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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대의 반란 Sep 02. 2020

한국에서 시작하는 캐나다 유학생활 그리고 한국 강의

2020년 9월.. 낮에는 대학강사로 밤에는 캐나다 박사과정으로 사는 삶

작년 9월, 회사를 그만둔 지 얼마 안되서 대학교로 와서 강의를 시작했다.

처음 강의하던 날, 회사가 아닌 학교로 향할 때 정말 만감이 교차했다.


mbc는 내가 꿈꾸던 회사였다. 그렇기에 입사 준비를 위해  3년 정도의 주말과 개인생활의 상당부분을 포기하면서

노력했다. 끝없는 막연함과 희망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고, 어렵던 필기시험을 통과하고 최종면접에 이르기까지 1달 이상의 시간을 마음 졸이며 여러 관문들을 지나야했다. 그렇게 마침내 최종면접을 보고 나온 뒤 2시간도 안되서 합격전화를 받았던 그 순간은 분명 내 삶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중에 하나였다.




요즘 보기드물게 좋은 조건으로 정년까지 보장이 되고, 가족같아진 동료들이 있는 곳이 아닌 낮선 학생들을 만나러 가는 길은 그만큼이나 낯설면서 설렜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만큼 생각은 많아지고 만감이 교차했다.


회사를 나올 때부터 대학에서 강의를 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힘든 점은 나이가 들수록 생각이 거대한 하나로 뭉쳐지는 점이다. 어릴 적에는 꿈이란 것도 있고 서로 다른 길에서 희망들을 보았는데 나이가 드니 할 수 있는 말들은 굉장히 한정되기 시작했다. 자녀교육, 아파트, 자동차, 해외여행, 정치, 몸에 좋은 음식과 웰빙. 주제가 이 정도이다보니 하루에 사용하는 필요한 핵심단어의 수는 50개 정도 안쪽이었을 것이다.



이런 토양에서 '나와서 무엇을 하고 싶냐'라는 말들' 보단 '무엇이 되려하냐'라는 질문에 대답을 해야했다. 그래서 그만큼 대학사회는 매력이 없었다. 내 경력과 능력치와는 상관 없이 대학은 구조상 젋은 사람들을 찾을 것이다. 또한 이것말고도 한국대학사회를 여러번 취재하며 어느 정도 알게 된 터라 굳이 이미 짜여진 틀안에 나를 구겨넣고 싶지는 않았다.


외국학교에 지원을 할 때 즈음 강사법이 시행되었고, 수없이 나오는 공채모집 공고를 보고 대학생들의 삶이 궁금해졌다. 현업인들은 정신 없이 바쁘고, 대학사회와 사회의 간극은 넓다. 그래서 강의는 나 정도의 객기를 가진 사람이 해야하는 숙제같아 보였다. 지난 20년간 내가 경험한 현장을 누군가에게는 들려줘야겠다는 이상한 절박함이 있던 터였다. 그렇게 첫강의를 하러 가게 된 것이다.


하지만, 대학사회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일단 가장 먼저 놀랐던 것은 엄청난 유학생의 수였다. 내가 지난 1년간 담당했던 7과목의 강의마다 보통 1/3정도 이상의 유학생들을 보게 된다. 처음엔 국제화라는 관점에서 흡족했다. 하지만 그런 만족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학생들 상당수가 앉아있었고, 그런 배경에는 학생수의 감소에 따라 유학생으로 채워가는 대학교의 민낮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속성장과 세계화의 수혜를 받은 세대가 다니던 역동적인 학교와는 다르게 학교는 전체적으로 비에 젖은 듯 무거워 보였다. 강사법은 더 볼만했다. 강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실시된 강사법으로 인해 1/3 정도의 강사들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처우의 개선에는 이름도 이상한 3대보험과 함께 방학 때도 급여를 일부 제공한다는 개선사항이 포함되어 있다. 방학 때 찍힌 월급은 26만원. 대학 등록금은 이미 캐나다의 학교를 상회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뉴스에서도 많이 했고, 또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잠깐 가서 인터뷰 몇 개 해와서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과, 학생들을 학교에서 계속 보는 느낌은 상당히 달랐다. 지금까지 다음세대의 무겁고 높은 허들 앞에서 너무 쉽게 세상을 담아오지 않았나 싶다. 타이밍이 되었던, 요행이 좋았던, 또는 나의 노력이 되었던 간에 나는 이 사회의 생존자였다. 젊은 세대들의 부침은 현재진행형인데 그들의 뒤에 줄을 서게 될 우리들의 자녀는 마치 그들과 다른 삶을 살 것처럼 다루고 않고 있나 싶다.



"라떼는 말이야"

"젊은 애들은 패기가 없어"

"IMF 때는 더했어"


고통은 자주 주관적이다.

왜 지난 날 이상적인 사회와 문화를 꿈꾸던 사람들이 만든 사회가 이 지점에 도달해야 하나 싶다. 우리가 꿈꾸던 것이 정말 자녀들을 일류학교를 보내고, 강남에 집을 사고, 좋은 브랜드를 소비하는 것이었을까? 왜 지금 눈앞에는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구내식당 정도의 메뉴선택권 정도 밖에 없을까?


나는 실험적인 삶에 도전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TV에 나오는 위인들처럼 각잡고 살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패기가 넘쳐나는 드라마 주인공도 아니다.


"지난 날의 결정이 옳았을까?"

"과연 이런 삶이 지속가능한가?"

이런 생각들에 매일 수없이 후회하고 흔들리고 쓰러진다.



다음 주부터는 한국에서 캐나다 유학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코로나로 인해서 외국 유학생의 입국이 묶여있어서 첫 학기의 시작을 한국에서 온라인으로 하게 되었다.

나는 평범한 사람인지라 오늘도 흔들리고 또 흔들린다. 두렵고도 떨린다.


지난학기, 갑자기 온라인 강의를 만들기 위해 하루 스무시간 정도를 들여야 했다. 너무 낮설고 힘들었다. 정말 학기가 끝나고 강의가 너무 좋았고 많이 배웠다라는 학생들의 메일을 보고 울컥했다. 이번에는 그 위에다가 거꾸로 학생으로서의 삶도 시작한다.


5-6년이 걸리는 도전이다. 사람들은 다시 묻는다. 그걸 마친 나이에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냐고..

나는 마치고 무엇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무엇이 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펀딩을 받으려고 줄을 서서 연구를 하지 않아도 되고

출세를 하고자 하지 않기 때문에 자판기처럼 권력과 자본이 원하는 답을 할 필요도 없다.


또 이렇게 거창하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6학년의 딸이 더 좋은 세상에서 살기를 바란다면 이 모든 문제를 현재진행형으로 바라봐야 한다.



내가 뚫고 온 다른 많은 도전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이 긴 시간의 도전을 무사히 끝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하지만 과정이 중요하기에 어디까지 가는가보다 내가 하루하루 무엇으로 채워갈까가 중요하다.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이런 실험 조차 조금이라도 우리가 사는 방식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는 재료가 되었으면 좋겠다.


'정말 이제 은퇴 좀 하지'란 생각을 속으로 하게 되는 정치인들과 업무상 만나거나 회식을 해야할 때 종종 듣던 말이 있다. 많은 중진 의원들이 자주하던 말이다. "나도 편하게 은퇴를 하고 싶은데 하고 나면 무엇을 해야할지를 모르겠어"


정말 모른다면, 그 모두를 내려놓는다면 어떤 삶의 방식이 가능할 지 꼭 알려주고 싶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 답을 알려주는 책도 미디어도 사람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부족한 돈과 지적능력임에도 불구하고 난 한국에서의 온라인 유학생의 생활을 시작하고자 한다. 내가 해야만 하는 연구를 하고, 한국의 아파트와 타이틀을 버리고, 나이가 주는 위계를 버린다면, 또 체면을 버린다면 어떤 삶을 살 수 있을지 나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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