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의 삶이 힘든 이유
이민 초기,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모이면, 우스갯소리로 서로 공감하던 말이 있다.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 제일 미운 놈을 찾아가서 이민 오라고 꼬드기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중 혹시 누군가 이민 간다고 하면, 도시락 싸고 쫓아다니며 말릴 거야라고. 다들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기억이 있다. 이민생활이 실제로 어떤 것인지 알았다면, 나는 절대 이민 갈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그 당시 내가 이민을 가려던 이유 중 하나가 결국 현실도피였다는 사실을 이곳에 와서 깨달았다. 그 당시 나의 현실이 무척 답답했고, 돌파구로 이민을 선택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롭게 시작하면, 무언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으리란 막연한 확신이 있었다. 이민의 힘든 현실에 부딪친후, 그런 환상은 곧바로 사그라들고, 매일 감당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들로 지쳐갔다. 그럼에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결심은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 삶에서 느낀 답답함과 어려움이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집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 나가도 새기 마련이다.
자신이 수십 년 살던 도시를 떠나, 시골로 이사를 간 경우를 생각해 보자. 아무도 나를 아는 사람이 없고, 환경도 완전히 다르다. 시골 공기의 신선함과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행복감으로 느껴지는 것은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진다. 시골에서 자신이 먹고 살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농사를 지을 줄도 모르고, 친절해 보이던 이웃 주민들도 시간이 지나자, 나를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본다.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하지만, 적어도 시골에서는 내가 정착의지만 있다면, 말이라도 통하니 알아보고 개척할 수 있다. 외국은 그렇지 않다. 말도 안 통하고,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의욕만 앞설 뿐, 헤매고 또 헤맨다. 간혹, 주변에서 누군가 조언은 해줄지언정, 나와 가족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스스로 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난 이곳이 어떤 곳인지 정말 잘 모른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라면,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자연적으로 알게 된다. 말의 뉘앙스나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어떤 방향으로 살아야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는지 알게 된다. 반면, 이민생활이란 늘 어둠 속에서 길을 찾아 헤매는 과정의 연속이다. 내가 영어가 능통할지라도, 이곳에서 나고 자라지 않은 이상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아주 많다. 영원한 이방인이다. 이곳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았으니, 내 자녀가 이곳에서 어떻게 학교생활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 이곳에서 직장생활을 하지 않았으니, 직장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 아주 사소한 문제가 생겨도, 어떤 식으로 해결해야 하는지 모른다. 한마디로, 내가 지금 이곳에서 제대로 잘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지, 지금의 나의 삶의 방식이 맞는지 어떤지 모른다. 이곳의 법도 잘 모르니 사기를 당할 수도 있다. 남을 믿기가 힘들다. 나도 내가 잘 살고 있는지 모르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이래라저래라 충고 따윈 할 수 없다.
이민이란, 나의 삶의 전체가 송두리째 뽑혀, 전혀 새로운 땅에 심긴 것이다. 내가 스스로 죽을힘을 다해 살려고 버둥대지 않으면, 새로 심긴 땅에 적응하지 못하고 말라죽는다. 이곳에서 살며 종종 생각했던 것 중의 하나가, 내가 만약 이곳에서 하는 노력을 차라리 한국에서 했다면, 이곳에서처럼 치열하게 살았다면, 나는 분명 지금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 되었을 텐데. 이민이란, 내 어깨에 나와 가족의 모든 짐을 지고, 무슨 일이 내 앞에 닥치든 간에, 죽을힘을 다해 극복하고,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결심이 없다면, 하지 말아야 할 선택이다. 수없이 울고, 수없이 좌절하고, 그럼에도 매일 지친 몸을 일으켜, 삶의 전쟁터에 나아가야 하는 삶이 이민이다. 지금 내가 사는 곳을 천국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이 세상 어느 곳에도 내가 기대하는 그런 천국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