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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대의 반란 Nov 13. 2021

은퇴후 캐나다 학교 생활 1년

또 하나의 여행으로서의 박사 생활

정신 없이 생활을 하다보니

캐나다에 온 지는 10달이 되어 가고 있고, 온라인으로 시작한 박사생활은 어느 덧 1년의 시간을 넘기고 있다.


선후배, 친구들중에는 사십수 혹은  갱년기나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새로운 생활에 적응을 하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다보니 -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마음과 정신 상태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조차 없을 때도 많다.



여행을 좋아하기 때문에 회사에 있을 때는 단지 여행을 더 할 수 있는 기회들을 원했다. 직업 자체가 세상의 모든 희노애락을 지켜봐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여행은 나에게는  일상에서 벗어나는 획실한 돌파구였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것이 자주 하면 할 수록  몇 시간 짧게 스치듯 지나치는 여행에 공허함을 느끼게 되고, 결국 여행문화가 아닌 생활문화를 느낄 수 있는 정말 "찐"을 찾는 형태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여행의 또 다른 형태로서,

퇴직 후 외국에서의 박사과정이었다.


"박사과정을 늦은 나이에 밟아서 무엇을 하려고"

"그렇게 들어간 비용을 뽑을 수 가 있겠냐"


모두가 묻는 이런 종류의 질문은 여행과 결합된 형태의 새로운 여정을 그래서 막지는 못했다.



캐나다 생활 10개월.

한 곳에 오래머무는 정주는  확실히 이 사회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캐나다 대학생들의 성적을 모니터하고 채점을 하다가 보니, 다문화가 주는 시스템 상의 단점도 보이고,

멀지 않은 과거에 원주민들에 대한 인권 침해와 탄압의 수준에도 충격도 받게 되고,


또한 그 반대로 우리가 짧은 시간 이루어 낸 번영과 사회 시스템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도 새삼 느끼게 된다.



이렇게 새롭게 보고 듣고 생각하는 가운데 요즘 가장 많이 생각나는 것은 역설적으로 사회생활을 할 권리이다. 얼마전 여기에서 만난 나보다 조금 나이가 많은 미국 친구는 정년 퇴직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은퇴 시간이 딱 정해져 있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아.

그렇게 은퇴한 뒤 하루종일 방에서 넷플렉스를 보면 행복할까?"


"나의 삼촌은 90살까지 일을 했는데, 동남아에 공장이 몇 개나 있는 부자였어. 삼촌이 돈 때문에 일을 한 건 아니야. 내가 살아있다라는 젊은 느낌이 일을 하는데 참여하면서 나오기 때문에 했던 거야"



이렇게 말하는 그의 말을 듣다보니 영미권의 사회는 취업에 나이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 다시 보인다. 우리와 다르게 나이에서 나오는  위계 문화가 없기 때문에 나이 어린 매니저 밑에서 나이 많은 사람이 일하는 것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사회생활은 생물학적인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공적인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영미권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언어를 발판으로 세계 곳곳에서도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다. 우리는 선진국의 연금 덕에 들이 여유로운 생활을 한다고 생각을 한다.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그렇지 않기도 하다. 여기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일을 고통스러운 것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공간이라는 틀안에서 활동하는 기회로 보고 있다. 돈을 쌓아서 도달하는 지점으로 은퇴를  보는 관점과는 결이 조금 다른 것 같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그리고 사회과학의 박사과정이 혼자서 책을 읽고 고민하는 시간이 아무래도 많다보니, 역설적으로 희노애락의 도가니였던 직장생활과, 너무 많았던 회식자리들이 자주 생각이 난다.


현직에 있을 때는 지친 상태에서 줄줄이 오는 사회활동이 부담스럽고 편하지 않았으나, 이곳에서 생활 하면서, 또 여행의 한 형태로서 공부를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은퇴라는 것에 대한 생각이 조금 더 다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은퇴에 대한 개념이 다양하면 은퇴의 형태도 다양할 수 밖에 없다.


회사생활은 분명 많은 스트레스를 준다.

하지만 대부분  마음 맞는 동료 몇은 있을 것이다.

일을 그만둘 분들이 계시다면, 회사 생활을 하는 동안 사회 생활을 할 권리를 소중하게 누리시라는 조언을 꼭 드리고 싶다.


은퇴의 가장 큰 고민이 아무래도 먹고사는 문제이기 때문에 가려져 있지만, 동료와 함께 생활 할 수 있는 권리는 사회에 참여하지 않았을 때에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조기에 은퇴를 생각한다면 그 점은 의외로 클 수가 있다.


우리가 더 자유롭기 위해서

나이로 무엇인가를 제약하는 사회시스템과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은 바뀌어 나갔으면 좋겠다.


중년의 은퇴와 도전은 경제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회권의 관점에서도 중요하다.


여기 생활은 이렇게 정신 없지만,

이렇게 다시 오늘도 살아졌다.

내일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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