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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대의 반란 May 02. 2021

40대의 은퇴 이야기

마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아는 시기

요즘 파이어족(Fire Independence Early Retirement)이란 말이 지면에 심심찮게 올라오는 것 같다. 이런 것이 사회적 트랜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찌하며 살다보니 비슷한 모양새로 살고 있는 것 같다.

천상 한량, 유목민, 아님 역마, 아니면 사십수를 못넘었나? 그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 안전지대를 나와버렸다.


(Spain Mallorca)



직업상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고, 우리사회에 있는 온갖 성공서사는 직접 보고 들어 왔다. 지난 이 십여년간 PD로서, 그리고 영상기자로서 정말 많은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사회의 희노애락들을 보는 것이 내 삶의 가장 큰 줄기였다.


특히 나의 직종은 연차가 높아지면서 사람들의 평범한  삶보다는 성공한 기업체나 관료, 정치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기회가 많아진다.


그렇게 사회에서 내로라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보면, 그 분들의 뛰어난 역량에 감동을 할 때도 있지만  그 보다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그렇게 살아오면서 가족들에게 느끼는 미안함, 혹은 번아웃 되어 있는 모습들이다.


 입시자옥을 뚫고 좋은 대학을 나와서, 좋은 회사에 들어가는 경쟁을 치르고, 거기서 능력을 인정 받는 과정이 모두에게 얼마나 고단한 삶이었나 싶다.


(2018. 유럽순방취재. 직업 자체가 항상 가장 성공한 사람들을 바로 옆에서 보던 일이었다)




"대학을 가기전엔 대학만 가면, 대학을 가선 취직만 하면, 취직을 하면 집만 장만하면, 집을 장만하면 아이들을 교육시킬 때까지.."



문제는  막판 스퍼트를 하고 하나의 관문을 넘으면 더 멀고도 험한 길들이 계속 나온다는데 있다. 운이 좋게도 직업적 안정은 찾았지만 삶이 어떻게 끝날지를 40대에 받아 들이는 것.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40대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꿀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을 한다.


결정은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YOLO의 절대 명제인

."우리는 오직 한 번을 산다"라는 확률 100프로의 가능성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그렇게 회사를 나왔다.


막상 이십여년에 가깝게 청춘을 보낸 방송국을 나오니 세상이 갑자기 달라보인다.



회사에 있을 때는 몰랐지만 나오면 회사에 있었을 때는 몰랐던 단점들과 만나게 된다.


정말 은퇴를 하면 가장 힘든 것 중에 하나는, 사회생활을 하던 바운더리가 없어지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범위가 많이 좁아진다.  정작 회사를 나오고 나서는 그 싫었던(?) 회식 자리도 그리워지곤 한다.



(Toulouse France)



돌아보면 나의 은퇴에는 세가지 동기가 있었다. 사회적인 동기, 경제적 동기, 그리고 교육적인 동기...


먼저, 사회적인 동기로는 나는 내가 겪었던 궤적을, 그리고 내가 지켜본 성공한 사람들의 궤적을 딸에게 도무지 추천해 주고 싶지 않았다. 특히 한층 더 심해진 경쟁문화와 성공 지상주의, 그리고 학원교육으로 아이의 시간과 생각을 축내고 싶지 않았다. 유년기는 소중한 시기이다. 유년을 버리고 얻는 댓가가 적어도 내 눈에는 커보이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공포감을 미래에 지나치게 투영하고 있다라는 생각이 든다. "대학을 못가면"부터 시작된 사회가 규정짓는 공포는 마흔이 되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2018 캐나다 여행) 공포가 아닌 긍정의 언어를 교육하고 싶었다



걱정이 가실 것 같으면 "집값이 오르는데.."로 이어졌고, 아이가 커가니, "요즘 애들 세대는 명문대도 취직이 힘들다더라" 같이 갈림길에서는 항상 공포가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그 사회적 공포가 실제한다면, 마흔이란 안정된 시기에는 그걸 해소하는데 다함께 사회적 역량과 연대를 통해 세상운 바꾸면  좋을 것 같았지만, 사회는 아쉽게도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았다. 양극화는 심해지고, 그 양극화를 따라서 공포감은 더욱 더 인생에 대한 어떤 상상력도 허용하지 않았다.


(캐나다 아파트 베란다 뷰)


두번째는 역설적으로 경제적인 동기였다. 회사를 다녔으면 산술적으로 지금 가진 돈의 두 배를 가지거나 쓰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땅에 돈을 거의 대부분을 넣고, 그 만큼의 효용은 느끼지 못하는 일상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계산을 한다. 아이의 학원비와 교육비와 여행 경비로 바꿀 수 있는 대안적 삶의 형태가 있는지...


Mallorca Spain


그리고 지금 사는 집을 전세로 돌리거나 처분을 하고 금융권에 맡겼을 때의 돈을 따져본다. 여행을 좋아했기 때문에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거나 외국 친구들도 조금 있는 편이다.


내가 이렇게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렇게 돌린 돈이면 지구상에 살 수 있는 곳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이들의  삶을 통해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 보르도에서 만난 한 삼십대 초반의 한국 여성분은 자신은 60만원 정도의 아파트에 산다고 했다. 그리고 칸쿤에 사는 은퇴한 캐나다 노인 역시 3 베드룸에 룸쉐어를 해서 100만원이 안되는 돈으로 한 달을 살 수 있었다. 동남아시아에서 써핑을 했던 미국 친구 매트는 이것의 반값을 집세에 쓰고 있었다. 남유럽으로 간다면 비용은 상상한 것 이상으로 내려갈 것이다.

여기에 교육비를 더하니 나는 어느덧 이런 모험은 한번 정도 해볼만 하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있는 캐나다는, 그리고 공부했던 영국은, 그리고 서방의 많은 국가들은 부모가 공부를 한다면 자녀의 교육비를 지원을 한다. 우리가 고등교육이라 부르는 화이트 컬러 직종 뿐 아니라, 기술학교에도 동일한 권리를 부여한다. 그리고 미국과 달리 공교육 중심인 이곳 대학등록금은 한국보다 많이 저렴한 편이다. 이건 저널리즘 하나로 사회의 문제를 풀 수 없는 상황에서 공회전하며 번아웃되가던 내게 새로운 동기를 부여해 주었다. 나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주면서, 아이는 공교육을 무상으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가족 전체에게는 이 모험 자체가 여행이자 추억이 될 것이다. 그런 희망을 갖고 있다.


(노을 질 때 베란다 풍경. 여행에서 이런 뷰를 가진 숙소라면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할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론 한국사회의 부족한 삶에 대한 상상력에 더해 다양한 가치들을 딸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이데올로기 대립에서 오는 경직성이나, 혹은 단일민족국가가 주는 장점의 이면에 있는 배타성에서 벗어나 조금 더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문화들을 수용하는 방법들을 알려주고 싶었다. 한국사회의 이분법적 논쟁은 세대를 거슬러 내려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다.


그 지점을 뛰어넘으려면  다양성이 우리에겐 필요해 보였다.


(Fairwell to the United Kingdom)



이런 생각에 결심한 40대의 반란은 쉽지가 않다. 하지만, 한국을 나와 사회회로가 다르게 작동하는 이곳에서는 그게 보다 수월하기는 한 것 같다.


동네 공원만 걸어도 들려오는 새소리와 맑은 하늘과 공기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해준다. 처음에는 60대 은퇴후 세계 여행이 목적이었지만, 40대에 시작하는 다른 곳에서의 삶은 여행할 때는 보지 못한 새로운 것들을 보게 해준다. 40대의 은퇴의 가장 큰 장점은 늘 상존하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공포감을 다시 어느 정도의 경제활동으로 상쇄시킬 수 있는 시간과 기회와 체력이 있다는 것이다.


(아이슬란드. 휴직을 했던 1년 동안 아이와 말그대로 지구 한바퀴를 돌 수 있었다. 이런 여행은 떠날 때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는 없다)


 이 길의 끝이 어떻게 끝날 지 모른다. 회사에 있을 때는 가장 불안했던 불확실성의 다른 이면은 늘 새로움이 있다. 


나오면 세상은 몇갑절 더 힘들지만

오늘도 다짐한다.


일찍 늙지 말자.

이것이다라고 살아가자.


Honfleur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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