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드라 블록 주연의 영화 프러포즈는 커리어우먼으로서 살아가는 한 여성의 일과 삶을 보여준다. 영화의 도입부에서부터 그녀가 얼마나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고 있는지 드러난다.
어릴 적 미국 영화를 보며 선진 문화를 동경했던 기억이 난다. 영화 속 여성들은 이른 아침 운동을 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커피를 마시며 출근했다. 능력 있고 주체적인 그들의 모습이 멋있어 보였고,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 우리 사회에서는 운동의 중요성이 지금처럼 알려지지 않았다. 내 부모 세대에게 운동은 사치였고, 하루 종일 일만 해도 몸은 저절로 닳아 없어질 것이니 따로 운동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강했다.
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은 정보화 시대의 도래와 함께 생활 방식이 급격히 변화하던 시기였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적게 움직이게 되었다. 농업과 제조업 중심의 산업 사회에서 벗어나 사무직과 기술 기반의 직업이 늘어나면서 신체 활동이 줄어들었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운동해야 한다는 개념이 조금씩 자리 잡기 시작했다.
변화의 흐름 속에서 나는 이십 대에 수영을 등록했다. 하지만 어르신들은 ‘평소에 열심히 움직이고 살면 따로 운동할 필요가 없다”며 돈과 시간을 낭비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었을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익숙한 것을 유지하려 하고, 새로운 것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법이다.
대학생이 되면서 이미 고정관념이 깨지고 있는 나에게 어르신들의 말이 들리지 않았고 마음만 상했다. 당시에 이소라 다이어트 비디오, 클라우디아 쉬퍼, 신디 크로포드, 마일리 사이러스 등의 해외 다이어트 영상이 유행했고, 많은 사람들이 좁은 방에서라도 따라 하려 애썼다. 다만 그 동기는 건강보다는 “마름”에 대한 강박이 컸다. (처음 계기는 건강과 상관없었으나 결국엔 건강을 목표로 수정된다.)
나도 그 영향을 받아 다양한 운동을 시도했다. 헬스클럽에서 주 2~3회 운동을 하고 줌바댄스, 스쿼시, 수영, 러닝, 골프까지 배웠다. 하지만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맨몸운동이었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혼자서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이 나에게 맞았다. 늘 다양한 운동을 시도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지속성이라는 걸 깨달았다. 잘해야 한다거나 결석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고 그저 계속해 보자는 마음으로 최소 6개월씩 강습을 들었다.
이런 나의 성향을 보면 엄마의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1940년대 중반에 태어났다. 가난한 집의 장녀로 정규교육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엄마가 학교 입학할 때쯤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졸지에 가장이 되어버린 외조모를 대신하여 업둥이를 키우며 가정을 돌봤다. 그러므로 엄마에겐 당연히 또래의 친구들을 사귈 틈이 없었다. 나뭇가지로 글자를 써가며 익힌 한글로 까막눈인 외조모의 곁에서 눈이 되어주었다. 그런 엄마는 스스로 해답을 찾고 구하는 타입이었다. 일상에 모든 에너지를 일과 집안 살림으로 쏟아부어가면서도 틈틈이 저녁이면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뛰러 나갔다. 친구가 많지 않았던 엄마는 전봇대에 붙어있던 산악회 모집 광고를 보고 주말 산행을 위해 버스에 올라탔다. 그렇게 전국의 산에 오르며 스스로의 건강에 대한 여정을 만들어 갔다.
그런 엄마가 팔순이 되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아령을 들고, 자전거를 타고, 학교 운동장을 걷고, 요양보호사로 일한다. 엄마의 삶을 보며 새삼 엄마처럼만 늙어간다면 좋겠다고 깨닫는다.
건강에 대한 신념은 저마다 다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함부로 건강에 대해 말하기가 어렵다. 어떤 운동이 나에게 맞고 나에게 해로울 수 있는지 사람마다 배경지식과 건강상태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어떤 것이 정답이다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각자 자기만의 방식을 찾기 위해 이것저것 시도를 해야 한다.
처음에는 어렵고 하기가 싫다. 그런데 그 반복을 여러 번 하다 보면 조금 더 오래 버틸 수 있고 또 그만두더라도 다음에 다시 돌아오면 그전보다 훨씬 나아진 나를 발견한다.
운동을 하면 얼마나 오래 살려고 그러나? 하며 주변사람들은 핀잔을 주기도 하고 운동하다 빨리 죽는다는 어이없는 소리도 듣기도 한다. 그때는 나는 오래 살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운동을 하면 체력이 생기니까 활력 있게 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건강에 관련된 책을 읽고 엄마의 삶에 운동이 어떻게 건강에 영향을 줬는지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참고한 책은 질병해방 -피터 아티아, 빌 기퍼드
나는 링 위에서 싸워본 적이 없다. 나는 언제나 준비해서 이겼다. -무하마드 알리
운동과 장수의 연관성은 이미 많은 연구로 알려졌다.
심폐 체력, 즉 유산소운동부터 보자면 산소를 근육으로 효율적으로 전달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러니까 장거리 뛰고 걷고 달리고 수영하고는 순전히 그 산소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근육이 흡수하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체력을 키우고 싶으면 유산소 운동을 하라는 말이 있다.
소파에서 쉬고 있을 때 필요한 산소량과 전력질주의 산소량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산소섭취량이 올라갈수록 더 빨리, 더 오래 활동을 지속할 수 있다. 이 수치가 운동만 관련 있는 것이 아니고 장수와 상관 관계있다는 것도 알았다. 체력이 가장 좋은 사람들이 사망률이 가장 낮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최대 산소 섭취량은 운동으로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니 체력은 우리 마음먹기에 따라 달려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근육도 장수와 상관관계도 무시할 수 없다.
연구에 따르면 근육빵빵이(벌크업)가 아니라 근력, 힘을 내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한다.
노화의 주된 증표 중 하나는 신체 능력이 쇠약해지는데 비교적 60대 전까지는 잘 못 느끼다가 그 이후 80대까지는 무려 근육이 8kg이 평균적으로 빠진다고 한다. (미국기준)
그러나 엄마처럼 평소 더 높은 활동 수준을 유지하는 사람은 훨씬 덜, 즉 평균 3~4kg만 잃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활동을 덜 하는 사람은 근육이 더 약할 것이고, 근육이 약한 사람은 활동을 덜 할 것이기 때문에 지속되는 근육 감소와 비활동은 말 그대로 우리 삶을 위험에 빠뜨린다.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우리는 뼈를 둘러싼 근육으로 우리 몸을 유지한다. 근육이 많을수록 온갖 문제로부터 몸을 보호한다. 심지어 수술 뒤 후유증까지 막아준다. 낙상 역시 노인에게 위협적인데 근육량이 더 많은 사람은 넘어져서 다칠 가능성이 더 적으며, 균형감각이 좋거나 몸 지각이 더 뛰어나다고 해서 잘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근육량을 유지하기 더 쉬울 것이다.
그러므로 최대 산소 섭취량과 근육량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일상에서 모든 유형의 사망 위험을 줄이는데 운동만큼 강력한 도구를 찾아볼 수 없다.
다시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젊은 사람들은 아직 건강하니까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운동을 하면 사실은 나이가 들어서도 인지능력과 정신과 신체가 아주 좋아지고 기능적으로 떨어지지 않게 한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은 영원히 젊음을 유지할 것처럼 젊을 땐 운동이라는 것을 잘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인다.
안타까운 것은 운동스킬은 젊을 때 배울수록 유리하다.
노인이 되어서는 자전거를 새로 배우기가 버겁고, 수영을 배울 때도 처음에는 물의 저항과도 싸워야 하기 때문에 젊을 때보다 더 많이 포기한다.
노인들은 차라리 안 움직이는 것을 선택한다. 덜 움직이고 가만가만 다니며 연골이 더 이상 닳아지지 않게 말이다. 그러다가 면역력이 약해져서 폐렴이 오고 이겨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러면 의사는 노인에게 근력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때서야 슬슬 공원밖으로 나가 체육기구를 만지며 어깨운동, 다리 운동, 유연성운동 등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하려고 한다.
반면 엄마를 보면 꾸준히 다양한 신체 활동과 러닝, 등산, 아령등으로 생활 운동을 가볍게 했다. 생활 근육이 촘촘히 있어서 폐렴에 걸리거나 병원에 입원한 적이 없다. 유전이나 천운이 엄마에게 갔을 수도 있다.
요즘 같은 정보가 친절한 시대에 책을 찾아보니 과연 건강과 운동이 어떻게 관련이 되어있는지 데이터로 보여주고 있으니 엄마가 살아가는 방식이 제대로 가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운동을 제대로 배워야 부상 없이 꾸준히 할 수 있다. 만약 나이 들어서 수영을 입문했는데 회전근개의 인대손상과 허리 디스크 악화가 온다면 이미 그 사람은 재활운동으로 시작했어야 한다.
이 말은 아프기 전에 하루라도 건강할 때 제대로 된 강습을 배우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우리는 때론 재활과 운동을 헷갈려할 때가 있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이다. 물론 주변에 심심찮게 운동중독자들을 보지만 대부분 운동이 재밌다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일주일에 몇 번 규칙적으로 한다는 것이 매우 끈기를 요구하는 일이다. 재밌으니까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세운 목표만큼 조금씩 하다 보면 더 큰 목표가 생기고 없던 인내심도 서서히 고개를 든다.
거창하게 할 필요 없고 유산소 기본, 무산소 기본으로 비싼 돈 들이지 않아도 일상에서 쉽게 찾아서 할 수 있다.
80세인 엄마를 보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 외모로 치장하고 보이는 젊음이 아니라 자세를 보면 더 활력 있고 태가 단정한 사람들이 오히려 동안으로 보인다. 그런 사람들은 코어가 몸통을 지탱해 주어서 자세가 곧고 어깨가 균형 있다. 젊은 사람과 차이는 바로 자세에 있다. 중년의 사람들이 왜 중년인지 사진 찍어보면 안다. 등을 기대어 있고 자기 몸을 혼자 지탱을 못하니 배를 앞으로 내밀고 비뚜름한 자세로 어정쩡하게 있기 때문이다.
운동에 정착하지 못해 이리저리 방황했던 젊은 내가 있었기에 오늘날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이 생긴 것처럼 일단 운동 경험이 누적이 되어야 나만의 운동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나는 젊은 우리 아이들이 빨리 이것저것 신체 운동(physical exercise) 말 그대로 맨몸 운동에 도전을 하면 좋겠다.
무심한 우리 아이들이 운동이 중요함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 걱정이 들면서 언젠가는 알아주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