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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법정에 서다

속도위반 티켓 때문에 법정에 서다

by 숲속다리

이민 초창기 일이다. 볼 일이 있어 토론토 다운타운에서 운전하다가 신호위반 티켓을 받았다. 갑자기 뒤쪽에서 경찰차가 나타나 나에게 뭐라고 말하고 신호 위반 티켓을 주고 가버렸다. 전에 한두 번 주차위반 티켓 때문에 벌금을 낸 적이 있지만, 신호위반 티켓의 벌금은 그에 비해 금액도 크고 벌점도 있어, 곧바로 벌금을 납부하기가 망설여졌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과 상의해 보니, 법정에 가면 벌금도 감면해 주고 때론 무효처리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믿고, 시청에서 법정 출석 신청과 함께 한국어 통역 서비스도 신청했다.


그리고 1년이 훌쩍 지난 뒤, 출석 날짜 통지를 받았다. 하루 휴가를 내고 통지서에 적힌 주소로 일찌감치 출발했다. 구 토론토 시청 건물이었고, 들어갈 때 간단한 몸수색을 받았다. 3층으로 올라가니,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법정에 들어가기 위해, 문 앞에서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그 옆에 앉아 기다리고 있으니, 한국어 통역사가 잠시 후 나타났고, 그로부터 법정 안에서 지켜야 할 몇 가지 주의사항을 들었다. 의자에 앉아, 시간이 되어 법정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법정 문 앞에 테이블이 놓여있고 한 사람이 앉아 뭐라고 외치고 있었다. 통역사에게 물어보니, 앉아있는 사람이 검사이고, 법정이 열리기 전, 검사에게 위반사실을 인정하하면, 검사가 벌금 감면과 함께 벌점을 없애주고, 재판 없이 곧바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통상 벌금을 절반 정도 줄여주는데, 재판의 효율성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고 했다. 나는 끝까지 가고 싶은 마음에 재판이 열릴 때까지 기다렸다.


검사와 합의하지 않고, 나처럼 재판을 받기 위해 남은 사람들이 많았다. 재판정 안에 들어가자마자, 우선 증인석에 티켓을 발부한 경찰관이 왔는지부터 확인했다. 오늘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동일한 경찰관으로부터 티켓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만약 그 경찰관이 무슨 이유이든 출석하지 않으면, 오늘 출석한 모든 사람들의 티켓은 무효가 되기 때문이다. 나의 기대를 저버리고, 그 경찰관은 증인석에 앉아있었다. 이름을 부르는 대로 한 사람씩 나와, 판사 앞에 서고, 옆에서 검사가 그 사람의 위반사실에 대해 말하고, 판사는 그 사실이 맞는지 피고인에게 묻고, 피고인이 그 사실에 대해 예 혹은 아니오로 답한 뒤, 자신이 판사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고, 판사가 선고를 내리면 끝이었다. 내 차례가 되어, 나와 통역사도 판사 앞에 나란히 서고, 판사가 질문하고, 통역사가 내게 통역해 주고, 내가 답하고, 통역사가 그 내용을 판사에게 전달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그런데, 판결을 받기 전 재판 도중에, 나와 통역사는 법정 밖으로 나가야 했다. 어리둥절하고 당황해서 내가 통역사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재판장이 판단하기에, 자신의 질문이 통역사를 통해 피고인에게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다고 여겨, 일단 재판을 중단하고, 다른 재판을 다 끝낸 후, 나의 재판을 다시 이어간다고 했다. 예를 들면, 내게 교통신호를 보지 못했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며 예라고 대답했고, 통역사는 내가 못 봤다고 통역했고, 그 말을 들은 판사는, 내가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면 긍정의 의미, 즉 봤다는 뜻인데, 통역사는 못 봤다고 통역하니, 뭔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꼼짝없이 재판이 끝날 때까지 문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한참을 기다리자, 문 밖으로 누군가 나와, 통역사에게 뭐라고 말한 뒤 다시 들어갔다. 그러자, 통역사가 내게 말했다. 오늘의 재판은 모두 끝났고, 재판장은 퇴근했고, 오늘 더 이상의 재판은 없으니, 나의 건은 무효처리가 되어, 그냥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고. 다시 말해, 나는 무죄판결을 받은 것이다. 통역사는 나에게 축하한다는 빈말을 남기고, 똥 씹은 얼굴로 휑 뒤돌아 가버렸다. 나는 너무 기쁘고 놀라, 이 일을 한동안 무용담처럼 주위사람들에 떠들고 다녔다. 그리고, 혹시 비싼 티켓을 받으면, 한 번쯤 법정출석 신청을 하도록 권장했다. 왜냐하면, 법정에 서지 않고 단지 검사와 사전 합의만 해도, 벌점을 없애고 벌금도 줄일 수 있으니까. 법정에 서는 것은 두렵고 번거롭지만, 일단 부딪쳐보면 좋은 경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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