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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만남

만날 사람들과 만나기 싫은 사람들

by 숲속다리

한 해가 저물면 늘 그렇듯 연말 모임이 여기저기 생긴다. 내가 보고 싶어 먼저 연락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에게 만나고 싶다고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사람들도 있고, 내가 속해있는 모임들에서도 연말모임 연락이 온다. 물론, 눈 내리고 한 해가 저물면 불현듯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동안의 소식이 궁금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런저런 얘기 나누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동안 서로 연락이 없이 잊고 지냈는데, 뜬금없이 연말에 한번 만나자며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다. 딱히 만나고 싶지 않지만, 그동안의 관계를 생각하면, 딱 잘라 거절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좋겠는데, 굳이 보자고 한다.


여태까지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끊으며 지냈는데, 지속적으로 서로 연락하며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 서로 삶이 바빠 평소에 자주 만나지 못하지만, 만날 때마다 반갑고 즐겁고 편한 사람들. 내 마음속을 기꺼이 열고, 솔직하게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내 속 깊은 얘기를 상대방에게 기꺼이 하고, 상대방의 속 깊은 얘기를 내가 아무런 판단 없이 들으며 공감해 주는 사이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올 한 해도 행복하게 마무리하고, 내년도 힘차게 시작할 수 있는 원동력을 얻는다. 연말이 되면,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먼저 전화해 만날 약속을 잡는다. 크리스마스나 새해엔 그런 사람들을 만난다.


내가 별로 만나고 싶지 않거나, 내가 괴롭고 힘든 시간을 보낼 것 같은 만남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만날 수없어 미안하다고 말한다. 나중에 만나자고 한다. 그런 사람 대부분은 그저 만남 자체를 좋아하지만, 주위에 같이 할 친구가 없어, 평소에 알고 있는 사람을 하나씩 연락해 보는 것이다. 그러다 한 명 걸리면, 자신의 이야기를 잔뜩 떠들고 싶은 것이다. 누군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호응해 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굳이 참석하고 싶지 않지만, 참석해야 하는 모임이 있다. 내가 책임을 맡고 있거나, 참석하지 않으면 쓸데없이 오해를 받을만한 모임엔, 부득이한 사정이 생기지 않은 이상 참석해야 한다. 어느 정도 소속감과 책임감을 보여줘야 하는 모임이기 때문이다. 피곤하고 부담스러운 모임이지만, 모임 자체보다 그 모임에 참석하는 한두 명과의 관계 때문에 참석하는 모임이다.


처음 이민 올 땐 최소한의 인간관계를 만들며 살겠다고 결심했지만, 주위로부터 이런저런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다 보니, 점점 늘어나는 인간관계를 줄이기 힘들어져, 결국 연말연시가 되면 누굴 만나고 어떤 모임을 참석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게 돼버렸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어쩔 수 없이 인간관계가 점점 늘어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만 늘리려 노력한다면, 언젠가 내 주위에 좋은 사람들로만 가득 차겠지 하는 생각으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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