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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대의 반란 Apr 22. 2021

캐나다에서의 새로운 도전과 삶

박사 두번째 학기가 지나다

온라인으로 맞는 두번째 학기가 익숙해질 무렵

캐나다의 여행제한 조치가 강화될 것이라는 뉴스를 2월말에 접했다.


코로나가 더 심해 보이는 상황도 두려웠지만,

자가 격리 2주를 거쳐 봄학기(1-4월) 중간에 옮기는 것이 쉬워 보이지 않았다.

그런 마음을 움직인 건 이러다가 나 스스로 캐나다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커져 갔기 때문이다.


그렇게 중간에 끼어 들어온 학교 생활은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쉽지가 않았다.

환경도 낮설고, 살 집도 알아봐야 했고, 차도 사야 했고,

그 와중에 발표 30분이 포함된 숙제도 해야만 했다.


이 모든 일보다 문제는.. 

그 놈의 영어..


내가 외국어를 전공했음에도 20년 동안 사용할 필요가 크게 없었던 영어가 편할리 없다.



아직도 영국유학을 가기 위해 처음 치렀던 영어시험 (IELTS)에서 스피킹 5.5가 나왔던 순간이 엊그제 같다.

설상가상 지금 전공하는 분야가 미디어 연구여서 사회현상을 이론화하는 것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실기과목이라면 눈대중이라도 따라갈텐데 이 상황 자체가 한계에 가깝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날씨..



4월이 되니 이런 날씨가 시작이 되었다.

낮선 문화보다도

영어 보다도

이런 환경에서 책을 봐야만 한다는 건 고문에 가깝다.


이런 생활을 시작한 건

순전히 삶은 사는 느낌으로 가득 차야 된다는 개인적인 신념, 

아이에게 내가 지나온 입시지옥을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다라는 열망, 

그리고 급변한 미디어 생태계에서 저널리즘 하나만으로 사회 문제를 풀 수 없다라는 직업적인 한계

이런 것들이 결합된 결과였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난 이곳의 생활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비록 공부는 생각보다 너무 어려웠지만 무사히 또 다른 한 학기를 넘겼다.

그리고 아이는 체육시간이 5일 내내 있고, 체육과 별개로 산책 시간이 매일 있는 학교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부모로서 이런 극대화된 방임이 맞는지 자주 헷갈린다.


밴쿠버는 영국과 다르게 한인비율이 높은 사회이다.

코로나 상황이지만 학교마다 한국사람들의 비중이 어느 정도 되는 편이다.

이런 환경에서 영어 걱정을 하시는 분들도 많지만,

나도 영어와 씨름하지만 영어는 도구일 뿐이다라는 생각이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단순한 점수를 위한 도구로서가 아니라, 아이가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성장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생각이 가끔 필요이상으로 많아지지만

이 모든 것들을 덮어버리는 건 바로 환경 자체인것 같다.

여행을 왔을 때 유명 장소들을 다니면서 환경이 좋다라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살아보면서 느껴보는 캐나다는

좋은 환경이 좋은 장소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공간안에 가득하다라는 것이다.


처음 본 동네 공원의 아름다움에 사진을 계속 찍어댔지만

찍다보니 이런 환경이 특별한 게 아니라 그냥 생활환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문을 열었을 때의 상쾌한 공기.

미세먼지라는 단어도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

동네에 가득한 보존된 자연.



이런 환경을 걸으며 부럽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사실 우리도 이미 지나온 환경이었다라는 사실을 만나게 된다.


어릴적 우리나라를 소개하는 담론들은 확실히 달랐다.

기억나는 것들은 금수강산, 정이 많은 나라..

우리를 소개하는 말은 이런 것들이었던 것같다.


모두 잘살지 못했지만,

집에는 마당이란 것들이 있어서 땅과 만날 수 있었던 나만의 공간이 있었고,

서울하늘에서도 가득한 별을 볼 수 있었던 어릴 적이 기억이 난다.


왜 우리는 훨씬 더 잘 살게 되었는데

예전에 누리던 것들을 잃게 되었을까.


한국에선 부동산이 들썩인다는 소식이 계속전해진다.

우리가 땅을 대하는 방식이 맞는 것일까?

개발호재라는 말이 과연 올바른 표현인가?


30년전 잠시 살았던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때에 놀란 것은

내가 살았던 몇 백년 된 이탈리아 집은 나무 문고리 하나까지 그대로 있다라는 사실이었다.

개발호재로 살던 동네를 다 밀어내고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원주민을 밀어내고

세우는 고층 아파트는 우리에게 과연 행복을 가져다 줄까

나는 그 삽십년 된 문고리에 손을 다시 대어 보는 순간

내가 뛰어놀던 동네가 아파트 촌이 된 한국보다 더 고향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다.



우리에게 더 필요한 건

발전에 대한 스피드가 니라

발전의 방향에 대한 철학일 것 같다라는 생각을 사람의 손을 최대한 덜 댄 자연을 보면서 느끼고 있다.


환경이 정쟁의 대상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의 기본권이자 풍요로운 삶의 필수적인 조건이라는 것들에 공감했으면 좋겠다.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의 눈으로 이 곳 생활을 낭만화하고 싶지는 않지만

상쾌한 공기와 자연의 소리와 향기, 그리고 인간도 그 일부란 경험이

우리가 공간을 사유화하고 점유하는 방식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한다.


당분간은 쉬면서 이 농밀한 공간들을 누려야겠다.


BC Coquitlam 202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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