었다. 입으로 쉬고 입으로 내뱉으면서 “후학후학” 하는 소리가 내 바로 뒤통수 쪽에서 들려왔다. 조금만 더 가까우면 그의 입김이 내 머리에 닿아 머리카락이 젖을 정도였다. 


그렇게 우리 둘만의 작은 경쟁이 시작됐다. 누군가 내 뒤에 바짝 붙어서 입으로 숨소리를 내는 것이 매우 신경 쓰였다. 뒤쪽에서 나는 소리에 집중한 나머지 내 페이스를 잃을 번 한 적도 많았다. 숨을 두 번 들이마시어야 할 것을 세 번 마시거나, 입으로 한 번 내쉬는 것이 아닌 두 번 내쉬었다. 스텝도 한두 번씩 꼬일 때가 있었다. 뒤에서 나를 앞지를까봐 평소에 비해 더 빨리 달린 탓이었다. 3km쯤 달렸을까. 솔직히 존나 힘들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뒤에서 헉헉거리는 나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돌아보니 그 사람은 없고, 나만 혼자 뛰고 있었다.


두 물이 만나는 지점에 들어선 뒤 나는 그곳에 잠시 앉아 있었다. 집 쪽을 바라보며 멀리서 그 남자가 오지는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오지 않았다. 내가 이긴 것이었다. 


하지만 이겼다는 것에 대한 성취감은 오래가지 않고 씁쓸한 감정이 울컥 쏟아져 나왔다. 이겼는데 기쁘지가 않았다. 삶에 적당한 일관성을 주기 위해 위해 뛰는 동안에도 경쟁에 압도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뛰는 동안 주위 풍경을 보는 행복이 있는데, 그걸 보지 못한 내가 한심했다. 그것도, 어느 날 우연히, 가는 길이 잠시 겹쳐 마주쳤을 뿐인 사람을 경쟁 상대로 두고서 말이다. 경쟁을 통해 평소보다 더 멀리 나간 것도 아니었다. 내 종착지는 그 사람이 있으나 없으나 두물다리였다. 게다가 난 그 사람이 없어도 두물다리로 갈 수 있었다.


인생도 달리기와 같지 않을까. 꿈을 향해 달리는 길에서 나의 같은 방향을 향해 달리는 타인을 마주쳤을 때 우린 자주 그를 경쟁자로 착각한다. 경쟁자의 상태에 집중하느라 내 호흡을 잃거나, 스텝이 꼬이기 부지기수다. 하지만 실은 그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생각이다. 내 인생의 경쟁자는 오직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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