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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대의 반란 May 21. 2021

시작할 때 나이를 묻는 습관

탐크루즈에서 배티 할머니까지

 헐리우드의 유명 배우 탐크루즈가 인종 성차별 논란이 반복되는 골든 디스크에서 받은 트로피를 반납하며 시상식 불참을 선언했다. 탑건에서의 매력에 충격을 받았고, 레인맨에서의 연기력에 감탄을 했었고,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이렇게 참여를 하는 모습도 좋아하지만, 진정 내가 탐크루즈가 존경스러운 부분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탐크루즈는 헐리우드에서 위험한 스턴트를 직접 하는 배우 중에 한 명이다. 그는 미션 임파서블의 고스트 프로토콜에서 두바이의 초고층 건물을 오르는 장면도 대역 없이 직접 연기를 했고, 심지어 비행기에 매달려서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도 CG가 아닌 직접 연기를 했다. 

출처: Mission Impossible Rogue Nation


그는 작년에 "미션 임파서블 7"을 촬영을 했는데,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점프대에서 떨어지고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씬을 대역 없이 직접 소화했다. 그가 이 씬을 찍고 있을 때의 나이는 만 58세였다. 


      출처 Splash News (Mission Impossible 7)


나이가 들수록 주변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이 나이에 어떻게.."라든지, 아님 나이를 앞에두고 성공과 실패에 대한 당위성을 주장하는 말들이 그것들이다. 이런 말들은 나이로 스스로 활동 범위를 스스로 좁히고, 위계와 서열로 사회의 탄력을 약화시키는 것 같다. 



살다보니, 그리고 배려를 받을 수 있는 회사를 다니다보니, 우연찮게 학교에 자주 돌아가게 되었다. 두 번은 한국의 대학원이었고, 두 번은 영국과 캐나다의 대학원이었다. 교수로 간 것도 아니고 학생으로 똑같이 배우러 간 입장에서 다른 학생들과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한국 학교에서는 예의 바른 어린 학생들이 복도를 갈 때 길을 옆으로 비켜주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 



너무 고마운 일이지만, 이미 어린 학생들과 나의 위치는 시작하기도 전에 나이로 결정이 나 있었다. 이런 일들은 사회 생활을 하면서도 계속 지속된다. 결국, 어느 정도의 나이와 연차가 되면 관리자의 위치에 있지 않으면 불편하게 되고, 나이에 직책이 더해진 조직문화는 소통을 참 어렵게 하는 것 같다. 



카카오에 갔을 때, 그래서 직책을 호명하지 않고 상호 존댓말을 하는 문화를 봤는데 그 배경도 이렇게 나이와 직책이 주는 위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이는 어린 사람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나이 많은 사람에게서는 행동의 제약을 주는 대표적인 사회문화코드로 작동을 한다.


  London, the U.K.


외국에서 공부를 하면서 제일 만족스러운 부분은 바로 나이가 주는 이런 위계적 관계성이 약하다는 것이다. 존댓말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영어와, 나이를 공식적으로 묻지 않는 문화 안에서 나는 그냥 다시 똑같은 학생일 뿐이다. 학생이기 때문에 나의 생각과 발언에 많이 어린 친구들이 이견을 제시하고 반박을 하며 토론을 한다. 나는 나를 이렇게 대해주는 이런 동료들이 고마운데, 만약 어렵게 대하면서, 배려를 해준다면 나는 내 생각의 한계도 알지 못할 것이고, 또한 새로운 생각도 쉽게 접할 수 없을 것이다. 


                                                Whistler Canada


돌아보니 4-5년 간격으로 한번씩 학교에 돌아갔는데, 분명 나이가 드니 체력적으로 힘든 것은 분명하다. 기억력이 가물하고, 예전처럼 책상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런 한계는 유한한 시간 동안 내가 더 집중해서 해야하는 것들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렇게 몸이 쇠잔해져 가는데, 남의 시간으로 내 인생을 낭비할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고 좋아하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몸은 끊임없이 말해준다.


나이를 잊고 사는 분 하면 떠오르는 나의 멘토가 있다. 

스물 넷의 여름, 잠시  캐나다 오소이오스란 곳에서 농장일을 하며 숙식을 제공받은 적이 있었다. 그 때 계셨던 할머니는 화가이자 농촌분교의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미술 선생님 이었는데, 그 분은 55세까지 토론토에 있는 회사에서 비서를 하다가 은퇴를 하신 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고 전념해서 결국 우리 나라 환갑이 되는 나이에 화가가 되셨다. 그 분과 주말에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풍경화를 그리던 기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때 오늘을 예감하듯이 할머니가 들판에서 해준 말이 있다.


"사람들은 새로운 일을 할 때 누구나 겁이 나. 하지만 겁이 너를 붙잡아 두게 하진 말아야 해. 겁이 나는 것은 건강한 감정이니까 숨기려 하지 말고 그냥 꺼내놓아도 돼. 하지만 그 것 때문에 너가 하고자 하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돼.. 마음의 소리 방향으로 걸어가. 그러다보면 너가 도달하기 전에 행복해져 있을거야"


나이가 들어 갈수록 배티할머니가 해주셨던 이 말이 가슴에 많이 와닿는다. 그리고 그 말을 간직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나이와 사회, 그리고 사회적 시선들이 서로 얽혀있는 사슬을 풀어 낸다면, 나이가 들어 간다는 건 결국 한정된 시간 안에서 더욱 더 집중해서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중요한 시그널일 뿐이다. 


KFC의 창업자 샌더스(Harland David Sanders)는 다른 분야에서 온갖 실패와 좌절을 경험한 뒤 62세에 창업을 했다. 그 실패들은 그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찾는 과정이었을 뿐이다. 58세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씬을 찍는 탐크루즈나 환갑에 다시 화가의 길을 시작한 배티 할머니, 그리고 62세에 KFC를 창업한 샌더스에 비하면 나는 젊디 젋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고작 서툴게 영어를 공부하고 책을 읽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오늘도 일찍 늙지 말아야 한다고 다시 다짐한다. 일찍 늙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에 대한 어설픈 훈수도, 자신만의 생각이 옳다라는 중년병인 고집도, 나오기 시작하는 배도 조금은 들어가지 않을까.. 


오늘도 힘들지만, 그렇게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며 하루를 즐겨보려 한다.


 

Lonsdale Quay, Vancou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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