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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대의 반란 Aug 15. 2021

얼마가 있어야 은퇴가 가능할까?

다섯 달의 밴쿠버 생활

전 직업이 기자이다보니 성공한 사람들을 비교적 많이 만난 편이었다. 회사생활을 하는 내내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대통령과 유명 정치인, 기업 총수들, 벤처 사업가들, 그리고 의사 변호사와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은 자주 만나야 하는 사람들 그룹이었다.


 그리고 언론계에서도 좋은 대우를 해주는 회사를 다닌 덕분에, 사실 지난 이 십년은 돈에 대한 특별한 철학이 없었던 것 같다. 이렇게 안정된 사람들 속에서 보면 주변에 돈 자체에 대한 걱정을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들 중에도 돈의 축척 속도에 대한 조바심을 가진 사람들은 제법 있었다. 그리고 선대로부터 물려 받지 않았다면 이런 자리에 올라간 사람들은 저마나 치열한 성공 서사들이 있다. 그래서 마흔과 쉰 정도에서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번아웃 되는 경향은 우리 사회에선 찾기 어려운 광경이 아니다.


그래서 많이 버나 적게 버나

가진 것이 많나 가진 것이 적나에 관계 없이

직장인의 영원한 질문은 은퇴로 종종 연결된다.


은퇴를 해서 지중해가 보이는 바다에서 글이나 쓸까? 그만 두고 세계 여행을 할까?, 좋아하는 취미로 제 2의 인생을 시작할까? 시골로 가서 펜션을 할까? 귀농을 해서 자연으로 돌아갈까? 등등 은퇴에 대한 상상안에서의 모험들은 어느 나른한 오후의 커피타임에도, 일을 마치고 지친 마음으로 마주하는 술자리의 안주로도 항상 등장하는 직장인의 후크송과 같다.


그런데 한가지 흥미로운 지점은 많이 가진 사람들 조차 은퇴를 망설이는 이유가 같다는 것이다.

2017 Spain Mallorca

                                                  

그건 바로..

돈이 아직 모자라다이다.


그리고 다시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간다.

돈이 없다라고 하는 사람들은 죽기 살기로 버텨야지라고 하고,

20억을 가진 사람은 50억만 벌면 은퇴할 수 있어라고 하고,

50억을 가진 친구도 100억으로 상가를 하나 사면

은퇴를 하겠다고 한다.

지갑에 돈이 많나 적나에 관계 없이 따지고 보면 모두 돈이 없다 한다.


그래서 문득 궁금해진다. 도대체 얼마가 있어야 은퇴라는 게 가능할까?


부양가족이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겐 돈은 정말 은퇴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고려대상이었다.

자녀의 교육비와 생활비와 여행 경비 등등 삶이 경제적으로 지속 가능해지지 않으면,

은퇴는 분명 어려울 수가 있다. 가족이 없어도 생활의 지속가능성은 분명 은퇴의 첫번째 허들이다.


Canada Coquitlam Belcara (2021. 5)


하지만 이런 생각에는 두 가지 부족한 지점이 있다.


첫 번째는 시간에 대한 성찰이다. 돈은 사회적 삶을 가능하게 해주지만 찰나처럼 지나가는 생물학적 순간들을 보존해주지 못한다.


우리는 사회적인 생존을 셈하는데에는 익숙하지만

생물학적인 시간의 부족함을 계산하는데에는 능숙하지 못하다.



캐나다에서 천 섬을 여행할 때 산소통을 매고 여행을 하는 할머니를 만났다. 우리의 시간은 앞과 뒤가 균일하지 않다. 지금 가능한게 내가 생각하는 미래에는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 더군다나 온가족이 보내는 가족여행이라면 저마다 다른 삶의 곡선으로 인해서 더더욱 기회가 많지 않을 수 있다.


<스타벅스는 어떻게 나의 인생을 바꾸었나 How Starbucks Saved My Life>의 저자 마이클 길(Michael Gates Gill)은 2억에 가까운 연봉을 가진 잘나가는 광고회사의 중역이었지만, 그가 보낸 댓가가 이혼과 자녀들의 소원한 관계, 그리고 뇌종양으로 돌아온 것을 뼈져리게 후회한다. 책의 중간에 딸 아이의 졸업식에서 눈인사만 하고 사라지는 딸아이를 보고 가슴이 아파하며 딸아이가 성장할 때 함께 해주지 못했다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우리 사회가 그리는 아버지 상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비슷한 결을 가지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들은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아보겠다고 주말을 열심히 사용해보지만 직장에서도 혹사를 당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것이 잘 될리가 없다. 삼십대 초반에는 어떻게 체력으로 버텼는데, 나이가 들수록 몸이 피곤해지니 예민해지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재미보다는 의례와 의식 같은 시간으로 변해간다.


은퇴를 망설이게 하는 두 번째는 대안적인 삶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아직 많지 않다는 것이다. 어떻게 대안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에 대한 명확한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지 않은 비포장의 길로 접어들기가 쉽지가 않다. 마흔 후반에 안정적인 직장을 나올 때 가장 두려웠던 대목이기도 하다. 앞으로 얼마가 들어갈지? 얼마가 벌릴지? 딸아이의 교육은 시킬 수 있을지 이런 생각들이 결정적인 몇 번의 선택의 순간에 늘 나를 되돌려 보냈었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과 생각들이 다르겠지만,

이런 생각 때문에 국내에서 하는 제 2의 길은 나에게는 선택지가 될 수 없었다. 일단 회사생활을 좋아했던 나는 우리나라에서 제 2의 길을 가려 했다면, 힘들 때마다 회사 생각이 나고 미련이 계속 남을 것 같았다. 펜션이나 귀농 같은 그나마 레퍼런스가 있는 방식들을 하기에는 너무 경험과 지식이 짧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치열한 한국 사회를 지난 20년간 관찰해왔던 직업병 때문에, 아이에게 여유롭게(?) 입시를 준비하고, 인생에서 느린 속도로 살라는 충고를 도저히 할 수도 없었다.


이런 고민과 셈법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첫번째 나라가 캐나다이다.

그렇게 해서 박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셈법은 다음과 같다.


1) 캐나다의 학비는 우리나라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다.

2) 학교 박사과정에는 조교(TA)활동이 포함되어 있고, 이를 통해 월 200에 가까운 돈을 받을 수 있다.

3) 복지제도가 좋은 이곳은 18개월 이후부터 자녀 1인당 매달 몇 십만원의 우유값을 지원받는다.

4) 학교 재정이 괜찮은 학교에서는 공부를 하며 펀딩을 받을 기회가 적지 않다.

5) 캐나다의 전업학생의 배우자는 풀타임 취업비자를 받는다. 학업기간이 긴 박사를 받았기 때문에 5년 +3년 정도의 기간 동안 배우자는 취업활동을 할 수 있다.

6) 전업학생의 자녀는 무상교육을 받을 수 있다.

7) 캐나다의 학교는 수시로 들어가는데, 고3의 성적만을 주로 보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치열한 입시전쟁이 없다.

8) 이렇게 해서 SKY보다 좋은 평가를 받는 대학에 들어가는 학생들의 레퍼런스가 많다.

9) 여기에 한국집을 전세 혹은 월세를 준다. 혹은 현금화된 자산을 분산 투자해서 소득을 보존한다.

10) 사교육비를 차감한다.

11) 핸드폰이 아닌 자연과 노는 아이들의 삶의 질에 가산점을 더한다.


이런 생각 끝에 캐나다는 해볼만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에 살았던 영국 런던과 마찬가지로 캐나다 밴쿠버는 세계에서 살기 비싼 동네중에 하나이다. 이런 대안이 반드시 캐나다나 밴쿠버가 될 필요는 없다.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영국도 런던을 벗어나면 생활비가 많이 저렴해진다. 포도주가 익어가는 보르도 같은 유럽의 작은 도시들은 더욱 그렇다. 동남 아시아는 더더욱 그렇다. 외국 생활이 뚜렷한 대안도 아니지만 다양한 삶으로 다양한 삶의 방식들을 증명하고 보여주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숲 속의 저자> 박혜윤 씨는 서울대 졸업과 국내 메이저 언론사의 기자생활, 그리고 미국에서 뒤늦게 석박사를 마쳤지만, 마흔에 은퇴를 하고, 지금은 시애틀의 농가주택에서 생활하고 있다. 언론에도 많이 소개된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강북아파트를 판 돈으로 미국 시애틀 인근의 2만5천평의 농가주택을 살 수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교수가 될 수도 있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 분은 어느사회에나 위아래라는 위계가 있는데 농부에는 위계가 있지 않다라고 자신이 만족하는 부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래, 생각을 해보니

열심히 성공하는  방법을 말하는 사람은 가득한 데

은퇴를 제대로 알려준 사람은 많지가 않았다.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 시대적 소명이었던 산업화세대, 그리고 인권과 민주주의에 헌신했던 민주화 세대에서 '떳떳한' 안정을 찾은 사람들의 공통점이라면 모두 죽기살기로 했다라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암묵적인 성공의 공식과 발전의 수혜를 상수로 두고 삶을 살게 된 같다. 하지만 이런 압축 성장과 거대한 서사는 이제 더 이상 신화와 같다고 생각한다. 집 값이 오르며 부자가 된 것 같지만 함께 올라간 물가와 다른 부동산 값으로 결국은 다시 팍팍함으로 환원되는 매비우스의 띠.


이 무한 루핑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이십대에서부터 오십대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성실하게 노력을 한 우리들은 사실 어디에 가도 살 수가 있다라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는 소위 '몸빵' 보다는 박사를 택했다. 직업의 귀천을 따져서가 아니라 한국에서 내가 해 온 일의 터전이 언론사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삶의 한자락은 개인적으로라도 결실을 맺고 무언가 사심없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하던 일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미권에서 해보고 싶은 도전의식이 들었다. 영어는 늘 문제이지만, 이런 치열함과 영원히 극복못할 영어가 만나는 순간의 극적 서사를 만나보고 싶었다. 그것이 해피엔딩이든 새드앤딩이든간에...


어린 나이에 도전을 했으면 더욱 좋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은 당연히 들고 또 든다.

하지만, 그렇다면 내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희노애락도,

친구 이상의 직장 동료들도,

그리도 그렇게 많은 경험도 할 수 없었을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덤으로 한 번 더 사는 것 같은 보너스 같은 이 시간들이 다시 돌아봐도

매 순간 소중하고 또 소중하다.

Canada Place 202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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