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후드 영화
현실을 즐기라고!
현실을 즐겨라, 카르페디엠
그러나 후폭풍 감당 못하는 즐김은 반드시 무서운 책임으로 돌아온다는 사실도 명심하라.
보이후드를 통해 본 삶의 성장과 선택
보이후드는 단순한 성장 영화가 아니다. 12년간 같은 배우들이 촬영한 이 영화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하는 삶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어릴 적 꼬마 주인공은 정말 성인이 될 때까지 두 시간 반안에 볼 수 있다. 미국의 한 가정 안에서 가족 모두의 성장기를 영화로 만들었고 어쩌면 지루할 수 있다면 지루할 수 있다. 다만 나에게 이 영화는 인생에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인가 적어도 길을 제시한 영화이다. 워낙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인간 본질에 대한 질문이 들어있는 영화이기에 다시 한번 찾아보게 된다.
7년 전에 처음 보고 이번에 다시 보게 된 계기는 나의 자녀들이 내가 만들어낸 둥지에서 드디어 벗어나 훨훨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자녀의 시점에서 한 번은 볼만한 점. 또 부모의 시점에서 한 번은 볼만한 그래서 누구에게 이입하여 생각하냐에 따라 달리 보이는 스토리이다.
영화 속 엄마와 아빠는 너무 이른 나이에 일찍이 부모가 되어버렸다. 미숙한 상태에서 아이 둘을 감당을 못한 아빠와 함께 살 수 없었던 엄마는 이혼을 한다. 아빠는 알래스카로 떠나버렸고 엄마는 어린 남매(사만다와 메이슨)를 키우며 일을 하고 애인도 사귀었다.
하지만 애인과 시간을 좀처럼 낼 수 없었던 탓에 그만 헤어지게 되고 엄마는 보다 나은 직업을 얻기 위해 대학을 진학하기로 한다. 그리고 아이 둘을 맡길 수 있는 친정엄마 근처로 이사를 간다.
엄마는 평생 서빙 같은 일로 살아갈 수없다는 것을 파악하고 다른 세계의 문으로 박차고 들어간다.
이와 비슷한 현실의 사례가 있다. 내 지인 보영 씨의 이야기이다.
보영이는 둘째를 임신한 상태에서 이혼을 했고, 빈털터리로 친정집에 들어갔다. 부모는 그녀를 구박했지만 거리에서 생활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녀에게 남은 선택지는 부모집뿐이었다. 어느 날 그녀가 이혼을 하고 나에게 조언을 구하러 왔을 때 나는 그녀에게 무조건 대학을 진학하라고 권유했다. 당장은 보영이가 젊고 아름답기 때문에 일자리를 구할 수 있겠지만 그녀의 약점은 평생 일할 기술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를 어릴 때부터 보았기 때문에 그녀의 결핍을 바로 간파할 수 있었다. 그녀의 근본 원인은 결핍에서 시작되었다. 결핍을 충족하고자 남자를 의지했고 너무 어린 나이의 판단은 미숙하기 그지없었다. 사랑으로 모든 것을 헤쳐나갈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으로 남자의 문제를 외면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결국 감당할 수 없는 문제들이 쏟아지며 이혼에 이르게 되었다.
보영이를 보면 사람의 의지만으로 되는 일이 있지만 되지 않는 일도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녀는 끝까지 남자를 보듬고 갔을 것이다. 하지만 외부에 터진 문제들은 둘을 자연스럽게 갈라놓았다. 그녀의 선택의 결핍은 결국 그렇게 외부에 의해 선택을 강요당하게 된다.
그런 그녀가 다시 시작하려고 나에게 왔을 때 나는 그녀에게 보다 나은 직업을 구해야 늙어서까지 벌어먹고 살 수 있지 않느냐고 조언을 했다. 당장 그녀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한시라도 젊을 때 고졸 출신 보영이가 대학에 들어가길 나는 진심으로 바랐다. 보영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국비로 지원하는 학원에 다니면서 작은 자격증에 도전을 하고 그 뒤에 운전면허증을 따보라고 했다.
아이 둘은 어린이집에 맡기고 그녀는 정말 내 조언대로 착착 일을 진행했다. 컴활 자격증을 따고 인간이라면 운전을 해서 도구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말도 빼먹지 않고 기억해 두었다고 하며 면허증을 취득했다.
또한 대학의 문은 항상 열려있어 보영이가 그전에 사회생활했던 이력이 특차모집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고 그녀는 그렇게 3년제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사실 주변에서는 보영이를 재가하려고 안달이었다. 애 둘 있는 홀아비나 나이 많은 총각에게 시집을 보내려는 주선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나는 보영이에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으면 가고 그렇지 않고 온전히 내 삶을 살고 싶다면 타인을 의지하는 마음을 버리라고 했다. 또 대학을 들어간다 하니 부모입장에서는 이혼하고 한 푼도 없이 쫓겨나 혹까지 붙이고 온 딸에 대한 원망도 대단해서 직장을 얻지 않는 것부터 거센 반대에 부딪쳐야 했다.
하지만 보영은 감당해야 했다.
영화에서도 젊은 부부가 피임을 하지 못한 채 감당 못한 책임이 생겨버렸고 남자는 떠나고 여자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힘든 길을 가게 된 것이다. 보영 역시 한 번의 실수가 큰 책임을 가져온다는 것을 겪었기에 그녀는 이 바닥을 탈출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당연히 감당해야 했다.
보영은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학업과 생활을 병행했다. 영화의 엄마도 대학을 졸업하고 교수직을 얻었고 보영도 장학금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꽤 오래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을 얻었다. 인간은 돈의 노예이다. 삼 년 지난 후 보영은 학점은행제를 통해 마지막으로 학사 졸업장을 땄다. 그리고 바로 취업을 하니 부모는 그녀의 생활비에 드디어 침묵을 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락한 집에서 잘 자랐다. 나처럼 부모가 개성 있어서 일관성 없이 휘둘린 채 자라온 아이들과 비교하면 보영이네 집은 매일매일의 같은 일상이 반복되지만 누구보다 정서적으로 성숙한 아이로 성장하였다.
영화 속에 메이슨집은 주말마다 이혼한 아빠가 아이들을 데리고 캠핑과 오락을 즐긴다. 이 지속되고 반복적인 패턴은 아이들이 성장할 때마다 필요한 고민과 조언이 적재적소에 들어간다.
보영이네 집은 무미건조하고 생활이 단조롭지만 규칙적으로 일관성 있는 삶을 유지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성장할 때마다 다가오는 위기들도 주변의 가족들의 도움과 친구의 도움으로 헤쳐나간다.
다시 보이후드 영화 속으로 들어가자.
엄마는 아이들이 하나둘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삶의 허무함을 느낀다. 아이들이 어릴 땐 가지고 싶은 것이 많았다. 그리하여 무작정 앞만 보며 일과 사랑과 가정과 아이들을 생각하며 채우고 달려왔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두 번의 이혼과 자녀의 독립으로 아무것도 남겨진 게 없는 자신이었다.
엄마는 허무함을 느끼며 뭐가 더 있을 것만 같았는데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다며 허탈해한다.
그녀가 지나온 자리가 결코 잘못된 길을 간 것이 아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부분, 허무함은 목적이 상실되었을 때 누구에게나 온다. 아마도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겠지만 엄마는 또 다른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다만 그 순간순간 엄마의 삶은 찬란했고 열정이었고 눈부시게 빛난 것은 확실하다.
영화의 인상 깊은 대사에 주목해 보자.
메이슨은 여자친구 시나와 헤어지고 나서 많은 상실감으로 아빠와의 만남에도 기가 죽어있다.
보다 못한 아빠가 아들에게 조언을 한다.
사람은 늘 변한다. 젊어서는 특히 같은 길로 가기 어렵다. 그것은 젊었을 때 사랑도 마찬가지다.
“시나에게 네 자존감을 빼기지 말란 말이야. 아들아. 네가 책임져야 할 것은 너야. 여자 친구도 엄마도 아빠도 아닌 바로 너, 네가 너 자신을 아끼면 시나 같은 여자애들이 네 앞에 줄을 설 거다. 그러니 딴 애들과 너 자신을 구별하고 차별해야 해. 특출한 거 하나만 있어도 딴 놈 제치고 네가 최고의 여자를 만날 수 있어. ”
“아빠, 그래봤자 무슨 의미가 있어요? " 메이슨은 아빠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이혼한 아빠의 모습을 보니 한숨을 쉰다.
“무슨 의미가 있다니? 그 답을 아는 사람은 없어. 그냥 최선을 다 할 뿐이지.”
이는 보영에게도 선택과 일맥상통한다. 보영이 사회적인 편견과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학을 간 것은 자신에게 집중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영화 속 배관공의 이야기도 비슷한 맥락에서 보면 의미가 같다.
메이슨 엄마는 대저택으로 이사를 왔고 집의 곳곳에 수리를 하고 있었다. 외노자 배관공은 서툰 영어로 배관 수리를 진행하고 대화가 미숙하더라도 영민함을 느낀 엄마가 배관공에게 조언을 한다.
“똑똑한 거 같으니 대학을 가보세요.”
“하지만 공부하기엔 일하느라 시간이 안 돼요.”
“야간 공립대에 가면 되죠. 학비도 싸요."
후에 시간이 흘러 엄마와 사만다, 메이슨이 한 레스토랑에 도착한다.
마침 레스토랑의 매니저가 다가와서 인사를 한다.
“부인 안녕하세요. 이 식당의 매니저입니다. 예전에 부인의 집에 배관공사를 한 적이 있었죠.”
엄마는 기억을 찾은 듯 눈빛이 선명해졌다.
“그때 제 인생을 바꿔주셨어요. 똑똑하니까 공부를 더 해보라고 하셨죠. 그래서 영어학원을 다녔고 2년제 대학을 나온 뒤에 지금은 텍사스 주립대에 다니고 있어요. 여기 매니저로 일하면서요.
언제가 인사를 드리고 싶었는데 그때 정말 감사했어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오늘 이 식사는 답례로 제가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
배관공은 엄마의 조언을 듣고 실행에 옮겼다.
삶이란 실수와 선택의 연속이다. 누구나 실수가 있고 그것을 헤쳐나가면서 성장해 간다.
우리는 함부로 그녀들이 실패한 인생이라고 할 수가 없다.
남들은 그 순간만을 보며 손가락질을 하고 실패한 인생이라고 되려 낙인을 찍는다.
살아가면서 넘어지고 실수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중요한 건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는가이다.
인생은 준비가 없이 닥친 사건들이 어마어마한 책임을 부여한다는 것을 왜 경험하고 나서야 깨닫는 것일까?
찰리멍거가 하는 말이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려고 하지 마십시오. 드라마나 영화 책으로 겪는 간접경험들을 최소한 겪으세요. 그러면 당신은 누구보다 빠르게 불행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위기는 예상할 수 있지만 갑자기 다가오는 위기에는 약하다. 그렇다고 함부로 남의 인생을 속단하듯 결정하는 것도 위험하다.
메이슨의 엄마는 자녀들이 독립하고 나서야 비로소 허무함을 느꼈다. 앞으로 홀로 남겨진 그녀를 위해 아이들을 독립을 시켜며 본인도 자립할 준비를 한다.
영화에선 남겨진 엄마의 허무함을 조명하며 결국 인간은 스스로의 등불을 믿고 나아가야 함을 보여주며 일일이 의미를 새기지 말고 현실에 충실하면서 살아가자고 하는 것 같다.
꽤 오랫동안 시끌벅적하고 소란스럽고 분노를 하며 살던 우리 집이 꽤 조용해졌다.
아이들이 독립해서 떠났기 때문이다. 집에 남겨진 것은 작은 강아지 한 마리와 나뿐이다.
갑자기 둥지를 떠난 아이들의 빈자리가 커 보인다.
이제는 이 허무한 감정을 이기고 앞으로의 내 삶에 집중할 때다.
나이 들면 사라지는 열정을 다시 찾아봐야 할 것이고 아이들은 아이들의 열정대로 나아가기 바쁠 것이다. 삶은 완벽하지 않지만, 우리는 선택과 실천을 통해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다.
삶은 우리가 선택하는 순간순간으로 이루어진다. 영화 속 엄마도, 보영이도, 그리고 나도 각자의 방식으로 길을 찾아가고 있다. 중요한 건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 선택하며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답이 없더라도 오늘을 최선을 다하면 된다.
무거운 책임감이 무엇인지를 알고 위기에 대응하면서 그렇게 지혜롭게 살길 늘 기도한다.
영화의 말미에 메이슨과의 대사로 마무리한다.
"흔히들 이런 말을 하지. 이 순간을 붙잡으라고, 하지만 난 거꾸로 말할래. 이 순간이 우리를 붙잡는 거라고."
"맞아. 시간은 영원한 거지만 순간이란 것은 늘 지금을 말하는 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