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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대의 반란 Jun 01. 2019

영국 사회과학 세미나

두 번의 험한 꼴과 영국교육


설렘을 가득 안고 들어간 수업. 

영국의 수업은 특이하게 교수님이 강의를 한 시간하면 별도의 시간에 소그룹으로 분반되어 교수님 혹은 다른 강사님의 지도하에 토론을 하는 세미나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영국 교육은 자기 주도학습을  강조하는 시스템이라 숨가쁘게 지식을 전달하려 하지 않는다. 어떤 지식의 습득 정도를 시험이나 퀴즈 혹은 기타의 방식으로 확인하려 들기 보다는 읽어야 할 책들과 논문들을 알려주고,  세미나에서 수없이 의견 충돌을 하면서 자기 생각을 완성해 가는 데 수업은 맞춰져 있었다. 


이런 방식임을 전혀  몰랐던 나는 한국적 습성을 갖고 수업에 들어갔다. 


'나는 나이도 있으니 교수님들이 좀 봐 주시겠지. 한국에서 두 번의 대학원을 다닐 때도 그랬잖아'


'명색이 대한민국 대표 언론사에 있었는데 어린 학생들과의 토론이 의미가 있을까'



사실 학기와 동시에 가족들이 올 집을 알아보고 다녔던 나는 몇 주간의 세미나를 제대로 준비할 여력이 없었다. 그냥 그렇게 몸만 가서 앉아 있으려고 했다. 교수님은 그런 나를 계속 주시했고, 나는 그것이 배려의 눈빛인 줄 알았다.


3주 째 되는 어느 세미나에서 교수님이 이런 저런 학생들의 주장과 설전을 듣다가 갑자기 나에게 말한다.


"양 쪽의 주장을 요약해서 이야기해보고 본인의 의견을 말해보세요"


머리속이 하얀 도화지 같다. 그렇게 처음 나에게 놀랐다. 기계적인 중립에 익숙해진 나에게 '의견'이란게 없었다. 그날 오랜만에 느껴보는 굴욕감 뒤에 나는 다시 내가 버려야할 생물학적인 나로 돌아가있었다. 


'아 챙피하다. 저 교수 알고보니 나랑 동갑인데 너무 하는 거 아냐!   그래 두고 보자' 


그렇게 나는 리딩 리스트의 논문들과 책들을 모조리 읽고 노트에 빼곡히 정리했다. 그리고 다음 세미나에서 

보란 듯이 그것들을 정리해서 말했다.


"그 문제에는 두 가지 상반된 의견이 있어. A란 학자는 그 중 이런 의견이었어. 블라블라. B란 학자의 의견은 그것의 대척점에 있어. 블라블라. A는 이런 문제가 있고 B는 이런 문제가 있는 거 같아."


말을 다 듣던 교수님이 다시 질문을 한다.


"그래서 본인의 의견은 어떻다는 거죠?" 


"제가 말하지 않았나요? A는 이런 점에서 문제있고, B와는 그 지점에서 다르다는게 제 생각이라고"


"그래서 본인의 의견을 말해주시겠어요?"


한국에서도 대학원을 두 번이나 다녀봤지만, 정보를 잘 정리하는 것에 후한 평가를 받았던 한국의 학풍과  영국 교육은 말그대로 대척점에 있었다. 


세미나는 그렇게 다른 의견들을 충돌시키고 본인의 생각을 찾아가는 공간이었다. 그건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런던정경대(LSE)에는  매주 유명한 정치인 학자들의 특강이 열렸는데 그만큼이나 저명한 교수들도 자기와 생각이 다른 경우 Q&A 세션에서 학생들 옆에서 같이 손을 들고 실랄하게 그들을 비판했다. 이런 모양은 우리나라  학교에선 보지 못했던 풍경이라 신기하기  조차 했다.   


한번은 제일 좋아하는 교수님이 마련한 다큐멘터리 상영회 및 토론 세션에 초대받고 가서 그곳에 참석한 감독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고 왔는데, 그날 밤 교수님이 보낸 메일을 받았다. 


"너는 작품을 어떻게 봤니? 문제점이 없다고 생각해? 왜 Q&A 세션에 질문을 하지 않았어?"


사실 아프리카에 들어가 주민들과 충분한 시간, 교감해서 만들어 온 참여적 제작방식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크게 흠잡고 싶지도 않았고, 가장 좋아하는 교수님이 모신 분이니 더욱 더 그러했다.


"교수님의 지인 분이라서 제가 비판하는 모양새는 좋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나는 다시 생물학적이고 1차원적인 사고로 돌아가 있었다. 


'의견이 다르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거야. 너가 그렇게 포기하면 결국 세상의 의견들은 건강함을 잃게 돼. 민주주의는 원래 분쟁적인 거야'


한국의 주입식 교육을  벗어나는데에는 두번의 망신이 필요했다. 내가 하던 커리어 만큼 또 내가 먹은 나이많큼 대접을 원했던 나는 그렇게 껍질을 벗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영국의 교육이 상상력과 고유한 사고(Originality)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것은 시간이 더 지난 뒤 알 수 있었다. 



마지막 논문을 쓸 때는 그래서 선행연구가 있던 모든 주제를 지워버렸다. 한국에서 권장받던 논문작성법과는 정반대의 방식이었다. 거기에는 훨씬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그렇게 나의 논문은 우수논문으로 선정되서 학교의 홈페이지에 출판되었다. 사십대의 무모한 도전은 나를 그렇게 깨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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